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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기다리세요.

장백산-1 2021. 5. 25. 16:08

이제 그만 기다리세요.  -  법상스님

 

이제 그만 기다리세요. 더 이상 기다리지 마세요. 그렇게 우리가 평생토록 해 왔던 기다림이 지겹지도 않으신가요? 이제 그만 기다림에 대한 환상(幻想)을 놓아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대부분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기다리던 일이 완성되면 또 다른 것을 기다리고 그것이 완성되면 또 다른 기다림의 대상을 만들어 사람들의 기다림은 끝이 없이 계속됩니다.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길 기다리고,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길 기다리고, 대학생은 좋은 취직 자리를 기다리고, 학생은 좋은 성적 좋은 학교를 기다리며\고, 직장인은 좀 더 인정 받기를 기다리고 진급하기를 기다리며, 수행자는 깨닫기를 기다립니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내 앞에 나타날 사랑을 기다리고, 빨리 졸업하기를 기다리며, 빨리 큰 돈을 벌기를 기다리고, 큰 집, 좋은 차 사기를 기다리고, 더 나은 직장을, 지위를, 권력을 기다립니다.

 

출근하고 나면 빨리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평일에는 빨리 휴일이 오길 기다리고, 다음 휴가철을 기다리고, 수업시간엔 쉬는 시간을 기다리고, 몇일 후에 있을 소풍이나 만남을 기다립니다. 뭔가 재미난 일을 기다리고, 가을엔 첫눈 오는 날을 기다리고, 겨울엔 만물이 태동하는 봄을 기다리며, 봄엔 여름 휴가 때를 기다리고, 여름엔 가을 단풍구경 갈 때를 기다립니다. 물론 단풍이 떨어질 때 또다시 첫 눈이 오기를 기다리겠지요. 성공하기를, 부자 되기를, 행복하기를, 깨닫게 되기를 기다립니다.

 

평생을 그렇게 끊임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사람들은 결국엔 한번도 기다리지도 않았던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달려가면서 한 순간도 기다림을 포기했던 적이 없었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온 것이라고는 한번도 기다리지 않았던 버림이고 죽음의 그림자 뿐입니다. 삶 속에서 기다림의 결과로 얻어 낸 그 어떤 가치있는 것이라도 결국에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다 무의미한 것일 뿐입니다. 전부가 다 버리고 가야할 것들 뿐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사람들이 유일하게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특별하게 바라지 않았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깨어있는 힘(지혜,智慧)’과 ‘사랑과 베품(자비, 慈悲)’입니다. 평생을 다음 순간만 바라고 살았지만, 더 낳은 순간만을 바라고 살았지만 죽어서 사람들이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이 ‘기다림의 결과’가 아닌‘ 기다림이 없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깨어있는 힘(지혜,智慧)’이라는 것은 참으로 사람들의 기다림을 허탈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 아닌 ‘기다림의 놓음’입니다. 기다림을 내려놓았을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현존(現存)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을 놓아버렸을 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활짝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이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다음 순간을 원한다는 말이고, 현재가 아닌 미래를 원한다는 말이며,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때의 다른 내 모습을 원한다는 말이고, ‘지금의 나 처럼’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되길 원한다는 말이며,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닌 갖지 못한 것을 원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기대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그 갈등이 바로 괴로움의 실체로 다가옵니다. 기다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만족(滿足)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지금 이 순간 만족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고되고 괴로움의 연속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기다림은 습관적(習慣的)입니다. 항상 무엇인가를 기다리지 않으면 견디질 못합니다. 그 기다림을 좋은 말로 ‘희망(希望)’이라고도 하고 '꿈(夢)'이라고도 하겠지요. 또 ‘목적의식(目的意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기다림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기다림을 ‘희망(希望)’이니, ‘꿈(夢)’이니, ‘목적의식(目的意識)’이니 하고 좋은 말처럼 꾸며 놓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기다림은 여전히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기다림은 온전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깨어있음을 방해하고, 삶의 근원적인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

 

사람들의 그런 습관적인 기다림에 이젠 지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요? 그동안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까. 아니 어쩌면 우리 삶 전체를 이런 쓸모없는 기다림에 헛되이 소모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다림이란 낭비이고 불필요 합니다. 공연히 내적인 에너지를 소모할 뿐입니다. 기다릴 시간에 저지르는 편이 더 현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사는 편이 더 궁극적(窮極的)입니다.

 

현실세상에서의 돈, 명예, 지위, 권력, 학벌, 성공 등은 기다림을 통해 얻게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행복(幸福)은 결코 기다림을 통해 얻을 수 없습니다. 현실세상에서의 돈, 명예, 지위, 권력, 학벌, 성공이라는 것이 전부 다 행복을 위한 방편(方便)이 아니던가요? 그런 껍데기를 위한 기다림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바로 궁극적(窮極的)인 행복(幸福)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행복(幸福)은 결코 기다린다고 오지 않습니다. 행복(幸福)은 결코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幸福)은 방편에 불과할 뿐인 돈, 명예, 권력, 지위, 학벌, 성공 속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幸福)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존재할 뿐입니다. 행복(幸福)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깨어있음을 통해 드러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완전한 자족을 통해 드러날 뿐입니다.

 

행복(幸福)은 항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늘 그렇게 있을 뿐이지요. 기다리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행복(幸福)을 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봐야 하는데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말고 다른 순간 다른 자리를 찾고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기다림의 결과로 행복(幸福)을 얻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기다림을 완전히 놓아버렸을 때 그 때 언제나 있어왔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행복(幸福)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내가 누구이든 간에, 내가 무슨 일에 종사하든 간에, 나의 직위, 직장, 학벌, 재산, 세속적인 성공에 상관없이 다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인정하며 사랑하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그냥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의 ‘나 자신’이면 되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나 얻을 수 있는 ‘다른 그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내 모습에,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소유물에,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음에 항상 감사하고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또 다른 것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활짝 깨어있는 법을 터득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분명 머지 않아 맑은 행복(幸福)과 평화(平和)가 우리들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기다림을 놓아버리리기 바랍니다. 이 순간이 아닌 다음 순간을 기다리지 마시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이 기다림을 이룬 순간이 되도록 하시고 여기 이 자리가 기다림을 완성한 자리가 되도록 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서 있으면 무언가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다림을 놓아버리고 여기 이 자리에 서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