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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상관 아니라 일꾼 . 채용 잘 할 ' 투표 의무' 다해야"

장백산-1 2022. 3. 5. 14:39

 

"대통령은  상관  아니라  일꾼 . 채용 잘  할 ' 투표  의무'  다해야"

한겨레 입력 2022.03.05. 13:26 수정 2022.03.05. 13:36
 
[[한겨레S] 이충걸의 인터+뷰][한겨레S] 이충걸의 인터+뷰
법륜스님
 
법륜 스님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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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을 만난 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 뒤였고, 오미크론 확진자가 16만명을 넘긴 직후였고, 서로가 서부영화 식으로 권총을 뽑아 들고 대결한 2차 법정 대선 토론 다음날이었다. 스스로 아슬아슬한 세상의 표면을 기어오르는 지렁이처럼 느껴지던 토요일 아침, 서울 서초동 정토법당 2층에서 스님을 기다렸다. 애도의 조종 소리가 무음으로 들릴 때 어쩌면 인생은 기다림에 불과한 것 같았다. 뭔가 사실적이고 중요한 것에 대한 기다림.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결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 결정에 관여하지 않은 젊은이들, 민간인들, 어린아이들 다수가 죽기 때문에 어떤 이유의 전쟁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이 전쟁이 더 많다고 볼 수는 없어요.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속적인 평화를 원하지만 그렇게는 안 됐다….”

 

인간의 곤경이 나 자신만의 것일 리 없다. 키이우(키예프) 방공호에서 울고 있는 우크라이나 소녀를 보면 누구라도 이것이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자문하지 않을까. 전쟁 버튼을 누른 노인 푸틴이 총을 드는 것도 아니면서. 평화는 아주 작은 조각으로 오고, 순간순간 꿰매야 할 것이다. 그날 스님의 어조는 연잎처럼 나직하면서도 미열이 섞여 있었지만 직선적인 부드러움이야말로 전달력의 핵심일 것이다.

“제가 이번 대선을 보는 관점은…”

1988년, 불교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한 그는 종교라는 강고한 사슬을 벗어나 강력한 침투력으로 시민사회를 파고들었다. 덧붙여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 제3세계 구호 활동과 환경 운동이라는 주제는 그의 자화상이 시대의 비위에 맞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우뚝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그의 감각은 이번 대선에도 여지없이 작렬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뭘 하느냐를 봐야 됩니다. 국회의원이 하는 일하고 대통령 일하고는 달라요. 대통령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는 거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인기 있었지만 나라 안전을 지키는 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런데 이게 다 러시아 책임이라고만 할 수 없단 말이에요. 옆에 힘있는 나라가 있으면 자주성도 지키고 또 약간의 양보도 하면서 침공받지 않는 외교가 필요한데 자주성만 주장하면 화를 입게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침공한다면 막아내는 자주국방도 해야 되지만, 주변 나라들과 협력해 공동으로 대응하고 또 국민들이 합심해야 된다는 거예요. 거대한 힘을 가진 수나라가 작은 나라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합심해서 지켜냈던 것처럼. 그러니까 나라를 지키는 외교, 국방, 국민통합을 누가 가장 잘할 수 있겠느냐, 그 사람과 같이 있는 이들을 봤을 때 누가 더 잘하겠느냐….”

 

2019년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3·1 운동 100주년 기념대회’. 연합뉴스

 

“외교·국민통합 등 잘할 사람 뽑고 권력분산 장치 필요” …대선 앞 적극 목소리

 

그는 정치라는 주제가 갖는 민감성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대로 유효한 방법론도 제시했다.

 

