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을 아름답게 만드세요.
나는 열세 살에 출가하였다. 어린나이에 절에 들어왔더니 심심해서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다. 같이
놀아주는 친구가 없었기에 심심했고, 어리다고 특별히 시키는 일이 없었기에 심심할수 밖에 없었다.
어른 스님들이 가끔씩 반야심경. 천수경을 외우라며 과제를 내어 주시는데, 그것도 얼마 안가 외워
버리니 할 일이 없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까불며 산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어느날 산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두꺼비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두꺼비는 복스럽게 생기기는 하였지만
원래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감각은 예민해서 앞에 뭔가 움직이는 조짐만 느껴지면
혀를 탁 내밉니다. 그러다가 벌레가 붙으면 한 입에 집어삼켜 버립니다. 나는 장난을 치느라 강아지풀을
두꺼비 앞에서 뱅뱅 돌렸습니다. 그것이 벌레인 줄로 안 두꺼비는 탁 집어 삼켰고, 그 상태로 강아지풀
을 들면 두꺼비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나무 끝에 돌맹이를 묶어서 두꺼비 앞에서 뱅뱅 돌려도
두꺼비는 그 돌맹이를 혀로 감아 입속에 넣습니다. 그러나 우물우물 하다 돌맹이를 퉤 뱉어버리는데,
뱉어버리는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이처럼 미련스럽기 그지없는 두꺼비도 돌맹인지 곤충인지,
즉 먹지 말아야 할 것인지 먹어도 되는 것인지를 능히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연(自然)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과연 대우주자연(大宇宙自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生命)이란 무엇일까요? 식물 중 몇 가지를
예로들어 살펴 봅시다. 식물 중에서도 유독 고추는 매운 맛이 납니다. 고추는 왜 맵습니까? 고추가
매운 까닭은 흙속에 들어있는 기운 중에서 매운 기운만을 골라서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고추와는
달리 산삼(山蔘)은 영약 기운만을 빨아들입니다. 그래서 산삼은 귀한 약재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효과가 큰 산삼 속에 어떤 특별한 약성이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산삼에서
만병을 치유할 수 있는 특별한 성분과 특이한 수치가 나와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알아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땅속의 독성 기운만 빨아들여 성장하는 독초(毒草)는 사람이 먹기만 하면 해롱
해롱하다가 죽기도 할 정도록 독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과연 고추와 산삼과 독초 속에는 어떤 영혼(靈魂)이 깃들어 있어서 흙속에 들어있는 기운 중에서 매운
기운, 영약 기운, 독한 기운을 알아서 골라 빨아들이는 것일까요? 고추와 산삼과 독초 같은 식물들은
자연(自然)을 어떻게 알고 있기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운만을 빨아 들일까요? 더 나아가 고추는 무엇
에 의해 존재할까요? 고추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식물. 동물, 광물, 그리고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기독교를 비롯해 유일신(唯一神)을 믿는 종교에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신의 뜻에 의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 말이 옳다면 자연재해가 일어나 매년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
일도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나는 일일까요? 요즘 전 세계가 홍수. 가뭄. 태풍 등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 그러한 피해도 신이 창조하는 일 중 하나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로 그
모든 비극적인 사건들을 신이 벌려 놓았다면 신은 참으로 야속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벌을 주고 재앙을 내린다면 저는 불교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실로 인간이나 뭇생명들에게 벌을 주고 재앙을 내리는 종교는 지구상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모든 생명(生命)들을 철저히 사랑하고 살리기 위해 존재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인간을 괴로움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종교에 구속되어 끌려다닌다면 그런 종교는 당연히 없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 유일신을 믿지 않는 불교에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무엇에 의지해서 만들어지고 무엇에 의지해
제각각 고유한 개성을 가지게 되엇다고 설명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
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즉 인연법(因緣法) 속에서 고유한 개성이 간직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인간에게 있는 육체의 생성부터 살펴봅시다. 의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육체는 어디에서 온 것
입니까? 어머니 태 속에서 왔습니다. 그럼 어머니 태 속에 있었던 육체는 무엇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까?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결합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약 2억 마리의 정자 중에서
단 한 마리의 정자, 한 생명만이 난자의 인도를 받아 난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결합한 정자와
난자는 태 속에 들어간 다음 어머니가 먹는 각종 음식의 기운(氣運)으로 살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밥. 국. 반찬. 과일 등등 흙에서 나오는 음식물의 기운으로 살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가 먹는
물로 눈물. 콧물 등 몸 속의 수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흙기운과 물기운, 이 두가지 기운을 가지고
인간의 형상을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섭취한 칼로리로 따뜻한 체온을 만드는데 이 칼로리가 바로 태양열 에너지 입니다.
