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처(當處) 4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드러나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허용하라 수용하라고 말을 하니까, 어떤 분은 지금 여기에 드러나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허용하고 받아들이려고 인위적으로 애를 쓰고 노력을 기울이더군요. 혹은 수용하고, 허용하고 받아들인다는 행위를 자신의 수행으로 삼고, 삶의 지침으로 삼아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이같은 애씀은 수용하고 허용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이라는 방편의 말에 집착하는 것이고, 의지하는 것이며, 상(相)에 얽매여 구속당하는 것입니다.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허용해 주라는 말도 어디까지나 방편의 말일 뿐입니다. 제가 지금 최대한 덜 유위적이고, 인위적이며, 덜 애씀이 개입되는 말을 쓰려고 ..

바로 그곳에 마음(진리, 당처, 낙처)가 있다.

바로 그곳에 마음(진리, 당처, 낙처)가 있다. 달을 보라고, 즉 진리(眞理)를 보라고 달(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 즉 모든 말(언어)와 모든 글(모든 경전)은 어디까지나 방편(方便)일 뿐이다. 방편(方便)은 진리(眞理)가 아니다. 그래서 방편일 뿐일 말과 글에만 매달리면 진리(달)을 보지 못한다. 말의 길과 글의 길이 끊어진 그곳에 마음, 즉 진리(眞理), 당처(當處), 낙처(落處)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眞理))를 가리키는 손가락(방편)을 볼 것이 아니라 손가락(방편)이 가리는 그곳, 즉 말의 길과 글의 길이 끊어진 그곳, 당처(當處), 낙처(落處), 진리(眞理),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분별 망상 번뇌 생각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분별 망상 번뇌 생각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 - 법상스님 아래 인용한 글은 황벽선사가 저술한 전심법요의 한 구절입니다.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과 만행의 공덕을 본래 전부 갖추고 있으니 굳이 애써 수행해서 얻을 것이 없다. 인연을 만나면 베풀고, 인연이 다하면 고요할 뿐인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믿지 않고, 모양과 소리에 집착해 애써 정진하여 부처를 구하려고 한다면, 이같은 짓은 분별 망상 번뇌에 빠진 것이어서 도(道, 부처, 깨달음, 진리, 마음)와는 어긋난다." 일체의 모든 공덕과 6바라밀의 수행을 우리는 바로 눈앞,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본래부터 전부 다 완전무결하게 구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만구족해지기 위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