“지금 선거법이 승자 독식 구조라서 한 표라도 많이 얻는 사람이 다 먹어버리고 나머지는 다 사표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선거법을 개정해서, 국민이 10% 표를 줬으면 그 10%가 국정에 반영되는,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적 제도 개혁을 해야 된다. 그리고 헌법도 좀 개정해야 된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35년을 돌아보면 감옥 간 대통령도 많았잖아요. 만약 일곱명 대통령이 다 나쁜 사람이었다면 국민이 투표를 바보같이 했다는 얘기밖에 안 되잖아요. 그렇다면 어떤 제도적 결함이 있는 거다. 대통령한테 권력이 너무 집중돼서 다 책임져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경쟁이 끝나면 상대를 증오하고 보복해야 할 사람들로 여기지 말고 그들이 얻은 표가 사표가 되지 않도록 국정에 반영하는 소위 독일식 거국내각 구성을 제가 바라기는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나라를 생각하면 그렇게 가야 되지 않느냐. 저는 이 선거를 그런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예전에는 나라가 어수선할 때마다 찾아가 물어볼 어른이 있었다. 그분들이 모두 안 계신 지금 세상에는 모두가 기둥 뒤에 숨은 고아 같다. 그는 자신을 시대의 멘토로 바라보는 천만의 눈동자 속에서도 무심해 보였지만, 시대 문법과 생리에 밝은 인사이더 감각은 뚜렷한 현실주의의 증거 아닌가.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돼 있잖아요. 임금이 주인이 아니고, 국민이 주인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5천만 국민을 대신해서 나라를 운영할 지도자를 뽑는데, 그 사람은 우리의 상관이 아니고 일꾼이에요. 우리가 일종의 채용을 하는 거란 말이에요. 선거는 국민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예요. 권리 행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의무는 안 하면 안 되잖아요. 조금 마음에 덜 드는 사람이라도 선출하는 건 의무라는 거죠.”

1만일째 환경·빈곤퇴치·평화의 기도

그 말은 우표처럼 착 달라붙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엘리트의 선택이 아니라 민주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는 냉소주의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표를 민주주의의 변소로 가는 행위로 여기는 것은 통제 불능의 기운 센 아이에게 정육점 칼을 쥐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1993년,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의 해결을 기치로 새벽 5시부터 1시간가량 예불과 명상, 경전 읽기를 1만일 동안 이어가는 ‘만일결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사이 30년이 지나 올해 12월4일,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2017년 12월 서울 광화문에서 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참여한 한반도평화대회. 연합뉴스
 
 
 
“만일결사 출발 전에 앞으로 사회의 큰 과제가 될 네가지를 잡았어요. 지구적으로는 환경, 인류적으로는 절대빈곤 퇴치, 한반도에는 평화 정착과 통일 기반 구축, 그리고 개인적 수행과 행복. 그런데 그 예측이 맞았다. 환경 문제도 더 커졌고, 절대빈곤도 세계적 과제가 되었고, 한반도에도 2017년,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개인들은 더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도 커졌다. 절대빈곤 문제는 유엔과 각국의 노력으로 많이 해소되었다. 한반도의 평화도 아직 해결 안 됐지만 전쟁 위기는 많이 낮아졌다. 개인들도 옛날에 비해 마음을 다스려 행복해진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방향은 잘 잡았는데 그걸 해결하는 역량은 부족했다, 저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어요.”

 

1993년부터 1만일간 환경·빈곤퇴치·평화 기원 ‘만일결사’ 올해로 끝

에세이처럼 풍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뷔페에 간 뚱뚱한 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삶의 진동을 바깥으로 퍼져가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 신체적인 유동성을 지킬 수 있을까.

 

오늘날의 영웅은 지난 세대의 절대적이고 엘리트적인 역할이 아니라 자신을 통한 반란과 다수(모두는 아니더라도)에 대한 공헌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내적 수행을 우선시하는 불교의 모토와 맞지 않는다는 이도 있다. 철저한 관찰자로 머물지 않고 사회의 폐부를 검진해오던 그 사람은 모든 것에 상관없는 침착한 얼굴로 웃었다.

 

2019년 태풍 ‘미탁’으로 피해를 본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긴급 구호 활동. 정토회 제공

 

“불교가 내적인 문제만 해결하는 거라면 부처님은 왜 카스트나 여성 차별이 잘못됐다고 얘기했겠어요? 그건 불교가 권력에 빌붙어서 봉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고, 거기서 떡고물 얻어먹으면서 침묵하던 관점으로 하는 말이죠. 전생에 죄를 지어서 장애인이 됐다, 여자가 됐다 그러면 장애인 차별, 성 차별을 합리화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논리는 불교가 아니에요. 산다는 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환경으로부터 영향받는 두가지 성질이 다 있는데, 사회적인 활동은 왜 하느냐, 정치에 침묵해라, 이건 독재 권력에 침묵해라, 이 말 아니에요? 결국 독재를 지지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민중의 고통에 대해 발언하는 건 정치적이라는 게 말이 돼요? 혜택은 다 누리고 어려움을 외면하기 위한 핑계로 사회 발언을 안 한다, 그건 모순이죠.”

