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곧 해직교사도 나오겠구나' (경향신문 / 김윤주 / 2008-12-30)
시대가 YTN의 해직기자를 배출했을 때, '아! 곧 해직교사도 나오겠구나' 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물론 그게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민주주의와 교육 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조금 예민한 정도였던 내가 하루아침에 '해직투사'가 되다니…. 참으로 가당찮은 수식어라 지금도 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봐도, 담임교사로서 일제고사에 대한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을 안내하는 일은 그다지 큰 결의나 투지가 요구되는 일은 아니었다.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초등학생 때부터 국가로부터 학업 능력을 판정·통보받고, 그 속에서 아이들의 자존감은 성적 중심으로 왜곡되고, 교육현장은 생동감을 잃고 오직 성적 경쟁에 매몰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이미 일제고사 시행 이전에 충분히 제기된 터였다.
국민의 다양한 생각이 정책 입안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으니, 정책을 실행하는 현장에서라도 반영하여 보여주는 것은 현장교사의 당연한 책무가 아닌가.
내가 시대의 야만성을 몰라보고 턱없이 순진하게 생각했건 말았건 간에 어쨌거나 나는 명령불복종과 불성실의 사유로 해직되었다.
생계를 박탈당한 막막함이나 억울함 같은 사적인 심정이 고개 들 새도 없이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착잡함과 공분만이 요즘 내 마음을 채운다.
도대체 현 정권은 왜 이다지도 포용력이 없는 걸까.
뭐가 그렇게 조급하고 두려워서, 1%도 안되는 일제고사 저항에 이토록 무리수를 두고 초법적인 보복징계를 가하는 걸까. 언론의 중립성을 지키겠다는 기자를 자르고, 일제고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반영하겠다는 교사도 자르고…. 자기 직업에 대한 소박한 책무의식마저 무자비하게 탄압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뭘까 자못 궁금해진다.
사이버모욕죄, 국정원법·언론법 개악 등 일련의 정부 추진 입법 관련 소식을 접하며, 그 이유를 얼추 짐작해본다.
도덕성에 대한 콤플렉스.
언로를 열어놓고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다. 하긴 수십억원 금품비리 의혹에 노출된 공정택 교육감이 7명의 창창한 교사들을 도려내는 걸 무슨 재간으로 설득해 내겠는가. 그러니 아이들과 이별식조차 할 수 없게 저녁에 해직통보를 하고는 다음날 득달같이 학교에 경찰을 수십명 풀어 교문 창살 사이로 제자와 스승을 생이별하게 만드는 복고적 시추에이션을 21세기 대한민국에 재현할 밖에. 비단 나뿐이랴. 내가 모르는 곳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있을까 생각하면, 동시대인으로서 나만 딱히 억울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층이 스스로의 정당성에 자신이 없을 때, 설득을 포기하고 굴복시키기를 택한다. 토론을 포기하고 몽둥이를 든다. 존경받기를 포기하고 공포스럽기를 택한다. 국민으로서는 참 피곤한 일이다. 무섭지 않은데 무서운 시늉을 해야 하니 말이다.
계속 무서워하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 80년대처럼 고문을 할까, 백주에 발포를 할까. 두고 볼 일이다. 그것도 견딜 자신이 없으면 이쯤에서 좀 하얗게 질려주는 센스를 보여주는 게 개인적으로 현명한 처신이 아닐까 싶기도 한 이 소시민 해직교사는 갈등 중이다.
ⓒ 김윤주 / 전 청운초등학교 교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2291744275&code=990304)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89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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