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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팬데믹과 같은 악마적 현상의 뿌리

장백산-1 2022. 1. 25. 01:21

2. 코로나바이러스와 웨살리의 교훈 - 상

 

 

자본주의는 팬데믹과 같은 악마적 현상의 뿌리

팽창과 규모의 상징이던 대도시 웨살리, 자연 훼손으로 역병 창궐
왕의 요청에 부처님께서 역병 물리치기 위해 설한 경전이 보배경
작은 동물서 차례로 옮겨온다는 전염병은 코로나 전파경로와 같아

 
 

                      웨살리 리차위 스투파(진신사리탑). 근본 8탑 가운데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

 

 

꼬박 2년을 넘는 동안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사람들이 맥없이 죽어 나가고, 왕래의 발걸음은 뚝 끊겼다. ‘팬데믹’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란 것도 태어나서 처음 해본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후유증은 심각하다. 이럴 때 ‘붓다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물음을 던져 보았다. 때마침 이런 문제를 다룬 글이 있어 두 번에 걸쳐 소개해 보기로 한다. ‘불교윤리학저널(Journal of Buddhist Ethics)’에 실린 ‘코로나바이러스와 불운의 왕관: 전염병과 정치에서 얻은 불교의 교훈(Corona virus and Ill-fated Crowns: Buddhist Lessons in Pandemics and Politics 2021)’이란 논문인데, 저자는 미국 시카고 로욜라 대학의 알렉산더 맥킨리(Alexander McKinley) 교수다.

인도의 고대 도시 웨살리(Vesāli)는 ‘팽창’과 ‘규모’를 상징하는 대도시였다. 웨살리는 부의 증장을 무엇보다 소중한 삶의 가치로 여겼다. 그 결과 인구가 늘고 도시는 날로 번성했지만, 가뭄과 기근이 잇따르고 역병이 자주 창궐했다. 이는 도시를 확장하고 성과 해자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숲을 파헤치고 자연을 훼손한 통치자들의 피할 수 없는 업보였다. 국가적 위기에 처한 리차비(Licchavi)왕이 붓다께 도움을 요청했고 이때 붓다가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 설하신 경이 바로 ‘보배경(Ratana Sutta)’이다. 이 경전은 동남아시아 불교국가들에서 주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즐겨 암송하는 ‘보호경(Paritta Sutta)’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배경’의 주석자들은 자기가 살았던 시대 환경에 맞게 경전을 재해석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 그중에서도 고대의 붓다고사(Buddhaghosa)와 중세의 붓다푸트라(Buddhaputra), 그리고 근대의 위제비크라마(Vijevikrama)가 특히 유명하다. 이들의 공통된 입장은 웨살리가 성장하는 만큼 가뭄과 굶주림의 고통 및 질병의 위험성도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대규모 재개발은 생태계의 파괴를 수반하고 머지않아 그 도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정도의 뜻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욕망은 더 사악하고 더 교묘해졌다. 그러나 붓다에 의하면 물질에 대한 집착은 결과적으로 무상의 진리성만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웨살리의 사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붓다께서는 결국 웨살리의 도덕적 타락을 꾸짖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초래한 현재의 팬데믹 상황이 붓다가 설법을 하시던 당시의 웨살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팬데믹은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을 몸소 가르쳐주는 탁월한 스승이다. 그것은 지역적인 경계와 인간의 몸을 구분하지 않고 언제든지 침투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팬데믹은 고립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독자적인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자본주의 질서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들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주석서에 따르면 재난의 양상은 비슷하게 전개된다.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나 흉작이 되면 기근이 닥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그들의 시신 썩는 냄새가 여기저기서 나고 고약한 냄새를 맡은 악령(evil sprits)들이 도시로 몰려든다.

이러한 귀신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야차(yakṣa)다. 그들은 자애롭다가도 갑자기 포악한 얼굴로 바뀐다. 위제비크라마의 주석에 따르면 야차의 등장은 도시에 팽배해 있던 권력자의 오만함을 응징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그들은 자연적인 장소에 거주하는 비인간적인 존재로 인식되는데,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체액(humors)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야차는 질병과 다른 혼란의 원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그 과정에서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보배경’을 주석한 붓다푸트라와 위제비크라마에 의하면 감염병을 옮기는 바이러스는 작은 동물에서 중간 크기의 동물을 거쳐 인간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집에 있던 도마뱀이 죽고, 다음에는 개가 죽으며, 마지막으로 인간이 죽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보고되었을 때 박쥐와 천산갑이 이 바이러스를 전파한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사실을 떠올려보게 된다. 저자는 감염병의 발생과 확산구조를 ‘가난-가뭄-기근-질병-죽음’의 순서로 연결 짓는다. 여기에는 개인의 무명과 권력의 오만이 함께 뒤엉켜 있다. 저자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욕망의 세계화이며 팬데믹과 같은 악마적 현상의 뿌리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와 이상기후는 생성원리가 똑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외의 다른 자연재해들도 마찬가지이다. 야차가 인간의 고기를 씹는 것은 웨살리 사람들이 물질적 욕망을 탐하는 것에 대한 역설적인 비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팽배했을 때 에콰도르의 수도는 거리마다 시체가 넘쳐났고, 미국의 뉴욕에서는 시신을 보관할 냉장차가 모자라 한동안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될 정도였다. 이 와중에 아시아인들이 악마화되고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야기한 팬데믹을 ‘보배경’의 주석자들이 말하는 야차의 악행으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팬데믹을 바이러스 자체의 활동뿐만 아니라 정신건강과 사회통합에 미치는 부작용까지 함축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재앙이 계속되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회주체들은 내부적인 모순에 빠져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고 했다. 정치가 혼란과 위기로 치닫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팬데믹의 시기에는 그동안 잠복해 있던 사회적 문제들이 마치 불을 만난 성냥개비처럼 활활 타오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도시와 문명은 붕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팬데믹에서 탐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삶의 교훈으로 배워야 한다. 붓다께서 역병이 돌던 웨살리를 방문하고 리차비왕과 백성들에게 ‘보배경’을 설해주신 뒤 암송하도록 하자 역병과 같은 재난이 없어졌다고 전한다. 붓다께서는 불·법·승 삼보의 보배에 귀의하면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가뭄과 기근, 질병이 없는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축원하셨다. 다음에는 역병을 치유하는 붓다의 보배로운 가르침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