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 - 일대사인연

장백산-1 2023. 1. 8. 16:29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 - 일대사인연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다 같이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몇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면, 4차 세계불교도대회(1956년)에서 서기1956년을 불기2500년으로, 부처님오신날을 양력 5월 15일로 통일하기로 결정했지만, 우리나라와 일부 불교국가에서는 음력 4월 8일, 일본은 양력 4월 8일, 남방지역 국가들은 음력 4월 15일 등 각 나라마다 전통적으로 시행해온 부처님오신날을 그대로 유지하여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출생년도는 동일합니다. 금년이 불기2564년입니다. 불기는 열반을 기준으로 하고, 부처님은 80세에 열반하셨기에 2644년 전에 탄생하셨습니다. 참고로 금년도 부처님오신날 표어는 “자비로운 마음이 꽃피는 세상”입니다.

자 그러면 부처님이 출가하신 목적, 우리가 불교에 귀의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부처님이 출가한 목적은 4고(괴로움, 苦),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4가지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음성고까지 더하면 8가지 괴로움이지만, 통상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근본적인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출가하신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 수행한 결과,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근본적인 괴로움을 극복하였고, 그 후 45년간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낮은 곳에서 보살행을 실천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닫기 직전, 초저녁에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의 수많은 전생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지혜가 이루어졌습니다. 시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숙명통이 생긴 겁니다. 우리는 어릴 때 정도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그 만큼 시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로는 지옥에서 위로는 욕계 천상을 넘어, 색계와 무색계의 천상까지 모든 존재들의 삶과 그 존재를 담고 있는 세상들도 다 볼 수 있는,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천안통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그 공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녘에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누진통이 생겼습니다. 일반적으로 “탐, 진, 치, 만(자만심), 의(회의적인 의심), 견(잘못된 견해, 5가지)” 10가지를 근본번뇌 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 스스로 지난 세상의 모든 일들이 명료하게 다 보이는 세 가지 지혜, 삼명(三明)이 완전해져서 괴로움을 극복하였고, “태어남은 부셔졌고, 청정한 삶을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마쳤으니,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다.” 하시면서 스스로 나는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윤회는 한계 지어진 세상을 한계 지어진 몸 마음으로, 살아져야 하는 삶의 무한반복입니다. 깨달았다는 것은 시공간의 한계 속에서 벗어났다는 것으로 업(業)에 이끌려 살아지는 삶에서 대자유인으로 원생(願生)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핵심은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성 입니다. 연기법, 인과법, 상의상관법 입니다. 이 3가지는 같은 것으로,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른 다른 표현입니다.

연기법(인연생기)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일어났다, 인연 따라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의 결합으로 이루어졌고, 그 원인과 조건이 바뀌면 변한다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현재 모습은 보이고 있지만, 고유한 실체가 없기에 항상 변한다. 실체가 없으므로 공하지만, 변하는(연기하는) 과정에서 현재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모든 것은 고유의 실체가 없어 원인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나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이다. 즉, 현재 드러나 있는 모습은 실체가 없는, 연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임시적인 현상으로 거기에 집착하지 마라. 이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바로 보는 올바른 견해, 여실지견(정견, 지혜)입니다.

인과법은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는 것이고, 원인은 반드시 결과를 가져온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사는 것도 반드시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그에 따른 과보가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상의상관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기 위해 주위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절대 홀로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모의 몸을 빌려야만 태어 날 수 있고, 부모의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물, 공기 등 자연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주변에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며, 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핵심은 우주의 모든 만물에 대한 존재의 관계성이며, 그 존재의 관계성을 연기법, 인과법, 상의상관법으로 설명하셨고, 이것은 부처님이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지만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걸 게송으로 이야기한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도 멸한다.” 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나”라는 것은 있는 것 같아도, 인연이 다하면 흩여져버리기 때문에 고정 불변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나”는 연기하는 과정에서 임시적인 것, 스쳐지나가는 현상이므로 집착하지 마라. 현재의 임시적인 나를 잘 포장하기 위해 내 내면에 있는 진정한 나를 더럽히지 마라. 그것은 본성과 더욱 더 거리가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업에 의해 살아지는 삶(업생)에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원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수행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주의 존재의 진리와 이치를 모르는 무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성인 연기법을 모르고 현재의 나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려고 하는데 그게 뜻대로 안되니 괴로운 것입니다.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고 죽은 것이 아니라, 고유의 실체가 없어 원인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현재의 “나”에 집착합니다. 인과법을 알면서도 탐진치 삼독심을 버리지 못하여 내생의 존재를 결정하는 나쁜 인을 짓고 살아갑니다.

