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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리안 떼창의 진원지 사찰 악가무

장백산-1 2022. 1. 25. 00:45

2. 코리안 떼창의 진원지 사찰 악가무

 

북과 나팔, 노래와 춤으로 천지를 진동시키다

고려사 따르면 왕이 봉은사 올 때 1350명이 악가무 펼쳐
일본 건너가 궁중음악 중 좌방악 ‘가마가쿠’로 자리 잡아
가무 맡은 악사들 가문 형성…설행 방식 등은 ‘교훈초’로

 

                   2017년 10월17일 도다이지의 고묘황후 추도법회에서 행해진 고마보코.

 
 

섹시 디바 비욘세가 한국에 왔을 때, 어찌나 떼창을 하는지 “그래 너희들이 가수해라”며 마이크를 객석으로 돌렸다. 신들려 버린 그 객석의 떼창은 그야말로 천둥 번개를 치듯 요란하였다. 이러한 신명을 우리 조상들은 ‘굉진천지(轟震天地)’라 하였는데, 그 진원지가 사찰이었다.

“고려 원년 14년(1273년) 2월, 왕이 봉은사에 올 때 기회(伎會)의 규모가 1350이 넘었고, 이들이 주악을 연주하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노래하고 춤추니 굉진천지(轟震天地)였다.”

‘고려사’ 원년의 기록을 좀 더 읽어보면, 산대악인이 악관(樂官)과 함께 꽃과 주과(酒果)를 나누며 가무와 놀이를 하였다. 이때 산대잡희를 행한 사람들을 산대악인이라 하고 함께한 팔방상공인(八坊廂工人)을 외국에서 온 상공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방상공인을 해외에서 온 무역상인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일찍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해온 고구려 악사들이 있었다. 수(隨)의 개황초(開皇初, 589~616)에 제정된 칠부기에는 국기(國伎, 일명 서량낙·西凉樂), 청상기(淸商伎, 중국 속악), 고구려기, 천축기(인도), 안국기(보카라), 구자기(龜玆伎), 문강기(文康伎, 진대의 가면극)가 있었다. 이외에 소륵(疏勒), 부남(扶南), 강국(康國), 백제, 돌궐, 신라, 왜국(倭國) 등의 악단은 잡기로 분류되고 있어 고구려악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당나라에 들어서는 7부기가 9부기, 10부기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과정에 다른 국가의 악단은 들쭉날쭉 변화가 있지만, 고려기는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수서(隋書)’ ‘통전(通典)’ ‘구당서(舊唐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악은 중국을 통한 국제활동뿐 아니라 일본에도 건너갔다. 일본의 고문헌 ‘류치삼대격(類聚三代格)’을 보면, 고려악생정원 20인이 일본에 온 기록이 있고, 훗날 일본의 궁중음악 중 좌방악(左方樂)인 고마가쿠(高麗樂)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아악(雅樂)이라면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게 제사 지내는 유교음악을 일컫지만, 일본에는 불교음악이다. 일본에는 한국의 문묘제례악과 같은 유교음악이 전해지지 않았다. 일본의 궁중 아악 중 우방악은 중국의 속악, 좌방악은 고려악이었으므로 지금까지도 고마가쿠가 일본 궁중악의 중요한 축이다. 또한 일본 사찰에는 전속 아악단이 있었다. 나라시대의 큰 사찰마다 전속 악가(樂家)들이 있었고, 고찰(古刹)에서 전승되는 아악 중에서 우무(右舞)로 분류하는 음악은 모두 한반도의 삼국불교에서 전래된 것이었다.

당시 일본 각 사찰에 있었던 전속 악가의 면면은 사찰의 재산 목록인 ‘자재장(資財帳)’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도다이지요록(東大寺要綠)’ 중 ‘직장사노사(職掌寺奴事)’ 항목을 보면, 사찰에 필요한 갖가지 기물을 담당하는 사람, 사찰 보수와 기타 제작을 하는 사람, 그리고 제반의 의식과 법회에 가무를 담당하는 악사들이 있었다. 특히 가무를 맡은 악사들은 대를 이어 악가(樂家)를 형성하였다. 그중에 고후쿠지(興福寺)의 고마노 치카자네는 당시의 사찰 악가무와 설행 방식을 ‘교훈초’로 남겼다.

일본에서는 고마노 치카자네(狛の近真, 1177~1242)가 쓴 ‘교훈초(敎訓抄)’(민달 2년, 1233년 출간), 토요하라무네아키(豊原統秋)가 쓴 ‘체원초(体源抄)’(소화 8년, 1933년 출간), 아베쉐히로(安倍季尚)가 쓴 ‘악가록(楽家録)’(소화10~11, 1935년 전후 출간)을 3대 악서(樂書)로 꼽고 있다. 이 중에 ‘교훈초’는 가장 오래된 악서로서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 역사학계와 불교음악계에서는 고마노 치카자네(狛の近真) 가문과 족보까지 연구하였다.

가마쿠라 시기에 쓰여진 본 책의 구성을 보면, 제1권에서 제3권까지는 고마노 치카자네 가문의 유래, 일화, 좌무(左舞, 당악)와 무곡의 작법, 제4권은 다른 악가(樂家)에서 전승하고 있는 악무(주로 좌무와 기악)의 지침, 제5권은 고려곡물어(高麗曲物語), 제6권은 악곡의 해설과 악조(樂調), 제7권은 무곡(舞曲)의 곡명·무대 등단 방법·차례·공연 지침, 제8권은 관현악기에 대하여, 제9권은 타악기, 제10권은 악곡의 기보법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중 제4권의 내용을 보면, “구안(久安)5년(1149년)의 초파일(佛生會)에 미장칙성(尾張則成) 및 청원위칙(淸原爲則)이라는 두 사람이 피리를 담당했으며, 위칙은 야쿠시지(藥師寺) 소속의 악인…(중략)…무(舞)는 도다이지의 악사(舞者東大寺職掌紀氏傳レ之)가 맡았음”을 적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제5권의 고려곡물어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고마노치카자네 가문에서 전담하였던 것이고, 그 앞의 좌무(左舞), 일명 당악은 도다이지와 야쿠시지 악사들이 와서 했음을 적고 있다.

고후쿠지의 우무(右舞)와 피리를 전담해온 치카자네의 성씨는 ‘고마’이다. 일본의 고문헌에서 ‘고마(狛)’를 검색해보면 고구려, 한반도 삼국, 즉 백제·신라·고구려,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까지 ‘고마’로 표기되어 있다. 치카자네의 형 미츠자네(狛光真, 1166~1240)는 나라(奈良)의 난토악소(南都楽所)가 있던 고후쿠지의 악두(楽頭)였다. 그는 난토의 쇼묘(聲明, 한국의 범패)를 고야산에 전하였고, 미츠자네가 전한 의례설행과 쇼묘가 오늘날 고야산에서 전승되고, 그 설행 방식이 나라의 도다이지 의례와 한국 산대극에서의 일부 행위와도 같은 점이 보인다.

 

                                           봉산탈춤의 팔먹중.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도다이지(東大寺)에서 열리는 고묘황후의 추도식(光明皇后御遠忌)에 설행되는 고마보코(狛桙)는 한국의 불교 악가무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고마노 치카자네의 고려곡물어인 사찰 교훈극이 오늘날 한국에서는 파계한 승려를 흉보며 놀리는 산대극과 탈춤으로 행해지고 있다. 기막힌 내력의 실체는 다음 회인 ‘탄이들 안녕하십니까?’편에서 살펴보겠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한국불교음악학회 학술위원장
ysh3586@hanmail.net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