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일 뿐, 한마음일 뿐
중도란 이 세상 그 무엇도 둘로 나누거나, 양 극단으로 나눌 수 없다는 불이법(不二法)의 가르침이다. 둘로 나누는 이법(二法)의 길로 가지 않고 중도를 걸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이법이라고도 한다. 불이법은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 둘로 나누지 않는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임을 의미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전혀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허망한 의식이 차별지어 둘로 나누는 것일 뿐 이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한바탕일 뿐이며 한마음일 뿐이다.
긴 것은 짧은 것이 있어야 긴 것이 된다. 짧은 것을 인연으로 긴 것이 성립된다. 그렇기에 짧은 것이 사라지면 긴 것도 사라진다. 다시 말하면 짧은 것이 없으면 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짧은 것과 긴 것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의미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이와 같이 연기적으로 성립된 것이며, 연기적으로 성립된 모든 것은 둘로 쪼개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요, ‘한바탕’, 한마음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도 내 마음에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부자라거나 가난하다거나 하고 분별했을 뿐이지 사실 부자는 가난한 자가 있을 때만 성립되는 분별일 뿐이다. 처음부터 혼자 무인도에서 태어나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도 모르는 한 존재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부자라거나 가난하다거나 하는 분별이 애초부터 없을 것이다. 이처럼 부자와 가난은 둘이 아니며 그렇기에 참된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하나의 바탕에서 부자라거나 가난하다는 인식이 나왔을 뿐, 부자나 가난한 자의 바탕은 하나다.
중생과 부처도 마찬가지다. 중생이 있으니 부처가 있을 뿐이지 본래 부처란 없다. 당신은 전혀 중생이 아니며 부처도 아니다. 중생과 부처라는 착각이 있을 뿐 중생과 부처 둘은 전혀 다르지 않은 한바탕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실로 둘이 아니다. 전체로써의 하나이며 한바탕이고 한마음일 뿐이다.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고, 석가모니불이 따로 있고, 아미타불이 따로 있다는 착각은 분별의 방편에서나 가능한 말일 뿐, 그 모든 불보살님은 둘이 아니다. 불보살님만 둘이 아닌게 아니라 중생과 부처도 둘이 아니니,
내가 곧 관세음보살이고 석가모니 부처이며 아미타부처인 것이다. 그러니 기도 중에 부처님을 친견했다는 말이나, 적멸보궁에 가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했다는 말이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나 자신을 마주했다는 말이 서로 다르지 않다. 내가 곧 타인이며, 내가 곧 부처이고, 내가 곧 마음이며, 내가 곧 경계이고, 우주이며, 생각이자 느낌이고, 이름 붙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이 곧 나와 둘이 아닌 한바탕이다.
내 안에서 이 우주의 모든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그 모든 인물들이 다 나 자신이며, 그 모든 사건들 또한 한바탕 분별이며 착각이었을 뿐 본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든 역사가 내가 꾼 꿈일 뿐이다. 이 세상이라는 중생세간 전부가 나라는 부처가 꾸고 있는 꿈일 뿐이다. 시간과 공간 또한 하나의 개념이며 분별일 뿐 정해진 무언가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 모두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착각일 뿐이며, 나와 다르지 않은 하나다.
이처럼 이 우주는 존재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욕망이든, 인식이든, 원자, 원소, 미진에서부터 은하와 우주라는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전부 ‘하나’이며, ‘한바탕’이고, ‘한마음’일 뿐 서로 차별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 하나, 한바탕을 이름하여 일심, 한마음, 참나, 본래면목, 주인공, 불성 등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그 이름 또한 하나의 분별일 뿐, 그것은 어떤 모양이나 특징을 가진 인식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공(空)이며, 본래무일물일(본래 아무 일도 아무 것도 없다) 뿐이다. 언제나 이 우주에는 한 물건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하나, 이것일 뿐.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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