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생사가 있기에 상대적으로 열반도 존재

장백산-1 2025. 6. 7. 08:39

생사가 있기에 상대적으로 열반도 존재

 

생사의 세계는 유위의 세계이고 열반의 세계는 무위의 세계다
생사가 끊어지면 열반의 세계이지만, 본래는 열반이라 부를 것도 없어
집착하고 걱정하는 마음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은 항상 함께 조화롭다.”

 

“감정이 생기면 생사(生死)와 고락(苦樂)이 생겨나고 감정이 사라지니 생사고락도 없어지네. 좋다 싫다 고락 분별(分別)이 생사를 일으키고 고락 분별 사라지니 고락 없는 열반이라.

 

나고 사라지는 생사(生死)의 세계는 유위(有爲)의 세계이고, 생사가 사라진 열반(涅槃)은 무위(無爲)세계이다. 생사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생사를 떠난 열반이 생긴다. 생사는 고락(苦樂)의 인과(因果)가 있으나, 열반은 고락의 인과가 완전히 꺼진 상태를 말하는데, 생사는 끝없이 윤회하지만 열반은 윤회가 끊어진 상태로서, 생사의 업(業)을 멸하면 곧 열반(니르바나)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생사 없는 열반이 없고 열반 없는 생사가 없다. 하지만 생사라는 인과가 끊어지면 진정한 열반이 되는 것이니, 이때는 상대적 단어인 열반이라 부르지도 못한다.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반복하며 윤회(輪廻)한다. 따라서 즐거운 마음도 생로병사하여 괴로워지고, 괴로움도 생로병사하여 즐거워진다. 또한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고락 자체도 생로병사한다. 이를 중중무진(重重無盡) 즉, 즐거운 마음 안에도 괴로움이 있고, 괴로운 마음 안에도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티끌의 미진(微塵)에도 생사가 있고, 하루살이도 생사가 있다. 이 모두가 모인 숲에도 생사가 있고, 이 숲들이 모인 큰 산들도 생사가 있으며, 바닷속에 있는 생물들에도 생사가 있고, 큰 대양들에도 생사가 있다. 또 각각의 인간과 동물들도 생사가 있고, 이 모두가 모여있는 지구덩어리도 생사가 있으며, 지구가 속한 태양계도 생사가 있다. 그야말로 중중무진(重重無盡)이다.

 

하루 안에도 생사(生死)와 고락(苦樂)이 있고, 1년 안에도 생사와 고락이 있으며, 어릴 때도 생사와 고락이 있고, 젊었을 때, 늙었을 때, 인생 전체에도 태어남과 죽음의 생사와 고락이 있다. 죽었다고 해도 생사와 고락의 업(業)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니, 인과(因果) 인연에 따라 다른 몸을 받는다해도 생사(生死)와 고락(苦樂)의 업식(業識)은 계속된다. 중중무진이어서 이를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대탑 전경.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 밝혔듯, 과거 안에도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있고 현재에도 삼세가 있으며, 미래에도 삼세가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때에 따라 극도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고, 극도의 괴로움으로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곤 한다. 극도의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극도의 괴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기 때문이요, 극도의 괴로움 때문에 극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극도의 즐거움을 느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인과(因果)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마치 뜨거운 여름이 있었기 때문에 차가운 겨울이 생기는 것과 같으나, 뜨거운 여름은 곡식을 영글게 하는 반가운 요소이고, 차가운 겨울은 따뜻한 봄의 생기를 맞이하기 위함이며, 태풍은 자연재해로 많은 피해를 주는 동시에, 바다를 청정케 하고 삼림에 공기를 불어 넣는 고마움도 있다. 마음도 이와 같으니 생사와 고락이 늘 인과로 작용한다는 것을 잘 알아서, 이런 일 저런 일, 좋은 일, 나쁜 일에 대해 일일이 일희일비하지 말고, 어떤 현상이 나타나든 인과의 작용이라는 것을 깊은 신심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이를 열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생사와 고락을 없애고 열반을 이루려면 몇 가지 훈련이 필요하다. 미리 걱정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렇게 돼야 하는데 혹은 저렇게 돼야 하는데 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 오직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과는 걱정 근심한다고 또한 원한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치의 오차 없는 인과 인연이 움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를 미리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 이리되든 저리되든 집착하는 마음과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무조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인과를 굳게 믿는 신심(信心)을 가져야 한다. 인과를 믿는 것이 곧 부처님을 믿는 것이다. 인과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곧 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 근심을 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은 과보(果報)를 부른다. 그리고 욕심을 부릴수록 괴로움과 고통이 따르게 된다. 마음이 힘들어진다. 따라서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고통과 괴로움을 그대로 감수하면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스스로 후회하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러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인과 인연을 믿고 분별(分別)하지 말며, 이렇게 되었든 저렇게 되었든 간섭하지 말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서 기도 참선 보시 정진을 함께 한다면 곧 열반락(涅槃樂)을 얻을 것이다.

진우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sansng@hanmail.net

[1779호 / 2025년 6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부도천 선사 게송  (1) 2025.06.16
야보도천 선사 게송  (0) 2025.06.16
초발심이란 분별 이전의 마음 상태를 의미  (0) 2025.05.18
4성제, 8정도  (0) 2025.05.12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1)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