그리고 태 속에 있을 때는 어머니 호흡과 함께 하다가 자궁 밖으로 나와 탯줄을 딱 끊으면 아기의
코로 호흡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흙의 기운인 지(地氣), 물의 기운인 수(水氣), 태양의 기운인
불의 기운(火氣), 공기의 기운인 풍(風氣) 이 네가지 원소를 우주 자연에서 빌려다가 태 속에서 열달
동안 몸을 만들어 세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몸이 만들어진 과정을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 모였다’라고 말합니다. 지. 수. 화. 풍
이 네 가지 기운이 열 달이라는 시간과 어머니 자궁속이라는 공간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결국 인간의
몸은 지. 수. 화. 풍이라는 네 가지 인연에 의해 어머니 자궁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지. 수. 화. 풍이라는 네 가지 인연에 의지해 지탱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식물들은 어떠한가? 무를 예로 들어봅시다. 무를 수확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먼저 땅에 씨를 심어야 합니다. 만약 씨앗을 땅에 묻지 않고 돌이나 책상 위에 두면 어떻게 됩니까?
싹이 나지 않습니다. 흙이 없어 창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흔한 무도 창조가 되려면 인(因)이
되는 씨앗이 있어야 하고 연(緣)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흙기운이 있어야 합니다. 흙기운 뿐만이
아닙니다. 비와 태양도 있어야 하고, 공기라는 바람 기운으로 식물들의 호흡인 탄소 동화작용을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사람의 몸과 무의 생성원리가 다릅니까? 꼭 같이 지. 수. 화. 풍 네 가지 인연을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식물인 무도 인간의 몸이 태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치로 생겨납니다. 지. 수. 화.
풍 네 가지 인연(因緣)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무가 인연이 다할 때는
사람들이 무를 뽑아서 먹을 때나 자연재해 등으로 사라질 때입니다. 이것을 인연멸(因緣滅), 즉 인연
(因緣)의 소멸(消滅)이라 합니다. 인연(因緣)에서의 인(因)은 단순한 원인(原因)이나 씨가 아닙니다.
인(因)은 생명력(生命力)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력(生命力)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1951년에 일본 지바현에 있는 2,000년 전의 고대 유적지에서 연꽃씨앗 세알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씨앗은 흙속에 묻혀 있던 작은 쪽배 안에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이 씨앗의 껍질을 새포로 문질러서
껍질을 얇게 한 다음 물에 불렸더니 세개중 두개의 씨앗에서 싹이 돋아났고, 그 싹이 점점 자라 붉은
연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여름에 천년이 넘은 연꽃씨를 심어 꽃을 피운일이
방송되었습니다. 1,000년, 2,000년 전의 씨앗을 심어 연꽃을 피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꽃씨에 깃들어있는 생명(生命)의 기운(氣運), 즉 생명력(生命力)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연꽃을 피우
는 것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연꽃씨 혼자서 연꽃을 피운 것은 아닙니다. 연꽃씨에 있는 영혼
(靈魂) 즉, 생명력(生命力)이 흙(地). 물(水). 열(火), 바람(風)의 기운을 만나서 연꽃이라는 생명을
피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명의 기운이 있을지라도 연(緣, 조건, 간접원인)을 만나지 못하면 창조되지 않습니다.
고추가 땅속에서 매운 기운만 골라서 빨아들일 수 있는 것은 땅속 매운 기운과 연(緣)을 맺는 핵심인
유전자(遺傳子, DNA)가 고추에 있기 때문입니다.
초발심자경문에, “소가 이슬을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이슬을 먹으면 독이 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은 같은데 그 물이 왜 뱀의 뱃속에 들어가면 독이 되고 소의 뱃속에 들어가면 우유가
되는 것일까요? 바로 마음의 경로(經路), 즉 인연(因緣)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생물(生物)은 인연(因緣)이 모여 생겨나고, 인연(因緣)에 의지해 존재하다가,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消滅)됩니다. 이러한 이치는 단지 생물(生物)에만 국한되는 법칙이 아닙니다. 모든 자연의
현상 또한 생물(生物)과 마찬가지입니다.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는 결코 신의 뜻이나 신의 징벌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지구속 마그마의 작용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쇠나 돌도 능히 녹이는
고온의 그 뜨거운 마그마가 땅속을 돌아다니다가 가스를 내뿜고, 그 가스가 쌓이면서 배출이 가장 쉬운
산꼭대기 쪽으로 올라가 ‘펑’하면서 터집니다. 그때 가스와 용암과 재가 분출되는데, 그같은 현상이
화산폭발 입니다. 결국 화산폭발도 신(神)이 아니라 인연(因緣)에 의해 만들어 지는 자연현상입니다.
