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아 VS 오온
‘불변의 나’가 있다고 느끼는 건 뇌의 기본모드신경망 때문
신경세포는 변하지 않지만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신경회로는 변해
이처럼 변하는 신경회로가 쌓여 ‘기억’ 만들고 ‘나’라는 서사 만들어
서사가 있는 뇌의 기본모드신경망에서 ‘나’라는 정체성(假我) 형성됨
인간은 자신이 세상 안에서 ‘나’ 밖의 세상과 분리된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을 한다. 세월이 흘러 육체도 마음도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일관되게 지속되는 동일체로 착각한다. 그것이 세칭 나의 정체성(identity)이다. 나를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나의 정체성이 유지될까? 과연 ‘변하지 않는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붓다는 변하는 이 세상 모든 것은 괴로움(苦, suffering)이라고 통찰하였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가 있다면 나는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가 없기 때문에 나는 괴로워한다. 나는 변하는 존재일까? 이 물은이 붓다를 깨달음으로 이끈 위대한 질문이었다.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대표적인 논란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이다. 고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테세우스가 전쟁에 사용한 배를 아테네인들은 긴 세월 동안 보존했다. 그들은 그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로 교체했다. 그런 보수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만일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되었더라도 그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또한 “배의 부품을 교체하면서 낡은 원래 부품을 모두 창고에 두었다가, 창고에 모아둔 부품으로 배를 하나 조립했다면,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 어느 것이 진정한 원래 테세우스의 배인가?”
같은 질문을 인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까? 피부의 표피에 있는 각질 세포는 죽어서 탈락한 세포다. 죽어서 탈락된 세포를 대신하기 위해 피부 바닥에 있는 줄기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여 피부세포를 만든다. 이렇게 태어난 피부 세포가 각질 세포가 되어 탈락되는 기간은 대략 30일이다. 30일 마다 나의 피부는 새로 만들어진다. 새로 만들어진 피부는 나의 피부인가? 20대 남성의 경우 하루 약 80그램의 세포가 교체된다. 소화관의 상피세포는 3~5일 만에 교체되며, 심장세포와 신경세포는 수년 혹은 평생을 우리와 함께 생존한다. 이처럼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생존기간은 서로 다르지만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뀐다. ‘테세우스의 배’와 유사하다. 지금의 ‘나’는 지나온 지난 세월의 ‘과거의 나’와 동일한가?
이 질문에 대해 붓다는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붓다는 ‘나’라는 존재는 몸(色)에 마음(識)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나’는 인식대상을 만나면 느낌(受), 생각(想), 반응 의지 욕구(行)가 생기고 종국에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마음(識, 분별심)이 일어난다. ‘나’는 실체가 없는 이런 다섯 가지의 요소(오온, 五蘊)가 쌓인 존재(五蘊), 허상(虛像)일 뿐이다. 정신적 요소[受,·想,·行,·識]이라는 마음은 순간순간 변한다.
원숭이가 이 나뭇가지를 잡았다가 놓고 저 나뭇가지를 잡고 이동하는 것과 같이 마음은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고 하였다[원숭이 마음, 원심(猿心)]. 나의 몸[色]도 마찬가지다. 생노병사(生老病死)한다. 이렇게 붓다는 고정불변하는 나는 없다(無我)고 통찰하였다. 그 통찰은 제법무아(諸法無我)로 이어지고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더하여 삼법인(三法印)이 된다.
정말 ‘나’는 없는가? 이 물음을 세속의 눈으로 보자. 정말 ‘나’는 없는가?라는 이 물음은 자아(自我 ego)의 문제이다. 인간의 기억은 어렸던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파노라마이다. 누구에게나 그 파노라마는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것이 나에 대한 서사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서사시를 우리는 ‘자아(自我)’라 지칭한다. 그 자아의 내용(서사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 마치 피부 세포가 30일마다 새롭게 만들어져도 그 피부는 변함이 없는 나의 피부라고 여기듯 자아의 내용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데도 ‘바뀐 자아’를 ‘과거의 자아’와 동일시하며 그것을 ‘나’라고 굳게 믿고 있다. 왜 그럴까?
‘바뀐다’는 말에 함정이 있어서 그렇다. 우리 몸의 세포는 100% ‘온전히’ 바뀐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마음을 만드는 뇌신경세포의 대부분은 나와 일생을 같이 한다.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했다. 신경세포가 변하지 않는데 왜 마음이 변할까? 신경세포들은 그대로인데,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인 신경회로(神經回路)가 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한 신경회로로 되어 있다. 그 신경회로 가운데 일부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살면서 경험하고 학습하는 모든 것은 나의 뇌에 새로운 신경회로로 쌓인다. 그것이 기억이다. 쌓였던 신경회로는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망각(忘覺)이다. 대부분의 기억은 희미해져 흔적만 남긴다. 그런 흔적들이 모여 무의식(無意識)이 되고 나의 ‘마음성향’을 결정하는 밑그림을 그린다.
결국 뇌과학으로 보아도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자아(自我)는 없다. 새로운 기억이 첨가되기도 하고 쌓였던 기억이 허물어지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자아가 있을 따름이다. 그런 자아가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나의 이야기, 나의 서사시를 만든다. 그 서사시는 시간이 흘러도 일관되게 ‘나’의 이야기를 연속시키기 때문에 나는 나의 정체성을 느끼는 것이다. 자아의 이런 측면을 서사적 자아(narrative ego)라 한다. 그 서사시가 있는 곳이 뇌의 기본모드신경망이다. 또한 자아는 현 시점, 지점에서 ‘나’라는 개체가 세상의 어디에 있는지 자각한다. 그 같은 자각이 나를 ‘나’ 밖의 세상(世上)과 분리(分離)된 하나의 개체(個體)로서의 존재임을 착각하는 것이다. 즉, 나는 개체화된 자아(embodied ego)이다. 나는 너와 분리된 개체로 여기 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로 오라고 하면 그 목표지점을 찾아갈 수 있다. 이것은 주변에서 현저히 돌출되는 대상을 탐지하여 나의 좌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돌출탐지망(salience network)의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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