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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선(禪)

장백산-1 2024. 8. 7. 15:24

 생활 속의 선(禪)


법성게에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라고 일체법이 본래부터 움직임이 없고 고요해서 본래부터 적멸 아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 사람들이 생각과 망상으로 분별하지만 않고, 둘로 나누지만 않으면 지금 여기 우리 눈앞에 드러나 있는 지금 이대로의 현실 그 자체 본연의 고요함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평범한 생활 자체가, 우리가 만나고 접촉하고 바라보는 것 하나 하나가 고스란히 고요함을 품고 있게 됩니다.

텅 빈 마음으로 서쪽으로 떨어지는 장엄한 노을을 바라볼 때 알 수 없는 깊은 고요함 속에 빠지게 됩니다. 고요히 바라보면 그저 땅 위에 피어 있는 풀 한 포기 조차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푸르른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떠가는 것 조차 시가 되고 선이 됩니다. 생각으로 해석해서 보지 않고, 그저 텅 빈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는 바라보는 모든 것이 놀라운 아름다움이 됩니다. 비 오는 날 숲 길을 걸을 때 코 끝에 느껴지는 소나무 향기는 고요하지만 깊은 평온을 가져다 줍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커피 향 올라가는 그 그윽한 연기 하나가 아주 깊은 평화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분별하지 않고 봤을 때, 무엇을 마주하더라도 거기에서 묘한 어떤 깊은 고요를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어느 날 누굴 만나기로해서 커피숍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 시켜놨어요. 창문으로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나기로 했던 분이 많이 늦는다고 연락이 와서 뜻하지 않게 홀로 차 한 잔과 앉아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한참을 멍하니 커피 잔과 창 밖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그 순간, 갑자기 창 밖을 걷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더군요. 마주하고 있는 커피에서 올라오는 향, 연기 하나조차 아주 성스럽게 느껴지고, 뭐랄까? 아! 선이, 선이 피어오르고 있구나! 내가 이렇게 앉아서 좌선하는 것이 선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가 선이구나! 지금 이 자리가 고요한 자리구나! 싶데요.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이 이렇게 확연하게 보이고 들리지만 거기에 아무런 분별이 없는 그냥 보기만 하는 이 자리가, 바로 이 자리가, 바로 그 고요한 그 자리구나 싶었습니다! 언젠가 히말라야에서나 가을 지리산에서 홀연히 바람이 불어 와 단풍이 막 후두둑 떨어지고 있는데, 정말 그 순간!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만난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쨍하는 그 무언가가 번쩍하고 지나가던 그 순간을 다시금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에 속으면 안됩니다. 이게 그렇다고 해서 저는 쨍 안하던데요 하고 이렇게 얘기할 필요는 없단 말이죠. 이건 하나의 표현에 불과한 겁니다. 사실 언제나 진리는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는 깨달음의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언제나, 망상만 피우지 않으면, 둘로 나누지만 않으면. 그래서 무심하게 뭔가를 바라볼 때, 무심하게 산길을 걸을 때, 무심하게 노을을 바라볼 때,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제법부동본래적을 보게 되지요.

아마 여러분도 평소에는 그저 평범한 산과 들, 노을과 하늘을 보다가도, 오랜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면 여행지에서의 바람, 구름, 산과 들, 풀과 꽃 그 작은 것 하나하나가 감동적이고, 보다 진하고 짠하게 느껴지는 것을 아실텐데요, 그 때는 일상에서보다 더 분별심과 망상심이 적기 때문에 그렇게 더 진하게 느낄 수가 있는 것일겁니다. 그러나 꼭 그러한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잠시 마음을 쉬고, 눈앞의 현실에, 또 자연에 마음을 멈춰 보면 누구나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여행과 휴식, 깊은 침묵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