이처럼 인간, 식물. 생물. 무생물. 자연현상 등의 모든 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 인연에 의해 생성되는데,
인연에 의헤 생성된다는 것은 곧 우주자연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지고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각자가 누구에 의지해서 무엇에 의지해서 사느냐를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십시오.
인연(因緣)에 의해서 산다는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사람은 공기가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공기(空氣)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연(緣)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또 다른 인연(因緣)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부지런히 순환(循還)합니다.
물(水) 역시 공기(空氣)와 마찬가지 입니다. 비를 내려 생명수를 마실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 줍니다.
결국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자연의 인연이 이어져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 인연이 끝나게 되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부부사이도 공기(空氣)나 물(水)과 마찬가지 입니다. 늘 함께 붙어 사는 부부라도 인연이 끝나면 혼자
가야만 합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생명(生命)이라는 것, 그리고 관계
(關係)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연(因緣)이 맺어지고 있는 동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연(因緣)이 있어
만났습니다. 피하지 못할 인연(因緣)으로 함께 하게된 것입니다. 그 까닭을 올바르게 오늘의 우리는
살펴 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인연(因緣) 따라서 많고 많은 여자 중에서 저 여인을 내 아내로 맞아들였는가?”
“어떠한 인연(因緣) 따라서 많고 많은 남자 중에서 저 남자를 내 남편으로 택했는가?”
정녕 그 답을 아시겠습니까? 바로 함께 풀어야 할 업(業), 함께 이루어야 할 원(願)등의 인연(因緣)이
있기 때문에 서로서로를 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서로간에 그와 같은 인연(因緣)이 있는 동안
에는 함께 살게끔 되어 있고, 그와 같은 인연(因緣)이 다해버리면 흩어지고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연(因緣) 때문에 만나기 싫은 사람도 다시 만나야 하고, 인연(因緣)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 동식물. 우주자연 할 것 없이 모든 것은 인연(因緣)에 의해 모였다가 인연
(因緣)이 다하면 다시 돌아갑니다. 대대로 아무리 처자권속이 줄줄이 이어지고 금은보화가 많은 사람
일지라도 인연(因緣)이 다 되면 결국엔 홀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
습니다.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인연(因緣)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因緣) 따라 변하고 인연(因緣)의
법칙 속에서 흩어집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인생이 이처럼 허망하고 무상
(無常)하다면 열심히 살 필요가 있을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인생이 허망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바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면 새롭게 좋은
인(因)을 심을 수 있고, 그 인(因)의 힘으로 좋은 연(緣)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
님께서는 재가인들에게 설하엿습니다. “가족들을 많이 많이 사랑하고, 돈도 열심히 벌어 좋은 일에
써야 한다.”고 그리고 살다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회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좋다 인연(因緣)이 이러하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일이라면 지금 바로 받겠다. 땅은 비온 뒤에 더
굳어지는 법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내 인연(因緣)은 더욱 숙성되고, 내 영혼(靈魂)도
더 맑아져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들아 어서 오너라. 어찌 지금 미루어 피하여 내세에 다시 만날
것인가! 지금 이 생에서 해결을 보리라.” 이렇게 마음자세를 가다듬을 때 우리의 몸을 적시는 빗물은
우유가 되고, 나 자신의 영혼이 더욱 맑아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것도 그냥 일반 우유가 아니라 프리미엄 우유가 되는 시간입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지금 우리가
인연(因緣)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우리는 독도 만들 수 있고 우유도 만들 수 있습니다.그리고 가장
거룩한 부처님의 사리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인연의 이치, 즉 인연법(因緣法)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인간(人間)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나 수행(修行)의 길, 욕망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향상의 길과 타락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행의 길, 향상의 길로 나아가려면 경쟁할
상대를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두어야 합니다.
내가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은 ‘나’ 속에 있습니다. 내안의 욕심내는 마음, 화내는 마음, 시기 질투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바로 싸워서 이겨야 할 내 안의 적입니다. 이 그릇된 마음을 먼저 제어하고 이겨내
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과 싸워 이기고 나면
원망과 질투가 따라오고, 지고 나면 분해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마음의 평화는 나에게 이기고 지는
것을 넘어서야만 올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내 속에서 일어나는 탐진치
삼독심과 원망하는 마음과 이기심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삼독심을 멸하면 구경열반, 곧 적멸(寂滅)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멸의 모습, 고요한 모습, 그것이
마음의 평화입니다. 실로 내면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작업은 바로 인연(因緣)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입니다. 마음의 그릇이 커지면 남의 허물이 보일
때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경책합니다. ‘아, 아직도 남의 허물이 보이니 내 속에 남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기운이 있구나. 남의 허물은 보지말자. 남의 허물을 보는 것보다 먼저 내 마음에 있는 허물부터 고치자,
이는 내 안의 어리석은 욕망 때문이다. 이런 어리석은 욕망으로 인해 남의 허물을 보고 남을 원망한다면
결국엔 나만 초라해지고 망가질 뿐이다. 소중한 나를 아껴 좋은 인연(因緣)을 심어야 한다.” 이렇게
다가오는 인연(因緣)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길들이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인생과 생명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됩니다.
