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문제, 먹는 문제를 생각한다. - 법상스님
바람이 참 좋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숲을 지나 뺨까지 스치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으면 나는 행복을 느낀다.
매일 매일 공양 때마다 밥상 위에 올라오는 어린 상추, 케일, 근대, 쑥갓들 하며, 지난 주 보살님께서 담아주신
물김치들로 요즘은 밥 때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내 손으로 직접 지은 채소, 비료, 농약,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온연한 채소들을 보고 있으면 자식 키우는 재미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하기야 자식들이야 키우는 재미는 있다지만 하도 말썽을 피고 다 커서는 부모 속을 얼마나 썩이나. 그러나 채소
이 녀석들은 별 속도 안 썩이면서 하루에 세 번 거스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효도를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비료를 안 뿌리니까 이렇게 더디고 실하지 않다면서, 농약을 안 뿌리니까 이렇게 잎이 벌레를 먹었다면서,
제초제를 안 뿌리니까 채소에게 갈 양분이 잡초들에게 다 간다면서 이러면 안된다고 고집하시던 마을 분들도
이젠 법당 채소에 탐을 내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직접 농사를 지어 보니까 농부들의 마음 백 번 이해가 간다. 비료 조금만 뿌리면 열 개 달릴 꺼 스무게
삼십 개는 달릴 것이고, 비실비실 작은 상추잎도 더 커지겠고, 농약 조금만 뿌리면 벌레 안 먹은 보기 좋고
윤기있는 채소를 재배할 테니... 그 유혹을 그래도 이겨내려면 밝은 지혜, 온전한 앎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비료 주어서, 농약 뿌려서 열매가 더 열리면 그만큼 열매의 생명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손길로 잔뜩
영양제 뿌려주고, 외부로부터의, 벌레로부터의 재해를 막아주니 열매는 몸집만 크고 열매가 많아질 지언정
그 내적으로 실하지 못하고 생명력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사람도 고난과 힘겨움을 당해 보고 그 속에서 내면의 힘도 생기는 것이고, 아프고 고달파 봄으로서 더 튼튼한
건강을 챙기게 되는 것이며, 외부로부터의 경쟁상대가 있어야 내적으로 더 똘똘뭉치고 실해지지 않는가.
그러니 그렇게 키운 생명력(生命力) 없는 음식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입에는 달고 보기에는 좋을지언정 우리
몸을 그만큼 약화시키고 생명력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다. 요즘이야 채식도 온통 사람들 손으로
생명력을 떨어뜨린 나약하고 겉만 뻔지르르한 채식이고, 육식도 사람들 먹기 위해 억지로 먹이고 길러서 살만
잔뜩 찌워 잡아 죽인 육식이니 뭐 하나 마음 놓고 먹을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이 다 사람들 욕심에서 나온 어리석은
결과다. 사람들은 사실 최소한의 보조역할만 하면 채소도 다 우리 먹을 만큼 자라 줄 것이고, 동물들이야 우리
사람들의 보조도 필요없이 잘 자라게 되어 있을 것이다.
대자연(大自然)인 우주(宇宙)는 본래부터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生命體)다.
사람들 욕심(慾心)만 없으면 대자연(大自然)인 우주(宇宙)는 절대 부족할 것 없이 충분히 사람도 먹여 살리고
온 우주 법계가 서로 서로를 먹여 살리도록 되어 있다. 그것이 우주 법계의 온전한 본래 모습이다.
대자연(大自然)인 우주(宇宙)보다 사람이 더 잘난 줄 아는 것이 고질병이다. 대자연(大自然)인 우주(宇宙)보다
사람이 더 잘났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대자연(大自然)의 이치는 팽개쳐버리고 사람들의 생각대로 행위를 한다.
그러나 절실히 필요한 자각(自覺) 하나, 사람의 지식(知識)이 대자연(大自然)의 이치(理致) 더 올바른 것이 아니라
대자연 우주 법계의 지혜(智慧)가 본질적이고 근원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농업혁명(農業革命)이라는 이름 아래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라는 허울만 좋은, 사실은 엄청난 어리석음과
욕심을 동반한 농업혁명이 아닌 농업폐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더 많이, 더 큰 것을 더 빨리 얻으려는
욕심으로 대자연 우주를 마구 훼손하여 그 속에서 질소, 인산, 칼리라는 비료의 3요소를 뽑아내어 비료를 만들어 놓았고,
채소, 농작물과 공존하면서 그들의 생명력을 강화시켜주고 상생하고 있는 소중한 해충들을 아주 몰살시켜 채소만
멀쩡하게 잘 자랄 수 있게 농약들을 개발시켰으며, 땅의 기운을 좋게 하고, 황폐화되고 산성화된 흙을 비옥하게 바꾸어
주는 소중한 야생의 풀들을 잡초라고 몰아붙여 청산가리 1만배가 넘는 독극물인 제초제를 개발시켜 놓고 말았다.
이것이 다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대자연 우주법계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당장의 인간들의 욕심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욕심과 어리석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대자연 우주법계에는 본래 좋고 나쁨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어야 하고, 나쁜 것이 있음으로 인해 좋게 될 수 있다는 공존(共存)의 원리,연기(緣起)의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음이 그 바탕이 된 것이다.
산업혁명, 농업혁명이 사실은 그 근본이 어리석음인 줄 누가 알고나 있겠는가.
해충이 있어야 익충도 있는 법이고, 잡초가 있어야 채소도 있는 법이다. 좋고 나쁨을 나누어 놓고 그 중에 좋은 것만을
선택하려고 하면 그같은 선택은 벌써 분별심(分別心), 어리석음의 결과인 것이다. 좋고 나쁨이 나뉘지 않은 대자연
우주법계 전체의 여법한 모습을 보지 않는데서 오는 어리석음인 것이다. 이 어마어마하게 인류가 병든 결과는 결국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이 욕심 때문에 더 많이 축적하려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이 더 크게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대량생산은
전체 농업을 파괴하고 말았다. 그렇게 세상이 혼탁해지니 자연스럽게 인간의 육신(肉身)도 혼탁해지고, 따라서 마음도
함께 혼탁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은 사람들 마음 안에 있다.
마음 하나 바르게 쓸 수 있다면 생명력 떨어진 채소도 중생의 육신을 뜯어먹는 육식도 우리 마음으로 정화시킬 수 있고,
그런 음식들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자연 우주 법계의 은혜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먹고, 맛있게 먹는 것. 기왕에 먹는 거라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이라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는 것 그것이 보다 근원적인 마음씀씀이가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면 육식 보다는 채식을 해야 하겠고, 술도 될 수 있으면 자제를 하고, 담배도 될 수 있다면 끊어야 하고,
오신채도 될 수 있다면 적게 먹으면 좋고, 인스턴트 식품, 탄산음료 등도 줄여 나가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꼭 먹어야 한다면 꼭 먹어야 할 때가 생긴다면 이 대자연 우주 법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음식도 나와 둘이 아닌
마음으로 죽은 동물들을 천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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