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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를 넘어선 공성(空性)의 자각

비교를 넘어선 공성(空性)의 자각 언제나 내가 부족하다고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비교 때문이다. 남보다, 부자들 보다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가난과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과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무한히 풍요롭다. 지금까지 우리는 비교 열등에 시달리며 남보다 가난하다고 굳게 믿고 있던 것이다. 그 모든 비교라는 잣대를 놓아보자. 그 자리에는 부자도 없고, 가난함도 없다. 그저 중립적인 하나의 현상만 있을 뿐이다. 중립적인 상황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비교라는 차별심을 만들어서 내 스스로 가난하다거나 부자라거나 하며 분별해 왔던 것일 뿐이다. 바로 그 분별만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언제나 고요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부자가 좋다고 하겠지만, 사실 부자보다 더 근원적인 행복은 고요..

[맛지마 니까야] 뗏목에 대한 비유

뗏목에 대한 비유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났는데 도중에 큰 강을 만났다고 하자. 강의 이 쪽은 두렵고 위험한데  강 건너  쪽은 안전하다. 그런데 강 건너 저 쪽으로 건네 줄 배가 없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강 건너 쪽은 안전하니 강을 건너긴 해야겠는데 배가 없으니 갈대와 나뭇가지 등을 모아 뗏목을 만들자. 그 뗏목에 의지해 강 건너 쪽으로 안전하게 건너가야겠다. 그래서 뗏목을 이용해 그는 결국 강을 건널 것이다. 강 건너 저 언덕에 도착해 그는 생각한다. ‘이 뗏목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해 이쪽 언덕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니 이제 이 뗏목을 짊어지고라도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옳은 태도인가?”“아닙니다. ..

여섯 방위의 비유

여섯 방위의 비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장자의 아들 시갈라는 아침 일찍 일어나 라자가하 교외에서 온 몸이 젖은 채로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동,  서, 남, 북, 위, 아래  6방향을 향해 예배했다. 마침 부처님은 탁발을 하려고 라자가하로 들어가시다 장자의 아들 시갈라의 예배하는 모습을 보고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 시갈라야, 그대는 왜 그렇게 온 몸이 젖은 채 여러섯 방향으로 예배하는가?”“예, 부처님, 저의 아버님께서 임종 시에 여러 방위에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에 대한 공경으로 동서남북과 아래 위의 여섯 방향을 향해 예배합니다.” “장자의 아들 시갈라야, 거룩한 가르침에서는 여섯 방향은 그런 방위가 아니다.”...“여섯 방향을 다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