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벗어나는 길, 삼법인(三法印)의 의미 - 삼법인 강의(1) / 법상스님
연기법(緣起法)에 따르면 이 세상, 이 우주는 아무 법칙도 없이 아무렇게나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緣起)라는 법칙, 즉 진리(眞理 : 진질한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법계(法界)임이 드러난다. 진리(眞理 : 진질한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이 세상, 이 우주, 법계(法界)는 단순한 세상이 아니라 진리(眞理 )의 세계, 즉 법계(法界)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진리인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운행되는 이 세상, 이 우주, 법계(法界)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일체,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속성(屬性)이고, 이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들의 일반적인 속성(屬性)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다. 삼법인(三法印)라는 이름은 연기법(緣起法)의 동의이명(同意異名)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연기(緣起)된 연기적((緣起的) 존재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삼법인의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연기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세 가지 공통된 일반적인 특성(特性)을 가진다.
삼법인(三法印)이란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세 가지 법(法 : 진리)의 도장’‘ 세 가지 진리(眞理)의 표식(標識)’이란 뜻이다. 법인(法印 : 진리의 도장)이란 말 그대로 ‘법의 도장’ ‘진리의 도장’이란 의미다. 사람들이 누구에게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은 상대가 확실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내가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이고,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일들은 아무리 입으로 이렇다 저렇다 해 봐야 결국에는 도장을 찍어 주고 나야 그것이 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즉 도장을 찍어준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인간사(人間事)와 마찬가지로 삼법인(三法印) 이 세 가지 진리(眞理)야말로 변함이 없는 진리(眞理)라는 종지부를 찍는 진리(眞理)의 마침표다. 그렇기에 삼법인(三法印)은 ‘불교의 징표 ’, ‘진리의 기준’, ‘진리의 근거’이다. 즉 삼법인(三法印)이 불교의 가르침인가 아닌가, 정법(正法)인가 사법(邪法)인가가 궁금하다면 삼법인(三法印) 기준에 맞는지 틀리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삼법인(三法印)에 근거한 가르침이라면 불교이며 정법이지만 삼법인(三法印) 기준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불교도 아니고 정법(正法)도 아니다. 그렇기에 불교 이외의 어떤 사상이나 종교나 가르침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불교적인 근거가 삼법인(三法印)이다.
요즘 불교를 보면 삼법인(三法印)에 근거하지 않은 비불교적인 요소들도 불교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온갖 사상과 종교와 가르침들이 난무하는 사상이 혼탁한 시대이다보니 이런 것들이 올바른 가르침인지 잘못된 가르침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많은 명상 단체들이 난립하고 있고, 어떤 단체에서는 수십, 수백, 수천만원을 요구하며 깨달음을 사고 파는 행위들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의외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른’ 그런 단체의 수련법에 유혹당하고 매료당한다. 그러나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온갖 명상수련단체에 큰 액수의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수련한 결과 부처가 되었다고 혹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가(?)까지 받았지만, 결국 정신장애를 겪거나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분들도 많았고, 사기를 당해서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불교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복잡다단한 사상의 혼탁을 경험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복잡다단한 사상이 정법인지 아닌지, 불교인지 아닌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기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요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에 더욱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르침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 아닌가 한다.
삼법인(三法印)은 그 내용에 있어 동남아시아 남방 상좌부 전통의 불교와 북방의 대승불교 사이에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삼법인(三法印)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는데, 북방의 대승불교에서는 삼법인(三法印)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으로 여긴다.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는 공통인데, 나머지 하나 일체개고(一切皆苦)냐 열반적정(涅槃寂靜)이냐는, 일체개고(一切皆苦)와 열반적정(涅槃寂靜)은 동일한 사실에 대한 시각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보면 생노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괴로움(苦)으로 보이지만, 깨달은 부처의 눈으로 본다면 생노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고정(固定)된 실체(實體)가 없는 공(空)한 것으로 공(空)한 그 이면에는 고요한 자유(寂靜)가 있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닫고 나니 어리석은 중생이 없으며 모두가 이미 깨달은 부처(佛)였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경전에서는 이상의 네 가지 진리의 법인(사법인/四法印)을 사유함으로써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비구들이여, 죽음을 면하고자 한다면 네 가지 진리의 법인을 사유하라. 네 가지 진리의 법인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두 번째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세 번째는 제법무아(諸法無我), 네 번째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진리의 법인을 사유하라. 왜냐하면 그렇게 사유함으로써 생노병사(生老病死), 근심, 슬픔, 분별, 망상, 번뇌 등의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음을 면한다는 것은 곧 사고팔고(四苦八苦 : 탄생, 늙음, 병듦,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 미워하는 사람과 만남,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함, 몸과 마음이 치성함)라는 근본적인 괴로움(苦)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이같은 사고팔고(四苦八苦)에서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을 사유하는 것이다.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 죽음을 면하는 그 길이 바로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을 사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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