요즘 젊은 아가씨들이 배꼽수술을 하기 위해 성형병원에 간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얼굴성형이나
지방흡입 수술이 아니라 배꼽모양까지 바꾼다고 합니다. 누구든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어머니와 연결
되어 있던 탯줄을 끊게 되고, 그 탯줄을 끊은 모양대로 생긴 것이 배꼽입니다. 그 배꼽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가 내 탯줄을 이렇게 잘라줬구나’하면 되는데, 굳이 배꼽에 수술칼을 들이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예쁜 배꼽 때문에? 과연 어떻게 생겨야 예쁜 배꼽입니까? 수술하여 배꼽모양까지 바꾸겠
다는 발상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자기 몸의 생긴 모양이 정말 싫으면 금생에 꽃
공양을 자주하고, 남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하고, 마음을 넓게 써서 다시 태어날 때 잘 생겨 나면 됩니다.
그러면 굳이 수술칼을 대지 않아도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의 잘생긴 외모를 갖출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성형수술은 하지 않고 얼굴만 자꾸 뜯어고치고, 그 가짜 얼굴로 교만해지니 이러한
인연(因緣)을 심은 사람이 내생에는 정녕 어떠한 모습을 하게 될지 걱정입니다. 성형수술은 내가 잘
나지고 싶은 욕망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 대한 그릇된 욕망과 착각이 어찌 성형수술 뿐이
겠습니까? 사람들은 보통 나라고 하면 육체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몸뚱이부터 챙기고 몸뚱이를
위해주는 욕망을 즐겨 쫓아갑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언젠가는 나를 배신합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몸뚱이에게 배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면 몸이 뻐근할 때가 많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벌떡
일어나지더니, 새벽 2시에 일어나려고 하면 몸이 찌뿌드드 합니다. ‘아이고, 이놈의 몸뚱이가 벌써 나를
배신하여 몸뚱이를 마음대로 못쓰게 하는 구나’ 지금은 이 정도로 느끼고 있지만 언젠가는 몸져눕게
만들고 마침내는 죽게 되지요. 그런데 죽을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을 때 이
몸뚱이가 우리들에게 “주인님, 먹여주고 입혀주느라고 애썼습니다. 언제 죽을까요?”하고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냥 갑자기 죽어버립니다. 이처럼 몸뚱이는
언젠가는 틀림없이 배신을 합니다.
그럼 이렇게 몸이 나를 배신하고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돌아갈 때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
이럴 때 내 몸안에 길들여 놓은 내 인연(因緣), 곧 내 마음에 의지해야 합니다. 주위의 인연을 가꾸고
돌보며 스스로의 마음 밭을 가꾸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 밭은 넓습니다. 한 생각에 미국을
갔다 올 수 있고 달나라까지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넓습니다. 넓은 이 마음 밭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 우주만물을 가득 품어안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부디 몸뚱이를 위해 마음을 희생시키지 마십시오.
모든 인연(因緣), 그리고 우주법계(宇宙法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energy)인 마음법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먼저 가면 물질이 저절로 따라오고, 마음이 뒤에 있는 사람은 물질이
따라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업을 쌓으려면 마음을 잘 닦아 좋은 인연(因緣)으로 가꾸
어야 합니다. 마음을 잘 닦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인연(因緣)을 잘 가꿀 수
있게 되며, 인연(因緣)을 잘 가꾸면 능히 복업(福業)이 깃들기 마련인 것입니다.
부디 마음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서 마음을 위해 살고 마음 닦는 쪽으로 나아가십시오. 마음을 찾는
쪽으로 공부를 하다가 마음을 알게 되면 하루아침에 삼천대천 세계, 곧 우주를 알게 되고 생사윤회
라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인연(因緣)의 삶 속에서 부디 마음을 잘 닦아,
능히 참생명을 살리고 기르는 멋진 삶을 성취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 혜국스님 / 충주 석종사 선원장 - 출처 / 법공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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