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꽃바람의 사는 이야기
참의식이 말하다 (요약)
나타난 세상에서 인간도 돌덩이와 다름없는 하나의 물체일 뿐이다. 감지력 때문에 무생물과 생물이 나뉘었고, 지능 때문에 인간과 동물이 나뉘었다. 시비하고 분별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해석을 하는 능력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라는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나타나 보이는 현상들은 현상들의 기본 바탕의 그림자 같은 것들이다. 이 기본 바탕을 방편상으로 참의식, 부처, 도, 본래면목,신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독립된 개별적인 개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에서의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뉘어 질 수 없는 하나됨이다. 나의 진정한 본성, 하나됨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바탕 그 자체다.
많은 깨달은 사람들은 전체성(全切性), 진정한 본성, 하나됨을 바다, 지구, 꿈 등에 비유했다. 깨달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각각 다른 이유는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나타나 보이는 이 현상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념이고 환상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수평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수직적으로 매 순간 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시간 공간이란 말도 개념 환상일 뿐이다. 3차원의 물체가 투영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인식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부모나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행동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마음 구조체가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밖에서 들어오는 생각에 반응하는 것 뿐이다. 인간은 특정한 성격을 가지고 잉태되서 태어나기 때문에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밖에서 들어오는 생각에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참의식이 작용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깨달음은 개인과는 전혀 상관없이 비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깨달은 사람은 없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다 실제로 특정한 형태로 진동(振動)하는 에너지일 뿐이다. 유일한 진리는 여기 이 자리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라는 존재감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모두가 꿈이고 참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개별적인 것은 없다.
우리는 타고난 성격에 따라 기능할 뿐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는 통제할 수 없다. 깨달은 이는 결과에 대한 걱정없이 해야할 일에 집중한다. 신경쓰지 말고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라. 내가 하는 행동은 내가 아닌 참의식, 본래면복, 부처, 신이 하는 행동이다.
개별적인 존재처럼 신과 여신들도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창조물일 뿐이다. 생각은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다. 의사에게 일어날 만한 생각이 변호사나 기술자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은 삶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 전체가 역설이 된다. 자유의지도 숙명의 일부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 중에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지 않는 사건 사고는 없다.
삶은 오직 불확실성이라는 축복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확실한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하는 것은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꿈이다. 세상은 유기적이고 서로 연결된 하나의 과정이지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능에 의해 갇혀 있다. 깨어 있는 상태와 잠자는 상태의 이전 상태는 공(空)이다.
세상의 어느 것도 고정된 것은 없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서로 상반되는 것은 서로 연결(連結)되어 있어 상반되는 하나는 상반되는 다른 하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변화하지 않는 영원불변하는 것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자신이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다른 힘에 의해서 살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현상세계는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번개, 이슬과 다를 바 없다. 깨달음은 세상이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번개, 이슬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꿈꾸기 시작한 순간 탄생한다. 깨닫고 나서 아는 것은 나라는 것은 꿈 속에 인물이고 생을 다하는 동안 살아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삶은 참의식이 쓰고 있는 소설이다. 모든 행동은 비개별적이다. 따라서 선악을 행하는 주체도 없고, 상을 주고 벌을 받을 주체도 없다. 모두 이미 프로그램되어진 대로 나타날 뿐이다.
찾음은 개인이 완전히 소멸되면서 끝난다. 깨달음이 뜻하는 바는 주체행동 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이해한다면 안전의 보장을 바라는 마음은 사라진다. 깨달음 뿐만 아니라 현실 자체가 개념이다. 모든 경험은 언제나 그 순간의 경험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충실해야 한다. 어떤 일에 집중하면 내가 있다는 생각이 없어진다. 뇌는 생각을 만들 수 없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생각에 반응할 뿐이다. 이 세상이 꿈이라는 사실에 아무 의심도 없을 때 꿈에서 깨어난다. 깨달음은 현실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꿈꾸는 자가 아니라 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일 뿐이다.