 

규칙은 분명했다. 분명한 것은 나의 문제와 사회 문제는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의 두 얼굴이라는 사실.

 

2002년부터 시작된 ‘즉문즉설’ 강연 프로그램에서 청중의 고민에 오버랩으로 해법을 제시하는 그의 미니멀 언어는 너무 짜릿하고 긴요하며 실재적이라서 금세 대중적 기능성을 획득했다. 개인의 문제를 객관화시킴으로써 삶을 재인식하게 만드는 그의 또 다른 역할을 볼 때마다 매번 궁금했다. 그 언어는 어디서 왔을까? 그 민첩한 개방성은 무엇일까? 기나긴 수행의 열매일까? 세월이 가르쳐준 비밀일까?

온라인 법회를 진행 중인 법륜 스님. 정토회 제공

“저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입니다. 특별한 철학적 언어나 종교적 언어를 쓰는 게 아니에요. 저는 불교적인 말도 잘 안 씁니다. 저의 대화에 특별한 해결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하면 병 낫는다, 그런 게 없잖아요. 독서, 참선하고도 관계없어요. 다만 사물을 전체적으로 봅니다. 양쪽 또는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컵도 위에서 보면 동그라미고, 옆에서 보면 다르지만, 위, 밑, 옆으로 보면서 그릇의 전모를 파악한달까. 그렇게 조언하는 걸 전통적인 용어로는 지혜라고 하지만, 편견과 답을 내려놓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적 해결책이다….”

분별함이 없이 사물의 뒷면을 살피는 관점은 차라리 패셔너블해 보인다. 그런데 그는 정작 자기 고민을 누구에게 털어놓을까? 신념을 밀고 나가면서도 자신만 의지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면 얼마나 갑갑할까?

“고민의 종류가 구체적으로 뭐냐는 거지요. 마음의 고민이란 늘 자기가 만들기 때문에 자기를 살펴야 되지만, 기계를 잘 못 다루면 잘 다루는 사람한테 물어볼 거고, 배고프면 밥 짓는 사람한테 물어볼 거고, 지금같이 국론이 너무 분열될 때는 사회 원로들한테 물어볼 거고, 그 성격과 과제에 따라서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은 도무지 의심이나 불확실함을 주지 않는데,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며, 다른 이들이 원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필시 어떤 파란 속에서도 자기 확신의 꼭대기에서 노닐 것이다.

정토회에서 인도 북부 비하르주에 설립한 불가촉천민을 위한 학교, 수자타 아카데미. 정토회 제공

봄을 기다리는 까닭

“인간은 흔들림이 없어야 된다, 이렇게 정해버리면 흔들릴 때마다 실망하게 되는데 애초에 인간은 본래 부족한 존재고, 나약한 존재고, 흔들리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그런 가운데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그런 광경을 너무 자주 보았다. 머리를 구름 위에 올린 채 세속의 신으로 군림하는 재래식 종교가들, 거짓된 이름과 모양을 세워 참뜻이라 우기는 몰락한 사상가들, 막연한 종교가와 막연한 추종자의 막연한 결합들, 잃어버린 시간의 메스꺼운 명상들을. 그러나 강력한 리얼리티로 무장한 그의 서술은 촘촘히 짜인 철학적 경험을 안겨주며 우리를 역사의 페이지에 입회한 목격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어떨까? 유파가 없는 채 궤적마다 형태를 만들며 연못의 중심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도 늙는다는 자의식이 있을까? 그는 되물었다. “이렇게 늙어가고 있는데요?” 그리고 무신경한 즐거움으로 덧붙였다.

