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온갖 느낌도 인연 따라 온 환영일 뿐이다.

장백산-1 2021. 6. 1. 11:46


온갖 느낌도 인연 따라 온 환영일 뿐이다. 그러니 느낌 그대로를 인정하고 바라보기만 하라.  - 법상스님

저녁무렵에 노을이 질 때면 나는 해지는 풍경 속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요즘 같으면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외롭다고 할 수도 있겠고, 고요하다거나 평화롭다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그 느낌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뭐랄까 내 안의 본래적인 감각을 온전하게 끌어내 주는 이 느낌에 가만히 마음을 집중하다 보면 대자연(大自然)의 숨결과 하나가 되는 듯 내 마음은 어느덧 선(禪)으로 향한다.

이러한 느낌은 참 소중하다. 그 느낌을 그저 휙 지나쳐 버리지 말라. 가만히 그 느낌에 마음을 모아 집중해 그 느낌을 바라보면 그 모든 느낌들 속에서 명상과의 연결점을 만날 수 있다. 느낌(受)에 집중한다는 것은 사념처 수행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늘 수많은 감정이나 느낌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감정이나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는 데는 무척 인색해보인다. 그 느낌에 아무런 차별심이나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그 느낌을 그냥 텅~빈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에 익숙치 않다. 그러다보니 번번히 좋은 느낌에 속아서 좋은 느낌에 집착하고, 싫은 느낌에 속아 아파하며 스스로를 구속하고 괴롭힌다. 그러나 본래 느낌 자체에는 아무런 분별 차별도 없다.

어떤 느낌이 되었든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마음을 집중하라.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라. 온전히 느낀다는 말은 그 느낌을 싫다고 피하려 하거나 좋다고 더 가지려고 애쓴다거나 하는 두 가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을 다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며, 충분히 있는 그대로의 그 느낌을 즐기기도 하고 느껴본다는 말이다.

외롭다면 외로움을 흠뻑 느껴보고, 화가 일어날 때는 그 화에 마음을 모으며, 슬픔이 올 때 그 슬픔과 하나가 되어 슬퍼하라. 그 느낌을 분별없이 지켜보고 충분히 느끼라. 음악치료의 원리도 이와 같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울할 때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오히려 신나는 음악을 들으려 애쓰지만, 신나는 음악을 듣는 것은 우울감 치료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울할 때일수록 우울한 노래를 듣는 것이 우울감 치료에 좋다고 한다. 우울할 때 흠뻑 우울해 하고 슬플 때는 충분히 슬퍼할 때 내적인 치유는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 우울함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애쓰면 오히려 우울함에 더 옭아 매어질 뿐이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 느낌을 느끼는 속에서 커다란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느낌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즉 느낌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충분히 그 슬픔에 젖어보면서 슬퍼하는 나를 관찰하게 되면 슬퍼하는 내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슬픔이라는 느낌을 찾을 수 없고 결국엔 그 슬픔도 가짜, 즉 환영(幻影)이었음을 알게 된다. 온갖 느낌은 인연(因緣) 따라 잠시 잠깐 나타난 환영(幻影)이며 신기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알아차리면서 느끼기만 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수행의 길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그 느낌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의 느낌을 집착하려고도 하지 않고 버리려고도 하지 않으며,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랬을 때 느낌 속에 살면서 느낌을 초월할 수 있다. 함이 없이 모든 것을 하게 된다.

 

슬플 때는 온 존재로써 슬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