우리는 꿈속에 인물로 살아지고 있다.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사건을 기억한 것일 뿐 자신의 전생은 아니다. 주체 행동 의식이 사라질 때 사랑과 자비는 자동으로 일어난다. 감각과 느낌과 생각이 스스로 조화롭게 일어날 것이라 믿고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게 놔두어야 한다.
선악, 미추, 빈부 중 좋아하는 것만 경험하고 싶지만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행•불행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이해가 있다면 별거 아니다. 참의식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사라진다. 모든 일은 참의식이 스스로 즐기는 일이다.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다만 변한다는 사실만이 진리다. 개인은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면 세상은 혼란하여 존재할 수 없게된다. 운명은 의미가 없다 다만 따라갈 뿐이다.
가끔 미래를 보는 점술가가 있는데 그들은 보통 사람보다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재능을 가졌을 뿐이다. 죽을 때 몸 안에 갇혀 있던 의식이 풀려나서 참의식으로 합해진다. 죽음, 저승, 점성술, 환생, 관상, 명리 등은 현상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현상세계를 초월(超越)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죽음, 저승, 점성술, 환생, 관상, 명리 이런 주제는 하찮은 것들이다.
자아가 없기에 자아의 윤회도 없지만, 행위는 있고 행위의 결과도 따라온다. 행해지는 행위는 있지만 행위자는 없다. 윤회하는 개체는 없고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는 자아도 없다. 다만 소리가 있으면 메아리는 돌아온다. - 석가모니
깨달은 사람은 주체 행동 의식 없이 일하는 마음으로 행위한다. 생각하는 마음은 걱정과 불안을 만든다. 일하는 마음은 현재의 순간만 신경쓰고, 생각하는 마음은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며 일한다. 일하는 마음은 현재하는 일과 관련이 없으면 과거나 미래를 신경쓰지 않는다. 오직 당장 하는 일을 위해서만 기억을 이용한다.
판단하기 시작하면 참의식, 부처, 본래면목, 신, 도(道)는 사라진다. 나에게는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나는 단지 꿈속의 인물이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 기능할 뿐 진정 “나”는 없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신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깨달은 자는 자신을 독립된 존재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깨달음이 일어날 때 개인적인 “내”가 사라지기 때문에 삶에 대한 걱정과 의문과 문제가 사라진다. 깨달음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 즉, 완전한 받아들임이다. 깨달은 이는 없다.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의식하는 정체성이 제거된 상태를 깨달음이라고 한다. 현상 세계는 본체의 그림자이고 본체는 현상세계를 초월한다.
산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자연 발생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고 비참해진다. 아무것도 이룰 것이 없다. 그것은 늘 거기에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긴다. 자연발생적으로 반응하고 받아들인다.
화, 생각, 감정은 외부에서 들어온다. 수직적으로 그 순간에만 있고, 수평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얽매이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난다. 단순하고 자연발생적인 삶을 살아갈 때는 겸손은 생활의 일부가 된다.
이 꿈이라는 연극에서 너에게 한 역할이 주어졌다. 너는 조금도 결과를 걱정하지 말고 그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꿈이라는 연극 속에서 주어진 너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그 역할을 해 내는 일뿐이다. 결과는 너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변화가 삶의 기초이고, 상반된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만 선택할 수 없다.
과학적으로 몸은 특정한 형태로 진동(振動)하는 에너지에 불과하다. 기존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새로운 세포들이 만들어진다. 진동하는 에너지는 지속되지만 궁극적으로 실체가 없다. 찾는 자가 사라질 때, 시간의 흐름이 사라질 때 이해는 불현 듯 일어난다. 몸-마음은 깨달음이라는 비개인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쓰이는 객체일 뿐이다.
