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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사전송 2008-12-1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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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고
옛날 영역본으로 읽은 베네데토 크로체(1866-1952)의 <역사, 자유의 이야기>가 요즘 갑자기 생각났다. 저자는 정치가, 철학자, 역사철학자, 미학자, 비평가로서 수많은 저서를 남겼고, 이탈리아의 교육정책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한때 동조했지만, 잘못을 깨달은 뒤 영원한 적이 되었다. 크로체는 인간의 새로운 잠재력이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암울하고 아둔한 시대에도 자유는 시인과 사상가의 글 속에서 꿈틀대고,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동화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불타오른다”고 말했다.
1939년에 크로체가 쓴 책을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생각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권력을 방종에 가까운 자유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역사 교과서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고치려 드는 한심한 현실 때문이다.
크로체가 역사는 자유의 이야기라고 한 것은 현실이 자유롭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에는 수많은 제약이 있음에도 그 제약을 극복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없는 천국보다” 이 세상이 더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려고 노력-굳이 투쟁이라 하지 말자-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주장하는 수구세력은 아마 “자유”를 잃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들이 10년 동안 과연 자유롭지 못했던가? 어떤 수구 논객은 공공연히 쿠데타를 부추겼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할 말 다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권력을 휘두를 자유”인 것 같다.
그것이 지금 역사교과서를 자기네 입맛에 맞게 고치라고 압력을 넣는 한편, 고등학교에서 교과서를 채택하는 일에 간섭하고, 헌법에서도 “혁명”으로 인정한 4·19를 “데모”로 폄하하는 동영상을 제작해서 청소년에게 교육자료로 배포하는 현실로 나타났다.
수구세력이 역사를 어떻게 보건 그들의 자유다. 그 자유를 지키려고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법치주의”를 앞세우고, “민주”를 들먹이면서,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휘둘러, 정당한 권력을 맹목적인 힘으로 바꾸는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훌륭한 역사 교과서”를 써서 경쟁하기 바란다. 그것이 그들이 앞세우는 “규제를 푼 시장논리”에도 맞는 일이 아닌가?
누구나 역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여느 학문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의 영역으로 존재한다. 사료를 비판하고, 인간이 객관적일 수 없음에도 객관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뒤 철도를 놓고 공장을 세웠다면, 그것은 일본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음이지, 우리나라를 도와주려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객관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일본의 수구세력이 아니고,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그렇게 믿어야 정상이다. 일본도 진정한 뜻으로 “근대화”하지 못한 나라인데, 남의 나라를 어떻게 근대화시킨단 말인가, 라고 되물을 수 있어야 진정한 역사가의 태도다.
자기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을 감춘 채 “좌파”라 점잖게 욕하면서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할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남의 생각을 바꾸려는 무모한 행동보다, 차라리 민주·자유라는 말의 참뜻을 새기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자신의 사상을 글로 써서 당당하게 경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그에 앞서 일제강점기나 독재를 미화하는 사관을 바꾸라고 권한다. 아무리 “자유”나 돈이 좋다고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
주명철 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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