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서 ‘현실’ 된 비상계엄…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이 시작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10시25분께 긴급 담화를 발표하며 정치권에서 말로만 떠돌던 ‘계엄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
정치권에서 계엄 시나리오가 처음으로 나온 것은 지난 9월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야 대표회담 머리발언에서 ‘계엄 준비설’을 언급한 것이다. 이 대표는 당시 “최근 계엄 얘기가 자꾸 나온다”며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문건)을 보면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을 체포, 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가 있다. 완벽한 독재국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이 발언 직후 대통령실과 여당이 “날조된 유언비어” “국기문란”이라고 반발하며 논란이 거세지기도 했지만, 명태균씨 공천 개입 논란을 비롯한 각종 현안 이슈들에 밀려 계엄 시나리오는 관심 사안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정치권에서 계엄 준비설이 제기된 건, 윤석열 정부가 2022년 11월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에 나서면서부터다. 개정안은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현 국방부 장관)이 이끄는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군·경찰을 지휘 감독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정안대로라면 경호처장은 경호처 요원 700여명과 1300명의 경찰, 1천명의 군병력 등 모두 3천여명을 자신의 지휘권 아래 거느리게 되는 셈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이 경호처 권한 강화를 추진했던 명분은 측면과 배후가 산으로 막힌 청와대와 달리 대통령실이 옮겨 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는 사방이 트여 경호에 필요한 인력·장비의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신 시절인 1976년부터 4년간만 존재했던 경호처의 타 기관 지휘·감독권 부활 시도에, 야당 지지층에선 높아진 반정부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실이 정권 위기 때 계엄과 같은 비상령을 선포해 시민의 반발을 제압하려는 사전 포석으로 받아들였다. 시행령 개정안은 논란 끝에 보류됐다가, 지난해 5월 ‘지휘·감독’ 대신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한다는 문구를 넣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계엄 준비설은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가, 경호처 권한을 확대한 당사자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8월12일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면서부터 다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민주당이 무엇보다 주목한 건 김 후보자가 국방부 장관으로 옮겨 가면 ‘충암파’라 불리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들이 군정·군령권은 물론, 실병력의 동원과 통제에 필수적인 정보 계통의 요직을 장악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실제 김 후보자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다. 정보기관인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여인형 중장도 충암고 출신이다. 방첩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후신으로, 계엄이 선포되면 주요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정보·수사기관을 조정·통제할 합동수사본부도 방첩사에 꾸려진다. 그뿐이 아니다. 대북 특수정보 수집의 핵심 기관인 777사령부 수장인 박종선 사령관, 현행 계엄법상 국방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에게 계엄 발령을 건의할 수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하지만 열거한 사실들은 군의 최근 상황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여러 정황 가운데 일부일 뿐이지, 계엄 준비설을 뒷받침할 물증’이 나오지 않은 탓에, 민주당 안에서도 실제 위기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당시 한겨레가 취재했던 민주당의 전현직 국방위원들은 “계엄 편람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통상적인 연습은 가능하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기무사 문건’ 수준의 계엄 준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 밤 여당마저 “괴담 정치”로 치부했던 비상계엄을 실제로 선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민 여러분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셔야 한다. 국회로 와달라”고 말했다.
그는 “저희도 목숨을 바쳐 이 나라 민주주의를 꼭 지켜내겠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국회는 이 나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이 나라의 주인이신 국민 여러분께서 나서주셔야 한다”고 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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