 

“할 일은 살아 있는 한은 끝이 없죠. 동시에 그게 안 된다고 안달복달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다 할 수도 없고, 나 혼자 할 수도 없다. 다만 그럴 수 없는 삶의 과제들을 매일매일 할 수 있는 만큼 해가는 거다. 그래서 소원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고 소원이 한없이 많다고도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말에는 허물이 있어서 반만 맞고 반은 틀릴 것이다. 그는 “이것만이 진리”라고 내세우지 않고, “다만 모를 뿐”이라면서 도망가지 않는다. 한편 사람들이 계속 몸을 바꿔가며 불사성의 신체를 살 거라고 예고하는 시대는 이름 없는 두려움을 하나 더 던져놓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작용이 있다. 오래 사는 만큼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문명이 발전했지만 환경 파괴라는 어마어마한 반작용에 부딪치지 않았습니까. 플라스틱을 발명했을 때도 썩지 않으니까 좋았는데, 안 썩으니까 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잖아요. 프레온 가스도 처음엔 무색, 무취, 무해한 냉매제였지만 지금은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습니까.”

 

“저는 봄을 기다리는 편이에요.
땅 갈고, 씨 뿌리고, 나무 심어야 하니까”

 

 

법륜 스님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를 만나기 전까지 자문해보지 않았던 주제들 앞에서 완전히 고독한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포괄적 사상가는 자신을 그냥 ‘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내 자화상은 농사꾼이다, 내 마지막 모습은 농촌에서 태어나서 좀 돌아다니다가 다시 농사꾼으로 죽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해요.”

 

종국에 그의 민족적 대의는 땅과 그 소출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공기 입자가 느슨해져 있었다. 별들의 운행은 울산 울주군 두북에서 전력투구하여 밭농사 논농사를 짓는 그 사람에게도 계절을 실어 날랐다.

 

“저는 봄을 기다리는 편이에요. 농사 준비 때문에. 왜냐하면 땅을 갈아야 되고 씨를 뿌려야 되고 나무도 심어야 되고 전지도 해야 되니까. 아무 때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일찍 심어도 죽어버리곤 하니까.”

 

그는 선농일치(禪農一致), 농사를 지으며 깨닫는 자. 나태로부터의 자유를 말해주는 자.

 

“제가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말은 ‘지금 출발이다’. 어제까지 연습이고, 지금 또 시작이고, 지나면 또 연습이고.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옷은 때로 누군가의 삶이자 살아 있는 생각이며, 살을 통한 접촉을 의미한다. 회색 장삼과 팥색 가사(袈裟)는 그를 엄숙하게 만드는 불투명한 의복이 아니라 신체의 견고한 에너지를 강조하는 사물 같았다.

“화두는 국민통합, 왜 못 할까”

시작이 없으니 끝도 없는 삶 속에서 그는 30년 만에 부처 가르침의 요지를 새로 강의할 예정이다. 아주 젊던 그때 불교정토대학에서의 강의는 말이 장황하고 불교 용어도 많았으나 새로운 강의는 일상 용어로 더 쉽게 온라인으로 하려 한다. “이것은 ‘1만일 전법’. ‘만일’을 정리하니까 ‘만명’이 들을 수 있게 참여시키자.”

그는 무엇을 꿈꾸느냐로 규정되는 미래를 다시 포용하기 시작했다.

 

“당장의 화두는 국민통합. 지금 이 나라가 커서 어느 한 당, 한 사람이 끌기에는 힘이 부치거든요. 그럼 상대편 인사나 정책을 쓰면 될 텐데 그걸 왜 못 할까. 지금 대한민국 국운이 굉장히 높아진 상태에서 남북 관계가 평화를 유지하고 협력을 하면 국력이 더 신장될 텐데. 전쟁 나면 경제고 뭐고 엉망이 되잖아요.어떻게 ‘코리아 리스크’에서 해방돼 핵이다, 미사일이다, 이런 소리 안 듣게 기여할 수 있을까. 또 자연이 정복 대상이 아니고 삶의 토대라는 걸 자극해서 어떻게 환경 위기를 극복할 대안적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인연 따라 만났으니 인연 따라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탐욕을 걸러내고, 쾌락을 덜어낸 이와 이야기하다 보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들 스스로 그걸 논할 자격이 없어 보였다. 밖에 나오니 오히려 형체가 없고, 시대와 무관하며, 과거와 미래가 폐쇄된 세계로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함께 있던 순간이 증발해 비현실적인 것, 덧없는 것 속으로 용해돼버린 걸까. 아침 안개가 그가 입은 가사의 색과 닮았다는 사실만이 기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법륜 스님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작가. 전 <지큐 코리아> 편집장.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와 18년 동안 써온 ‘에디터스 레터’를 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