삶의 향기 메일

성인들의 법문, 세 종류의 바보들

장백산-1 2020. 12. 5. 14:43

성인들의 법문, 세 종류의 바보들


이 세상에 바보들의 종류에는 몇 가지가 있는지 설명하겠다.

첫 번째 유형의 바보는 이렇다. 우선 이 바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보다. 그는 그냥 그저 바보인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의 바보는 이렇다. 이 바보는 자신이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바보는 배운 건 있어서 삶을 복잡하게 살아가는 바보이다.

세 번째 유형의 바보는 이렇다. 이 바보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바보다. 이 바보는 크게 축복받은 바보이다.

모든 사람들은 첫 번째 유형의 바보로 태어난다. 이 바보가 바로 ‘숙맥 같은 사람’이라는 말의 뜻이다. 그래서 모든 어린아이는 그냥 순진난만한 바보이다. 이 어린 바보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이 바보는 아직 ‘앎(알음알이)’의 가능성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계에서 전하는 아담과 이브의 우화이다.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해서 말했다. “지혜(智慧)의 나무에서 열매(분별심)를 따 먹지 말라.” 지혜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는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아담과 이브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숙맥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몰라도 물론 아담과 이브는 매우 행복하게 살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오히려 불행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불행해지려면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불행을 자초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지옥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지옥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아담과 이브는 어린아이들처럼 숙맥처럼 살았다.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아담과 이브가 함께 태어난다. 아담과 이브는 아이 안에서 기껏해야 4년 정도를 산다. 그리고 4년 정도의 그 시간은 매일 줄어든다. 아담과 이브는 불행을 만들어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낙원(樂圓)에서 살아간다. 어린아이인 아담과 이브는 삶을 신뢰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해변에 널린 조약돌이나 조개껍질 같은 소소한 것들을 좋아한다. 어린아이는 마치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조약돌이나 조개껍질을 모은다. 평범한 색깔의 작은 돌들이 마치 어마어마한 코히누르 다이아몬드처럼 보인다. 세상 모든 것들이 아이의 관심을 끈다. 아침에 맺힌 이슬, 밤하늘의 별, 달, 꽃, 나비, 정말로 모든 것이 어린 아이에게는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인 숙맥같은 어린아이는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 나비는 그저 나비일 뿐이고, 꽃은 그냥 꽃일 뿐이다. 별 게 없다. 아이는 외부 사물들의 이름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건 장미, 저건 데이지, 그건 튤립, 또 이건 연꽃... 점차 그런 이름들이, 지식들이 어린아이를 둘러싸는 장벽이 되어간다.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세상으로부터 더 멀리 단절되어간다. 어린아이는 고집쟁이가 되어간다. 이제 그는 자신의 전체성(全切性)이 아니라 단지 머리, 즉 분별하는 생각으로만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이 바로 ‘추락(墜落)’의 뜻이다. 숙맥인 어린아이 아담과 이브는 지혜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고  지혜의 나무에서 ‘추락(墜落)’것이다.

사실 모든 어린아이들은 지혜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 어린아이들 모두가 매우 단순해서 지혜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지 않고서는 복잡한 세상을 살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성장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모든 어린아이들은 단순한 바보에서 복잡한 바보로 되어간다. ‘복잡한 바보’에는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어떤 복잡한 바보들은 고등학교만 마치고, 어떤 복잡한 바보들은 대학을 졸업한다. 어떤 복잡한 바보들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마친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수준의 복잡한 바보스러움이 존재한다. 그래도 모든 어린아이들은 지혜 나무의 열매인 지식(知識)의 맛을 보아야 한다. 세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유혹이 대단히 강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 모른 채로 어린아들을 남겨두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지식을 알아야만 한다. 지식을 알아야내만 한다. 우리는 지식이 있어야 그 유혹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없는데 어떻게 많은 유혹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모든 어린아이들은 지식을 쌓아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유형의 바보는 세상을 살아갈 필요성에 의해서 두 번째 유형의 바보가 되어간다. 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바보가 세 번째 유형의 바보로 바뀌는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필연성은 없다. 두 번째 유형의 바보스러움이 엄청나게 무거운 짐이 될 때에만 비로소 세 번째 유형의 바보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의 바보는 극단적일 정도로 너무 많은 지식이라는 짊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는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감수성, 모든 의식, 모든 생생한 삶을 잃어버렸다. 그의 머리는 이론, 경전, 교리들로 가득 차 있고, 마음속에서 온갖 말들이 늘 먼지바람처럼 소용돌이쳐 밖으로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모든 걸 던져버려야 한다는 자각을 얻는다. 그때 그는 세 번째 유형의 축복받은 바보가 된다. 그러면서 그는 동시에 첫 번째 유형의 바보 탄생에 도달한다. 그는 다시 숙맥인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오쇼의 <나는 누구인가> 중에서/ 정리 by 오아시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