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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본래(本來) 완벽하고 완전하다.

장백산-1 2021. 5. 27. 14:17

이 세상은 본래(本來) 완벽하고 완전하다.   -  법상스님

이 세상은 본래(本來) 완벽하고 완전하다.

이 세상, 이 법계(法界 :진리의 세계), 이 우주, 이 대자연 어느 구석에도 애초부터 불완전하게 삶을 부여받은 존재(存在)는 없다. 존재(存在) 자체(自體)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이미 원만(圓滿)하게 구족(具足)되어 있는 청정(淸淨)한 법신(法身)의 숨결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동물, 식물, 광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存在)는 제각각의 삶의 몫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제각각 삶의 길을 정확하게 가고 있다. 법계의 숨결에, 우주 대자연의 숨결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만 하면 모든 존재의 삶은 여여하고 진리와 하나된 삶이다.

단 하나 인위적인 손길, 순수하지 않은 마음, 억지스런 생각들 온갖 분별에서 오는 사람들의 관념이 법계의 여법한 모습에 동참하지 않고 있을 뿐. 우리는 분별과 생각에서 나온 답, 이리 저리 따져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해 놓아야지만올바른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온갖 궁리와 관념을 짜내어야지만 보다 훌륭한 답에 이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대자연(大自然)의 답, 법계의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머리로 짜낸 답을 기다리고 있다.

우주 대자연은 옳고 그르고를 나누지 않은 무분별(無分別)의 절대(絶對) 긍정(肯定)의 답을 항상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우주 대자연의 답, 법계의 답보다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짜내어진 답을 더 올바른 답으로 믿고 있다. 온갖 분별(分別)에서 오는 지식(知識)들은 전 우주적이며 근원적이고 전체적인 통찰력(洞察力)을 가져다 줄 수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당장의 옳고 그른 좁은 소견의 답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그러나 무분별(無分別)의 지혜(智慧), 대자연 우주 법계의 지혜(智慧)는 당장 눈에 보이는 답이 아닌 근원적이고 전체적인 지혜(智慧), 통찰력(洞察力)을 가져다 준다. 그러다 보니 무분별(無分別)의 지혜(智慧)는 당장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옳지 않아 보일 수도 있고, 분별(分別)의 지식(知識))보다 더 낮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분별(無分別) 무차별(無差別)의 지혜(智慧)만이 우리들 삶의 진정한 이정표(里程標)가 될 수 있다. 이제 그만 어리석은 좁은 분별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이제 인류가 그동안 해 왔던, 특히나 근대화 과정에서 과학이며 산업 발전 운운하면서 대량살상,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로 지칭되는 일들 무분별(無分別) 무차별(無差別)의 지혜(智慧), 진리(眞理)를 거스르는 일들을 그만 그쳐야 한다. 대량살상,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가 당장에는 편안하고 편리할지 모르지만 분별지가 만들어 낸 과학과 산업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것은 그 편리함 뒤에 더 큰 불안과 총체적인 위기를 가져다 주고 말았다.

인간 머리에서 나온 옳고 그름에서 옳음을 선택한 분별(分別)의 지식(知識)은 당장은 작은 편리를 주었을지언정 평화와 평온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이제 그런 옳고 그른 두 가지로 나누고 그 중 옳음을 택하는 그런 분별의 지식은 놓아 버릴 때가 되었다. 그런 좁은 지식을 가지고, 온전하지 못한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온통 오탁악세로 몰아가는 그런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그로 인해 세상이 더럽혀지고, 온 우주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사람도 앓고 자연도 앓고 온 우주가 괴로워 하는 이 소리를 언제까지 외면하고만 있을 것인가. 이제 사람들 머리에서 옳고 그름을 나누고 그 중 옳음만을 선택하는 그 좁은 소견의 분별지를 완전히 놓아 버려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세계만을 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주 대자연 법계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학에서는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좋지 않다고 하면 그 부분만을 보고 그 부분에만 해당되는 치료나 약처방을 해 주지만, 몸의 어느 부분이 아픈 그건 내 몸 전체적인 문제이지 그 부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도 몸과 마찬가지다. 세상의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만을 보고 그것만을 임시방편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전체적인 통찰의 지혜를 닫아 버린지 오래다.

온 우주 대자연 법계의 숨결은 어느 하나 서로 깊은 인연관계 속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존재며 모든 생명들은 어느 하나 중하고 천할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살려주는 온전한 인드라망의 모습, 연기(緣起)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풀어내려면 온 우주 법계 전체를 보아야 하고 전체적인 통찰의 지혜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하나에 문제가 있다고 하나만 본다면 그건 어리석은 분별지일 뿐 전체적이고 온전한 법계의 무분별지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또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 하나는, 내 생각, 내 소견, 내 견해보다 온 우주 법계 대자연의 생각이 항상 더 근원적이며 옳다는 사실이다. 지금 세상를 보면 사람들의 생각으로 자연을 판단하고, 사람들의 생각으로 동식물을 판단하며, 사람들 방식대로 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 생각만이 옳은 생각이라는 굳은 착각에 빠져 있으면서 자연을 마구 훼손하여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며, 농사를 지을 때에도 사람들의 욕심을 좆아 농약이며 비료 제초제를 마구 뿌려대고, 사람들 몸에 병이 나더라도 세균을 더 강한 약으로 죽이거나, 힘으로 변형시켜 버리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그 부분을 잘라 없애 버리기에 여념이 없다.

개발을 하면서도 바로 코앞이나 내일만을 내다 보지 100년 후, 아니 천년 만년 후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며, 사람의 이익만을 생각하지온 우주 대자연 법계 만물, 동식물, 미생물, 산하대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바람, 물, 새들 등의 전체적인 이익을 함께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들 모두 다 사람들 생각이 현대과학의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 오류 때문에 발생되는 일들이다. 사람의 생각보다 대자연 우주 법계의 생각이 더 옳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 버리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들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부분에 한정(限定)된 분별(分別)에서 오는 지식(知識)에 불과하지만, 우주 법계 대자연의 드러남은 전체적(全切的)이고 무분별적(無分別的)인 온전한 통찰지(洞察智)이다. 내 생각으로 살지 말고, 우주 대자연 법계 내 안에 있는 자성불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내 생각이 더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온 우주 법계 대자연의 순리(順理)에 내 생각을 턱 맡기고 물 흐르듯 우리는 법계의 흐름에 동참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야 보다 근원적인 삶이 열린다. 보다 전체적이고 전우주적인 무분별의 지혜로써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자성불이 삶을 사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잔머리 굴려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애써 옳고 그름을 따져물어 옳은 것만을 취하려 하지 말고, 사람과 자연 온 우주 법계의 전체생명이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길,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배려할 수 있는 전체적인 통찰이 담긴 진리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지금까지 우리들 삶의 방식이었던 분별의 지식, 차별상을 몽땅 놓아버리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놓아 버리고, 대자연 우주 법계, 청정한 법신의 무분별적이고, 무차별적이고, 전체적이고, 근원적인 삶의 방식에 동참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