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이 만드는 세상

장백산-1 2024. 11. 24. 17:19

 

 

우리 본성은 항상 풍요롭습니다

 22. 마음이 만드는 세상

풍경도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 마음 바깥 일은 절대 알 수 없어
브라운관 픽셀로 영상 만들 듯 내 마음이 세상 모습 만들 뿐

 

주말 오후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아름답게 단풍이 물든 덕수궁에 들어가 보았다. 노란색 낙엽으로 물든 은행나무와 빨간색 낙엽으로 물든 단풍나무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뭇잎은 담장 너머 비추는 오후 햇살에 물들어 더욱더 생생하니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신선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낙엽들은 마치 보는 이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기분 좋게 춤을 추었다. 연인들은 단풍과 고풍스러운 궁이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바빴고, 아이들은 땅 위에 모인 낙엽들을 손으로 모아 공중에 뿌리면서 놀고 있었다.

나는 궁 안에 있는 카페 안에서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시켜 연못이 보이는 테라스 의자에 앉았다. 은은한 커피 향과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같이 온 도반의 재미난 이야기가 들려왔다. 파란색 하늘, 새소리와 피부를 스치는 바람, 궁 안의 여러 건물과 색동옷을 입은 듯한 정원이 보였다. 도반은 최근 유튜브에서 본 재미난 영상에 대해 이야기하다, 아예 그 장면을 찾아서 보여 주었다. 영상을 본 내가 박장대소하자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도반도 같이 옆에서 웃었다. 환한 햇살 아래 눈앞 모든 풍경이 그저 감사하고, 여유 있고, 아름답게 보였다. 

사실 이처럼 풍요로운 가을 풍경은 내 마음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 안에서 펼쳐져 일어나는 일이다. 만약 우리에게 이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이러한 풍경이 지금 눈앞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을까? 당연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번 마음 밖으로 나가서 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해 보자. 우리가 마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가? 만약 마음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봤다면 그것도 역시 마음 안의 일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절대로 마음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예를 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텔레비전의 무궁무진한 프로그램은 사실 브라운관이 있기 때문에 그 장면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브라운관이 없다고 한다면 드라마 프로그램이든, 예능 프로그램이든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된다. 그 내용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브라운관이라는 화면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텔레비전 장면에 심취해 있으면 브라운관을 보고 있으면서도 브라운관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장면은 모양이 있어 재미있을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지만, 브라운관 자체는 평평하기만 하지 그 안에 정해진 어떤 모양이나 색깔이 없다. 그저 비어 있는 검은색일 뿐이다. 역으로, 아무런 모양이 없이 텅 비어 있기에 모든 프로그램의 내용을 브라운관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에 심취해서 브라운관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듯, 중생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홀려 그 풍경을 드러내 펼쳐보이고 있는 마음 자체를 깨닫지 못한다. 브라운관처럼 마음 자체는 어떤 정해진 모양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텅 빈 허공처럼 있기에 그 어떤 풍경도 어떤 모양도 펼쳐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브라운관 없이 텔레비전 드라마가 따로 존재할 수 없듯, 마음이 없다면 풍경도 모양도 볼 수가 없다. ‘금강경’에서도 상을 가지고 부처님을 보려고 하면 부처님을 평생 볼 수 없고, 오직 모양을 떠난 성품을 봤을 때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즉, 풍경을 따라가면 상을 따라가는 것이고, 풍경이 펼쳐져 있는 텅 빈 마음을 깨달으면 성품을 보는 것이다.

우리 마음 본성이 항상 풍요로운 이유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다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모두 브라운관 픽셀로 영상을 만들듯이, 우리 마음이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서 펼쳐 보이는 것이다. 마음은 그래서 몸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크나큰 하나의 마음 안에 우리의 작은 몸들이 다 들어와 있다. 이 뜻은 바로 아름다운 가을 단풍과 파란 하늘이 바로 본성인 마음이고, 덕수궁과 외국인 관광객, 도반이 전부 다 마음인 것이다. 

눈앞에 지금 마음 브라운관이 크게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마음 브라운관 위에 생성된 각각의 모양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  각각의 모양이 펼쳐져 있는 큰마음 브라운관을 한번 느껴보자. 모든 것이 이 큰마음 안에 들어와 있으니 무궁무진하게 풍요롭지 않은가?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54호 / 2024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