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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 이전'이라는 권력의 좁은 총구

장백산-1 2022. 3. 25. 08:26

[에디터의 창] '집무실 이전'이라는 권력의 좁은 총구

구혜영 정치에디터 입력 2022. 03. 25. 03:00 댓글 1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현재 열흘 가까이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보수 언론까지 초과권력 행사, 불통, 안보 공백, 졸속 절차라고 비판한다. 그래도 거둬들일 기미가 없자 이전 배경을 놓고 온갖 해석이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턴 합리적 추론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초보라고 하지만 권력에 1㎝ 붙고, 1㎝ 멀어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아는 특수통 검사 출신 아닌가. 두 달 만에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을까. 귀를 닫고 경주마처럼 달리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슈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집무실 이전이 몰고올 정치적 파장에 주목한 이유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정계재편 기제가 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국민의힘엔 빚진 게 없고, 더불어민주당엔 ‘치명적 버그’(진중권) 같은 존재이다. 거대 양당 체제에 균열을 시도하기 좋은 위치다. 때마침 야당에서도 속도조절론이, 여당에서도 “이전을 막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집무실 이전엔 청와대(권력), 용산(부동산), 국방부(안보)가 얽혀 있다. 보수를 받치는 삼각동맹이다. 그런데 종전선언을 말하던 민주당이 안보 위기를 지적하고, 지대 개혁을 외치던 민주당이 부동산 규제를 걱정한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흔들려면 관료사회를 제압해야 한다. 여성가족부 해체 선언으로 관료사회를 상대로 한 ‘직장 갑질’이 시작됐다. 국방부 이전, 법무부 업무보고 거부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기득권 청산 효과도 부각할 수 있다. 임태희 당선인 특별고문은 집무실 이전을 “새로운 정치를 위한 핵심 공약”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자리 잡은 경복궁 일대는 조선 600년 이래 기득권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집무실 이전으로 한국 사회의 응축된 기득권을 분해하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조국 전 민정수석 관련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집무실 이전은 전 정부 청와대를 적폐로 규정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하지 못한 일을 ‘나는 한다’고 차별화할 수 있는 소재다.

 

거대 야당을 딜레마로 몰고 간다. 힘없는 야당이면 ‘의석이 적어 이전을 못 막았다’고 여론전을 펼 수 있지만 민주당은 172석을 보유하고 있다. 대립각이 뾰족해질수록 힘센 야당의 발목잡기로 몰면 된다. 정치에디터로서 상상할 수 있는 집무실 이전 나비효과는 여기까지다. 이를 제외하면 이 이슈는 권력 입장에선 위기 요인이다.

 

대선 결과는 통합 필요성을 주문한다. 0.73% 승리는 정권교체 열망이 눈금을 움직인 결과라고 봐야 한다. 지지후보 만족도가 40%대에 불과한 출구조사 결과가 증명한다. 좀 더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편이 옳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고 싶다면 선거제 개혁이 효율적이다. 사태가 길어지면 안보(국방부)·부동산 동맹(용산)이라는 보수의 지지기반도 와해될 수 있다.

 

여소야대 정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 집권 시기와 비슷하다. 김 전 대통령은 DJP 연합, 노씨는 5공 청문회로 야당과 신뢰를 구축했다. 지방선거마저 패색이 짙었던 민주당은 집무실 이전 이슈를 다루는 윤 당선인의 불안한 리더십 덕에 경기지사 선거를 해볼 만하다며 벼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윤 당선인 스타일이다. 극단으로 달리고, 제압하고, 돌파하려 한다. 전형적인 검찰의 대응 방식이다. 특수부 검사 세계에선 협상과 타협은 없다. 상대는 죄지은 사람이다. 죄인은 윽박질러 벌주면 그만이다. 심판은 판사 한 명이다. 정치는 다른 의견을 상대해야 한다. 협상하고 타협해야 한다. 심판은 여론이 한다. 그래서 정치는 여론 지지가 많은 쪽이 ‘맞는 주장’을 한 거다. 하물며 대통령의 상대는 5000만 민심이다. 윤 당선인 국정을 기대하는 여론이 50%도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고는 싶어도 대통령을 하긴 싫나 보다”라는 말을 윤 당선인은 새겨들어야 한다.

 

권력은 ‘결코 좁은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해나 아렌트)다. 당장 코로나에 지친 자영업자들을 다독이고,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주민들을 위로하는 당선인을 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깻잎 한장 차 승패 의미를 새긴다면, 윤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시민들의 무거운 일상을 헤아린다면 집무실 이전이라는 좁은 총구부터 거둬야 한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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