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사랑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자비 사랑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
사랑 자비는 항상 목적(目的)이 없는 베품 지향적이며, 욕망 욕구는 항상 목적(目的) 지향적이다. 그래서 욕망은 외부로부터 잡아당겨지는 욕심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누가 그대의 몸을 밧줄을 묶고 밧줄을 잡아당기면 그것이 바로 이끌림이다. 욕망은 그대가 밧줄에 묶여서 그 밧줄에 의해 당겨지는 것처럼 그대를 잡아끈다. 그대가 목적에 끌려 다니는 한 거기에는 욕망이 존재하고, 욕망이 남아있는 한 그대는 동물처럼 밧줄에 묶여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닌다. 밧줄에 묶여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그대는 자유(自由)로운 상태가 아니다. 자유(自由)란 밧줄에 묶여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동물과는 정반대를 말한다. 자유(自由)란 그 어떤 구속에도 감금당하지 않고 이리 저리 질질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솟구쳐나오는 맑은 샘물처럼 자유(自由)롭게 흐르고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그 누구라도 어떤 목적이 없는 사랑 자비 지향적일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미완성된 일을 남겨두었다는 미련을 갖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당장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자신이 하지 못한 말을 남겨두었다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말에는 어떤 동기도 없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그 일은 이루어지고, 자신이 죽는 순간 그 일은 끝난다. 아무런 동기가 없으므로 그 어떤 것도 미완으로 남지 않는다.
어떤 목적이 없는 사랑 자비 지향적인 사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내면(內面)의 영감(靈感)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어떤 목적이 없는 사랑 자비 지향적인 사람에게는 내적인 충동만 존재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그것은 외적인 충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다. 인도에서는 그런 사람을 존재계(存在界)에 자신을 복종시킨 사람이라 한다. 이제 존재계(存在界)에 자신을 복종시킨 사람의 모든 행동은 존재계(存在界)의 의지(意志)에 따라 하게되는 것이다. 존재계(存在界)에 자신을 복종시킨 사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삶을 궁극(窮極)의 세계에 맡겼기 때문에 그의 모든 행동은 존재계(存在界), 즉 궁극(窮極)의 세계의 의지(意志)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이제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궁극(窮極)의 세계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 오쇼는 삶이 욕망과 고통으로부터 자유(自由)로워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런 동기(動機)가 없는 삶을 살라. 그러면 영감(靈感)이 내면(內面)에서 나올 것이다. 그 무엇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삶, 베풀고자 하는 욕망만이 있는 삶을 살라. 내가 말하는 ‘사랑 자비'는 요구하는 사랑 자비가 아니라, 반대급부 없이 늘 베푸는 사랑 자비를 뜻한다. 자비 사랑에는 베푸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목적도 없다. 자비 사랑은 그 자체가 목적(目的)이기 때문에 자비 사랑에는 다른 목적(目的)이 없다.
- 오쇼의 <명상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삶의 향기 메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가(出家)의 효도(孝道) vs 세속(世俗)의 효도(孝道) (0) | 2021.05.08 |
---|---|
자신을 평가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법 (0) | 2021.05.07 |
지식인(知識人) 감별법 (0) | 2021.04.29 |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살아있음에 항상 감사하라. (0) | 2021.04.27 |
죽음에 대한 가르침 (0) | 2021.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