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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일까요?

장백산-1 2024. 3. 9. 15:18

‘이것’은 무엇일까요?


게임 한 가지를 해 볼까요. 어렸을적에 우리는 스무 고개 놀이를 하면서 놀았지요. 먼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하고 말이지요. 그런 뒤에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그것은 동물입니까?’, ‘그것은 키가 큽니까?’ 하는 등의 질문이지요.

이해 되셨나요? 그렇다면 우리도 ‘이것은 무엇일까요?’의 답을 찾아가는, 즉 제가 말하는 바의 ‘이것’을 찾는 재미있는 그러나 진지한 퀴즈를 하나 풀어볼까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수많은 이름을 붙입니다. 그 이름들을 예로 들어보면, 불성, 자성, 참나, 본래면목, 주인공, 깨달음, 일심, 한마음, 신성, 본래무일물, 자성청정심, 마음, 법, 도, 부처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이렇게 방편으로 많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뿐, 그 이름이나 개념 속엔 ‘이것’이 없습니다. 즉, ‘이것’을 찾으려면 이것에  붙인 방편의 이름을 해석하고 쫒아가서는 이것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하려 하는지를 대충 알아들으실텐데요, 그렇다면 이것에 대한 답은 애초에 틀렸습니다. ‘이것’은 머리로는 전혀 이해될 수 없습니다. 헤아려 알 수 없지요. 이것은 이해를 해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것’ 하나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찾아지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찾으려는 그 어떤 노력도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것’은 그렇게 엄청난 수행을 통해서, 혹은 피나는 고행을 통해서나 찾을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대단한 무엇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을 찾고 있는 내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결코 성취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찾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이것’이 아닌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우리는 ‘이것’을 찾을 수도 없지만, 이것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이것을 잃어버릴 수도 없으며, 이것 아닌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수행의 끝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언제나 이렇게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것’이며,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이것’이고, 코로 맡아 지는 모든 냄새이며, 혀로 맛보아지는 것,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컴퓨터 자판 두드는 소리, 도둑고양이의 울음소리며, 숨쉬는 것, 어께가 결리는 것, 다리에 쥐가 나는 것, 따뜻한 햇살 등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리에 이렇게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이것으로 모든 것은 완성되어 있고, 이미 여기 이대로 충분합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이것’만이 있습니다. 이것 아닌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하나의 진실만이 언제나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 하나의 마음’이라고 하여 일심, 혹은 한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바로 그 마음이라고 하여 직심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바로 눈앞의 지금 이 자리’라고 하여 당처라고도 부릅니다.

‘이것’은 전혀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어는 곳에서나 눈앞에 명백하게 온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보면 보이는데서, 들으면 들리는데서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러나 이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알음알이로, 지식으로, 인식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것은 확인될 뿐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확인하려고 하는 내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발심이 간절해졌을 때 문득 확인이 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확인하겠다는,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간절함이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그렇다면 확인될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