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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소욕지족은 말이 없고 상이 없다

장백산-1 2024. 10. 8. 23:12
 
 
욕심을 적게 가졌다고 해서  나는 욕심을 적게 가졌다고 말하지 말라.
만족함을 알았다고 해서  나는 만족할 줄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
멀리 떠나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해서 나는 멀리 떠나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말하지 말라.
궤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궤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중아함경]

 

스스로 욕심이 적다고 말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고 말하지 말라. 욕심이 적고 자족을 알더라도 스스로 소욕과 지족을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은 참된 소욕지족과는 거리가 멀다. 참된 소욕지족은 말이 없고 상이 없다. 수저가 밥맛을 모르듯이 자연스러운 두타행의 수행자는 스스로 소욕지족을 모르고, 청빈한 삶을 입에 담지 않는다.

 

수행을 잘 한다고, 보시를 많이 했다고,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욕심이 적다고 스스로 말하지 말라. 참으로 욕심을 적게 가진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 욕심이 많기 때문에 욕심을 적게 가졌다고 애써 표현하는 것일 뿐. 만족함을 알았다면 그것으로 딱 끊어진 것이지, 애써 말로써 표현할 것은 무엇인가. 말로 표현되면 그것은 벌써 진실과 멀어진다. 어떤 말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줄 수는 없다. 참된 실제는 말 없는 가운데, 침묵으로써 온전히 드러난다.

 

한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평소에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결가부좌로 삼매에 들곤 했지만 신도들이 찾아 와 법을 물을 때면 언제나 허리를 느슨히 하고 자세를 편안하게 바꾸곤 했다. 더욱이 어린 아이들이 찾아 올 때면 동년배의 친구처럼 어린아이가 되어 뛰어놀곤 했다.

 

또 다른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평소에는 나태하고 게으르며 수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신도들이 찾아 올 때면 남들의 눈을 의식해 언제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결가부좌를 한 채 위엄을 잃지 않았다. 나는 과연 어떤 수행자인가. 참된 수행은 수행을 드러내지 않으며, 언제나 은밀함을 지킨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