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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경 강의 87 /14. 상을 떠남이 적멸이다 / 나는 내가 창조한다. 우주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

장백산-1 2010. 1. 1. 23:36

금강경 강의 87



14. 상을 떠남이 적멸이다.



나는 내가 창조한다. 우주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



무한한 보배가 담긴 다이아몬드 수트라, 금강경과 함께 하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공부 시간입니다.

다 같이 합장하시고 마하반야바라밀 세 번 염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네, 오늘도 행불 독송집「본마음 참나」72쪽 제14분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부처님이 말하셨다.

그와 같고 그와 같다. 만약 다시 어떤 사람 이 경전을 얻어듣고 놀라거나

무섭거나 두렵지- 아니하면, 응당알라.

이 사람은 매우 드문 사람이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 설한 첫 번째의 바라

밀은 첫 번째의 바라밀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첫 번째의 바라밀인 것이니라.



네, 금강경 제14분과 리상적멸분(離相寂滅分) 하고 있죠.

상을 떠남이 곧 적멸이다.


그래서 이 모든 상을 떠나는 것,

아상, 또는 법상.

이 아상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내가 있다는 생각.

법상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다르마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다 떠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모든 존재는 물질적 존재가 되었든, 정신적 존재가 되었든, 심지

어는 불법이 되었든 모든 것은 다 한때다. 이렇게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

이다라고 하는 거죠.


부처님께서 말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놀라거나 무섭거나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매우 드문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거나 무섭거나 두려워한다는 것이죠.


왜냐?

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든 이 세계가,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다, 없다 하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놀래거나, 또는 내가 없다는 거에 대해서 공포심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을 알아 듣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매우 드문 사람이다.


심지어 여래께서 설하신 첫 번째의 바라밀. 첫 번째의 바라밀은 바로 보시바라

밀이 되겠죠.

지금까지 말씀하신 베푸는 것.

보시바라밀은 보시바라밀이 아니므로 이름이 보시바라밀이다.

예, 보시바라밀이야말로 육바라밀의 첫째죠.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보살도를 실행하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시바라밀조차 이름이 보시바라밀이지, 어떤 고정된

실체로서의 보시바라밀.

이것이 보시바라밀이다 하는 그런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계속해서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공, 법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트만도 공한 것이고, 다르마도 공한 것이다.


그럼 공하니까 뭐냐?

공하니까 허무하다, 이게 아니고, 공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르마라는 건 우주의 존재 요소입니다.

아트만이라는 건 나의 존재 요소예요.

그러니까 나는 내가 창조한다고 하는 거죠.

우주도 내가 창조한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나도 내가 만들어 가고, 우주도 내가 창조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가르침.

니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다.



이런 가르침을 들으며는 다른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거 어~ 믿을 수가 없죠.

왜요? 우주는 신이 창조했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나도, 이 인간도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신의 종에 불과한 것이지, 내가 감히 신이 돼?

이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니까 금강경의 가르침을 들으며는 이거는 놀라거나 무섭거나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아공, 법공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나는 내가 창조한다.

우주도 내가 창조한 것이다.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서 금강경 오가해에 보며는 함허 득통스님이 이런

설의, 설명을 달아 놓고 있어요.


비유컨데 집 나간 窮子가 가난하고 헐벗은지 오래 됐음이라.

父王을 뵌 것이 실로 천행이 되도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너무 그 아주 건물이 고준하고 그 가난한 이는, 궁색한 이

는 뜻이 下劣해서 보고나니 놀랍고 두려워함을 면치 못했다.


그러니까 놀래고 두려워 하지 않는게  희유한 일이다. 이거죠.

우리가 중생들이 집을 나간지가 오래 되었어요. 예.

그래 가지고 워낙 종노릇 하는데 열중하다 보니까 인제 이게 바로 너, 부처도

될 수 있다.  니가 부처다 본래.

이렇게 얘기 해 줘도 그거를 선뜻 수궁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가 신의 스승도 될 수 있다.

이거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소리예요.

