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원동태허 무흠무여(圓同太虛 無欠無餘)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양유취사 소이불여(良由取捨 所以不如)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다.
막축유연 물주공인(莫逐有緣 勿住空忍)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절언절려 무처불통(絶言絶慮 無處不通)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다.
불용구진 유수식견(不用求眞 唯須息見)
참됨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쉬라.
몽환공화 하로파착(夢幻空華 何勞把捉)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득실시비 일시방각(得失是非 一時放却)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 자성, 법신, 마음, 법은 그 크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다만 사람이 분별망상으로 취하고 버리는 것 때문에, 그 취사간택심으로 인해 여여(如如)하지 못할 뿐이다.
세간의 인연이 있으면 그 인연에 응해주되, 그 인연을 따라가지는 말라. 그 인연에 깊이 개입될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인연은, 인연가합(因緣假合)이기 때문에,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잠시 가짜로 형성된 것이라서 허망하다. 인연 따라 잠깐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질 것인데, 거기에 깊이 사로잡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연 따라 내게 오는 경계를 마땅히 허용해 주고, 온 것을 즐기고 누리고 가져다 쓰되, 사로잡히고, 집착하고, 구속될 것은 없다.
그렇다고 세간의 인연에 집착하는 대신, 세간법(世間法)을 버리고 출세간법(出世間法)을 따라 가라는 것도 아니다.
출세간법은 출세간법이라는 그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름이 출세간법일 뿐이다. 그 또한 고정된 실체인 것은 아니다. 출세간에 머물러 집착한다면 그 또한 다른 한 편의 극단에 치우치는 것이다.
불교는 비불교적인 것은 버리고, 불교적인 것을 따르는 종교가 아니다. 그 어떤 한 티끌조차 취하고 버릴 필요가 없다. 어디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을 때,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을 때,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것이 없을 때, 그래서 말이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질 때 비로소 통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참됨, 진리, 불성, 마음을 구하려고 애쓸 것도 없다. 다만 망령된 견해, 분별망상과 차별심, 취사간택심만 쉬면 된다.
그렇다고 망령된 견해를 쉬려고 애쓰라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을 뿐.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 그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다시 실천할 필요는 없다.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애써 붙잡을 이유가 없듯, 환화공신(幻化空身)같은 이 몸과 이 세상에서 붙잡아 집착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
얻을 것도 없지만, 잃을 것도 없다. 옳은 것도 없지만, 그른 것도 없다. 그 양 변을 일시에 놓아버리라. 놓아버리는 일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쉬라. 내버려 두라. 시비 걸지 말라. 양 쪽의 어느 한 쪽에 기울지 말라. 그저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깊이 개입되지 않은 채,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저 구경하면 된다. 할 일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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