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진정한 정체
감정이나 생각은 번갯불 같아 금방 사라지고 허망하기 때문
스스로 얽매인 마음 자각해야 후회 벗어나서 유연한 삶 살아
얼마 전 20대 청년한테서 1년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해 전화로 상담했던 친구여서 잘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님! 마음이 괴로울 때 어떻게 하면 괴로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순간적으로 약간 당황했습니다. 매일 부처님 가르침을 보고 배운다지만 지금 한참 마음이 힘들다며 간절하게 괴로워하는 마음에 대해 묻는 그 청년에게 짧게라도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대답을 하셨을까?’
부처님께서 어는 날 숲에 계실 때 어떤 청년이 마음이 괴롭다고 울부짖으며 헤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오너라! 여기에 더 이상 괴로움은 없다.” 그리고 다가온 청년에게 차근차근 법을 설하십니다. 그 청년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괴로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세상살이가 괴로움의 연속임을 알고 곧바로 출가합니다.
귀한 아들이 부처님 제자가 돼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님에게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장자시여. 아들은 이미 세속의 즐거움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자고 해도 아마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막상 아들을 만나보니 부처님의 말씀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장자는 부처님과 아들이 있는 승단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약속하며 돌아갑니다.
부처님이셨다면 과연 이 20대 청년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망설이다가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어색하게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긴 문자를 그 청년에게 보냈습니다.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더 명확한 답을 찾고 싶어서 ‘맛지마니까야(이중표 역해)’도 보고 ‘잡아함경1(김윤수역)’도 읽고 있습니다. 오히려 청년에게서 받은 질문을 부처님께 하는 셈입니다.
‘제 9 염리경(厭離經)’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신체는 항상하지 않는다. 항상하지 않는 무상한 것은 괴롭다. 괴로운 것은 곧 내가 아니며 내가 아닌 것은 내 소유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바른관찰[眞實正觀]이라고 한다. 이같이 느낌 생각 욕구 기억들도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다.” 곧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겪는 감정이나 생각은 모두 번갯불과 같습니다. 모양을 보고 소리를 듣고 놀람과 두려움을 경험하지만 이것들은 금방 사라져버리는 허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 자신을 보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방에 무언가를 가지러 왔는데 들어와서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마음의 진정한 정체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분명 무엇인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라는 마음이 일어났었고 ‘ 중요하고 필요한 그것을 찾아야지!’라는 마음이 일어났었는데 잠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른 것을 보고 듣는 사이에 그 마음은 영영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본래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마음인들 금방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어떤 마음도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다만 내가 기분이나 생각을 꼭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죽도록 매달리는 것입니다.
특히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우울감을 잡고서 오히려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경우를 봅니다.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공격하는 성향이 많습니다. 스스로 자책하고 후회하며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우울감을 잡는 그 습관을 어느 누가 매번 그 마음을 쓸 때마다 지키고 있다가 우울감을 잡지 않도록 지켜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우울해 하는 그 마음을 자신이 붙들고 놓지 않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울해 하는 마음을 영영 놓지 못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온갖 마음을 만납니다. 아무리 큰 슬픔을 겪어도, 그 좌절의 경험들을 건너왔습니다. 이 경험을 되살려서 다가오는 마음들을 ‘잠시 지나가는 마음들이야!’라고 보고 산다면 좀 더 유연하게 자유롭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그 마음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54호 / 2022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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