나는 신의 종이지 내가 어떻게 신의 스승이 됩니까?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도 마십시오.

그런 그 불경스러운 얘기를 해도 됩니까? 이러고 있다는 겁니다.

중생들이.


신의 스승도 될 수 있고, 부처님도 될 수 있는 그런 고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

고 스스로를 나는 신의 종노릇 밖에는 못하는 그런 하천한 존재다. 이렇게 감

수하고 있다는 거예요.

달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저 종노릇이나 해서 신의 어떤, 만드신 어떻게 천당이나 태어나서 거기서도

세세생생 영원히 종노릇 하면서 사는 거. 이것이 나의인생의 목표다.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것은 뭐예요?

그만큼 근기가 하천해서 그동안 수없이 종노릇을 해 왔어요.

인류의 역사에 상당한 기간 군주제가 있었죠.

임금의 신하, 그러나 거의 종에 버금가는 그런 신하 노릇.

내지는 이 신본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다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무슨 역사입니까?


암흑시대라 그랬죠.

인권은 없습니다. 신권이 있을 뿐이지.


그런데 그것을 더 박차고 나왔더니, 이제는 또 자본주의시대가 열렸어요.

그건 또 뭡니까?

재물이 또 근본인 시대. 재물을 또 주인으로 섬기고, 난 또 재물의 종노릇을

하는 이런 시대가 열린 겁니다.


신과 재물은 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내가 신을 위해서, 재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죠.


그리고 얼마든지 열심히 잘만 닦으며는 신의 스승 노릇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죠.


그런데 이런 가르침을 들으며는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죠.

처음 듣는 사람들은.

더군다나 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스스로 달게 종노릇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야, 말도 되지 않는다.  불경스럽다.  내지는 허허 허~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조물주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신도

사실은 다 부처님자리에, 본마음 참나자리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의 스승도 될 수 있을만큼 그런 고귀한 존재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누구나가 다, 모든 생명이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부처가 될 가능성

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것처럼, 가능성을 항상 그냥 가능성만으로 놔 두고 있는 것은

텅 빈 방을 그냥 텅 빈 채로 맨날 놔 두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텅 빈 채로 놔 두고 있으며는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방에다가 의자를 갖다 놓고 공부방으로 써든가,

아니며는 법당으로 꾸며서 법당으로 써든가,

또는 그 방을 어떤 용도로 써줄 때 바로 비로소 그 텅 빈 방의 의미가 살아나

는 것이죠.


항상 공~하다, 모든 것은 텅~ 비었다.

공하니까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며는 그건 역시 또 불법의 이치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죠.


불교에서 특히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공, 법공.

아트만이라는 게 공한 것이고, 다르마라는 게 공한 것이다.

이 이치를 분명히 이해해야 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어떠한 나도 만들어 갈 수 있고,

왜냐?

고정된 내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나도 창조해 갈 수 있다는 거. 여기가 중요한 것이고.

또 고정된 세계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세계도 만들어갈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아공과 법공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요?


그러기 때문에 이 나를 만들어 가고,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가능성을 가능성만으로 두고 볼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바로 지금 여기

에서 내가 한 마음 발심해서,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내 마음을 내서 일체중생을 제도하겠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베풀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내라고 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이 공하다면 공한 것이 그냥 텅 빈 것으로 끝난다면 무엇 때문에 마음

을 내라고 했겠어요?

마음을 내서 하라는 이야기는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내서 할 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금강경의 핵심은 아공, 법공에 있고, 아공, 법공이기 때문에 일체중생을

제도하리라고 마음먹고, 머무는 바 없이 베풀되, 아 인중생 수자상이 없이 해

나가며는 우주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

나도 내가 창조한다. 바로 이러한 부분에 핵심 가르침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역동적인 가르침이죠.

공을 잘못 이해해서 그냥 아무 것도 없고, 텅 비고, 모든게 사라지고, 이렇게

허무주의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공을 잘못 이해한, 공에 떨어진,

공에 빠진 그런 이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 행불
글쓴이 : 송아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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