현재 지금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삶과 싸우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다. 있는 모두가 신이다. 신을 찾는 일은 개인으로 시작해서 개인이 사라지고,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치면서 끝난다. 궁극적인 이해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선택은 내 몫이 아니며 태어나는 순간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인간은 단지 참의식이 기능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참의식이 에고를 통해서 당신이 어느 장소에 있어야 할지를 지시한다. 인지하는 자와 인지되는 대상은 같다. 세상은 참의식에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현실이 아니다. 찾음이 사라질 때 그 “나”라는 찾는 자도 사라진다. 이 모두가 꿈이고 비개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나는 전체성이 기능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나”는 없다.
육체가 죽을 때 생각과 기억, 인상들의 묶음이 모두 참의식이라는 저수지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생각과 기억, 인상들의 결과에 따라 일어나는 특정 행동이나 일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려면 새로운 유기체가 필요하다. 참의식은 새로운 유기체를 창조하여 그런 일들을 일으키도록 한다. 카르마도 있고 부활도 있지만 특정한 개체가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삶이 있었다면 기억도 과거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한 전생이 자신의 전생은 아니다. 영혼이 없으므로 영혼의 윤회도 없다. 하지만 행위는 일어나고 행위의 결과는 따라온다. 행해지는 행위는 있지만 행위자는 없다. 윤회하는 개체란 없고 옮겨 다니는 자아도 없다. - 부처
모든 것이 참의식이라는 저수지로 들어가고 거기서 새롭게 창조되는 유기체들에 배분이 된다. 정말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창조도 없다. 파괴도 없다. 목표도 없고 길도 없다. 자유의지도 없고 운명도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가득차 있다. 텅~빔은 텅~빔으로 가득차 있다. 목격이란 현재 순간에 산다는 뜻이다. 현재 순간에 산다는 것은 얽매이게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순간에 산다는 것은 수직적인데 반해, 생각하는 마음은 수평적으로 시간 속에서 지속된다.
어떤 개별 유기체에도 의지력이란 있지 않다. 카르마가 매 순간 만들어지지만 그것이 어느 누구의 카르마는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현상세계는 사실이다. 그래서 실재한다. 하지만 현상세계는 참의식이라는 바탕 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참의식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세계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걱정이 일어나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라. 걱정이 멈추는 유일한 길은 변화가 삶의 기초이고 좋아하는 것만 계속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현상세계 전체에서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하루 하루, 순간 순간, 삶을 받아들이면 삶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 진다.아무것도 아닌 것이 바로 근원이고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의 근원은 아무것도 아닌 바로 공(空)이다. 자신의 진정한 본성, 공(空)을 찾으려는 바로 그 생각, 깨달음을 바라는 바로 그 생각 자체가 가장 큰 장애다. 뭔가를 바라고 원하는 까닭은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비개인적인 이해는 뭔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개인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이해다. 기쁨이 찾아 온다면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기쁨이 찾아 오지 않는다고 해서 갈망하지는 말고.
아이는 자신을 참전체성의 일부로 본다. 아이의 경우는 깨달음에 무지가 더해진 상태다. 우리는 다 꿈꾸고 있는데, 죽을 때 꿈에서 깨어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하는 행동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 행동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생각이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별 유기체로써 단순히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생각은 외부에서 당신의 두뇌속으로 들어간다. 생각이 들어오고 말로 표현되고 나서 행동으로 실현된다. 생각은 의도할 수 없다. 일어날 일은 모두 일어난다. 참의식이 당신을 소유하고 있다. 이 모두가 그냥 일어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편안히 앉아서 일이 일어나게 놔두고 지켜보라.
당신이라는 유기체는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세상이 지금 있는 이 상태로 있는 까닭은 이 상태가 정확히 세상이 있어야 할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단지 진동하는 에너지의 한 패턴일 뿐이다. 의지력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분리된 개체로서 독립된 인간이라는 그런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원하는 것이 “나”인데, 깨달음은 “나”가 제거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다.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당신이 일어나게 만들 수는 없다. 언제 죽을지를 아는 것보다 죽음에 대한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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