상의상관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 경쟁논리 속에서 오히려 남이 잘못되어도 나는 잘 되어야한다. 또는 자기 이권을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을 굉장히 편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무명 속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연기하는 과정에서,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내 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부처님이 깨달은 핵심인 연기법, 인과법, 상의상관법을 올바로 깨닫고, 나의 내생을 결정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최종 목표가 업에 이끌려 살아지는 업생으로 살기보다는 석가세존과 같이 성불하여 대자유인,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으로 사는 원생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글귀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 는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연기 법칙을 모르고, 무명 속에 살아가는 우리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법화경 <방편품>에 의하면, 최상의 성인이시며 사생(태생, 난생, 습생, 화생)의 어버이시고,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서원과 목적은 크고 깊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으나,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이라고 하였습니다.

일대사인연 때문에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4가지 부처의 지견, 사불지견(四佛知見)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개(開), 부처님의 경지(지혜)를 스스로 열어서, 시(示), 부처님의 지혜를 중생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려고, 오(悟),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혜를 스스로 깨달게 하기 위해서, 입(入), 부처님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게 하기 위해 세상에 출현하셨습니다. 이것을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무명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처님의 경지(지혜)를 열어서(開), 보여 주시어(示), 우리 중생들을 깨달게(悟)하기 위해, 그리고 그 지혜로 들어가게(入)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개(開) 열어서, 시(示) 보여서, 오(悟) 깨닫게, 입(入) 들어가게 등 4가지 지견(知見). 개시오입을 사불지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인줄 모르고 중생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부처되게 하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 이것이 일대사인연입니다. 궁극적으로 부처가 되도록(성불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탄생게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 하늘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당연히 평안하게 하겠다. 입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사방으로 7걸음을 걸으시고, 한 가운데로 오셔서 오른 손을 하늘, 왼 손은 땅을 가리키며 탄생게를 하셨습니다. 사방으로 6걸음을 지나 7걸음을 걸으셨다는 것은 육도 윤회를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이 탄생게는 바로 우리의 금생의 목표이자 부처님으로 사는 법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 위 하늘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내 스스로 나를 한없이 높인 것으로,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진정한 자존심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존심의 제일 끝, 천상천하유아독존입니다. 진정한 자존심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가치가 남과 충돌하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했지만, 부처님의 45년 동안 삶은 어떠하였습니까? 보살행이었습니다. 가장 낮은데 기거하시면서, 모든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사셨던 분입니다. 벽암록에 나오는 “고고수미정(高高須彌頂) 심심해저행(深深海底行)”과 같은 삶입니다. 마음가짐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미산 꼭대기보다 높고(넓고), 살아가는 행은 깊고 깊은 바다의 밑보다도 낮다. 입니다. 깊고 깊은 바다의 밑보다도 낮은 삶은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삶입니다. 바로 부처님 삶입니다.

부처님은 “삼계개고 아당안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므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기도 합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를 모르고, “천상천하유아독존”만 보고 “자기만 존귀하다/ 잘났다고” 생각하면, 무식한 자신의 마음 수준을 드러내는 겁니다. 성불하면 누구나 존귀하다. 우리도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처님이 부처님의 지혜(경지)를 열어 보여 주었기에 우리도 수행하여 깨달고, 깊이 들어가 불성을 회복하면, 부처님처럼 존귀해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만 존귀한 분이 아니라, 우리 모두 존귀한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로만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라.”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직접,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면서 실천해 보였습니다. 우리 중생을 부처되게 하고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수행의 결과 부처됨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셨기에 우리도 부처님의 삶을 잘 살피고, 부처님의 말과 행동을 잘 배우고, 부처님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것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자세입니다.

또한, 부처님이 “무명, 번뇌 망상의 삶을 살지 말고, 지혜의 삶을 살아라.” 라고 일깨어 주셨기 때문에, 나도 부처님처럼 지혜의 등불을 밝히겠다는 다짐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등을 밝힙니다. 연등 공양은 등(燈) 공양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등 공양 이후에는 간절한 기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빛은 모우면 모울 수록 더 밝기 때문에 나만 지혜의 등을 밝히는 것 보다는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혜의 등불을 밝히도록 인도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습니다.

이걸 우리는 “무진등”이라 합니다. 한 횃불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 횃불에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이 횃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횃불보다는 주변이 훨씬 밝습니다. 그래서 나만 지혜의 등을 밝히는 것보다 우리 모두가 지혜의 등을 밝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공법계 제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법계중생 모두 함께 성불하여 지이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자각각타, 자리이타행입니다. 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고,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보살행입니다.

우리도 부처님 같이 수행하여 “부처가 되어야겠다.” 부처님이 되어서는 “고고수미정 심심해저행”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보다 높고(넓고), 살아가는 행은 깊고 깊은 바다의 밑보다도 낮은 그런 삶을 살겠다.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장병 여러분들의 지혜로운 삶을 축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군7성남1팀, 正明 金景洙 합장.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