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개념작용, 표상작용을 하는 상온은 비실체적인 것이지만, 실체적인 것으로 착각하여 상온을 ‘나’라고 생각함으로써, 많은 집착과 욕망, 번뇌를 야기한다. 내 안에는 생각하고 사유하는 ‘나’가 있다고 여김으로써 ‘나’에 집착하고, 내 바깥에는 생각되는 대상이 존재한다고 여김으로써 ‘세계’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은 타파해야 할 것으로 경전에서는 설하고 있다. 상온은 말 그대로 허망한 상으로써,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작용이며 표상작용일 뿐이므로, 거기에 얽매여 그것이 실재한다고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개념 짓고 표상작용을 일으키며, 비교, 총괄, 사유하는 작용을 일체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필요할 때는 당연히 표상작용을 일으키고 생각하고 사유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렇듯 생각과 사유를 하며 살아갈지라도 그것이 본질적으로는 실체가 아니며 무아이므로 그 생각과 사유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불교’나, ‘종교’라는 이름도 하나의 표상이다. 그 또한 자기 스스로 만들어 저장해 놓은 표상일 뿐이지, 실체적 진실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 뿐 아니라, 일체의 ‘종교’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싫다고 여기며, 종교는 사회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괴로운 일에 처했더라도, 자기의 마음속에서 종교는 나쁜 것이라는 표상 대문에, 종교인과 상담을 통해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닫아 놓고 살기도 한다.
상온의 추상과 추리작용도 마찬가지다. 있지도 않은데 있는 것으로 오인하여 추측하고 추상함으로써 우리는 머릿속에서 무수한 괴로운 일들을 만들어낸다. 회사 사람 두 명이 모여서 내 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면, 그 사람은 그 상황에 추측과 추상을 더한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모두들 모이면 이렇게 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것 아닐까? 난 다음 승진에서 분명히 떨어지고 말거야! 퇴사하게 되겠지? 이 나이에 나를 받아줄 회사는 아마도 없을 거야. 난 실패한 인생이야.’
이런 식으로 생각은 무수한 추측과 상상의 나래를 펴며, 쓸모없고 소모적인 추측 속에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상온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해 냄으로써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고, 괴롭힌다.
이런 비교, 판단, 추상, 추리, 표상과 개념화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현실을 총괄하는 사유 또한 상온의 역할이다. 그러나 앞의 비교와 추상 등이 무상하고 무아인 비실체적인 것들이다 보니 그 정보들을 가지고 종합하고 총괄하는 사유작용 또한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상온은 비실체적인 것으로써, 전혀 집착할 것도 못되고, 실재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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