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본세상 > 지구 이야기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Ⅰ 바다를 공부한 덕분에 벌써 20여 년이 넘는 옛날이 된 1980년대에 남태평양의 낙원이라 불리던 타히티를 연구차 수차례나 드나들곤 했다. 타히티는 물론 옆에 작은 섬이 하나 더 붙어있기는 하지만 주 섬은 제주도와 같이 중앙에 높은 화산이 있고 그 주변 110여㎞의 해변을 따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이다. 그래서 타히티를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한번은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섬 주위를 일주하는 관광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뿌리를 찾는 질문들 이 때 반드시 들러 식사까지를 즐기는 곳이 바로 고갱기념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한 벽에 고갱이 1897년 그린 유명한 그림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의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게 마련인 이 그림은 보스턴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원본을 본 따 그려놓은 것이다. 고갱은 이 그림 속에 많은 종교적 상징을 그가 살던 주위의 원주민들의 이국적인 생각들과 함께 그려 넣으면서 이런 심오한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려고 하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결코 어느 하나의 정답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제시된 어려운 질문들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물론 물질적인 면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나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제법 구체적인 답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원소로 만들어진 물체(?)들이고, 또한 우리들은 모두 별에서 왔으며, 45억년의 나이를 가진 우리의 별 태양이 앞으로 약 45억년 후 우주에서 그 일생을 마치면 우리의 삶의 터전 지구도 지구에 남아있을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그 생을 마치리라는 것 등이다.
만물은 원소로 되어있다 만물의 근원을 묻는 이 질문에 대하여 고민하였던 첫 철학자로 기원전 약 6세기 밀레토스에서 활동하였던 철학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 탈레스를 꼽는다. 탈레스는 신화나 미신에서 벗어나 합리성에 기초하여 자연현상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든 물질의 근본 원소는 물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동시대의 아낙시만드로스는 공기가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하였다. 즉 물이나 공기가 변화하면서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변화하는 물질이 원소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뀌지 않은 물질로서의 원소의 개념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원소의 개념과 같은 생각이다. 기원전 5세기경 엠페도클레스는 영원불멸의 원소로 물, 불, 흙, 그리고 공기의 네 가지가 있으며, 이들이 여러 가지 다른 비율로 섞이면서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이 생각은 기원전 4세기 천상의 물질을 만드는 에테르가 새로 제안되는 것 이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후 오랫동안 정설로 자리를 잡았다.
원소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원자
원소를 찾아서 이미 고대인들에게도 여러 원소들이 알려져 있었다. 금이 대표적인 원소이었으며, 구리, 주석, 철 같은 원소들도 문명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알려진 원소들이다. 화산지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황도 일찍부터 알려진 원소의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물질이 원소인지 화합물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8세기 원소들의 체계적 분류를 처음으로 시도하였던 근대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가 원소로 분류한 31개의 원소들 중 8개가 후에 화합물로 밝혀진 것이 당시의 이런 어려움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에서 시작한 원소의 종류가 날로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1826년 스웨덴의 베르셀리우스는 49종의 원소를 발표했는데, 특히 오늘날 사용하는 원소들의 이름과 기호는 그가 제안한 것이다. 이어 영국의 데이비가 전기화학적 방법을 도입하면서 나트륨, 칼륨, 칼슘 등을 발견하며, 1844년에 이르면 원소의 수가 58가지나 된다. 당시 금을 만들려는 목적의 연금술도 원소발견에 꽤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 것은 물론이다.
원소들이 보여준 규칙성 그 하나는 이들 원소가 더 간단한 어떤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이미 1816년 영국의 프라우트는 모든 물질이 궁극적으로 수소로 되어있다는 구체적 가설을 내세웠었다. 당시 알려진 몇 기체들의 밀도가 수소의 밀도의 정수배 값을 보이는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밀도가 원자량의 개념으로 이용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기체는 같은 온도, 같은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같은 갯수의 입자(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의 아보가드로의 법칙이 이미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량이 더욱 정확하게 측정되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프라우트의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어렵게 한 문제들은 20세기에 들어가 원자의 구조가 이해되고 나서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 원자의 개념이 세워지고 정확한 원자량 값이 구해지면서 과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인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이렇게 많은 원소들 사이에 어떤 규칙성이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1816년 독일의 화학자 되베라이너는 유사한 화학적 성질을 가지는 세 쌍으로 된 원소들 몇 그룹을 발견하는데, 각 그룹에서 원자량이 중간 값을 가지는 원소의 원자량은 다른 두 원소의 원자량의 평균치가 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당시 측정이 되지 않았던 브롬의 원자량을 염소와 요드의 원자량으로부터 예측하였는데 후에 베르셀리우스의 측정값과 잘 맞은 것은 이런 생각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1864년 영국의 뉼랜즈가 제안한 ‘옥타브 설’도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공 예이다. 원소의 배열에서 여덟 번째 원소마다 비슷한 성질이 나타나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아직 비활성기체가 발견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임은 물론이다. 이런 시도가 모여지면서 마침내 1869년 멘델레예프에 의해서 원소들의 규칙성이 주기율표라는 형태로 완성된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화학교수 멘델레예프는 각 원소마다 화학적 성질과 원자량을 적은 원소카드를 만들어 이들을 이리 저리 배열해보다가 원소들을 원자량에 따라 배열하면 성질의 주기성이 확실히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주기율표에는 몇 개의 빈자리가 있었으며, 자신의 방법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빈자리는 이들 원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이 빈자리를 채울 보론, 알루미늄, 그리고 실리콘과 성질이 유사하며 원자량이 각각 44, 68 및 75인 새로운 원소들, 에카-보론, 에카-알루미늄, 및 에카-실리콘의 발견을 예언하였다. 에카(eka)는 아래라는 뜻이다. 그의 이 예언은 1875년 원자량 69.9의 갈륨의 발견, 그리고 1879년, 1886년의 스칸듐, 게르마늄의 발견으로 사실임이 입증된다. 원소의 주기성을 찾아내기 위하여 과감히 원자량까지도 고치고 일부 원소들의 순서를 바꾸기 하면서 화학 역사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멘델레예프이었지만 본인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거 몇 달 전 실시된 1906년 노벨상 수상자 마지막 결선투표에서 아깝게도 프랑스의 무아상에게 한 표차로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평소 러시아 정교도나 관리들의 권위를 못 보아주며, 당시로서는 과격한 주장을 서슴지 않았던 그의 평소의 행동이 최종 결선에서 패한 요인이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레일리, 비활성기체 발견 물론 오늘날의 주기율표에 이르기까지에는 아직도 넘어야할 장애물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첫째가 비활성기체의 발견이다. 하늘이 푸르게 보이는 원인으로 설명되는 레일리 산란도 바로 그의 이름이 붙어있으며 나중에 레일리경으로 불리는 영국의 레일리가 질소의 밀도를 측정하면서 그 문을 연다. 레일리가 밀도측정을 위하여 두 가지 방법으로 얻은 질소의 하나는 공기에서 산소를 제거하여 얻은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암모니아 화합물을 분해해서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공기에서 산소를 제거하여 얻은 질소의 밀도가 항상 컸으며, 그는 결국 공기 중에 질소보다 밀도가 약간 큰 다른 기체가 소량 들어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1894년 아르곤이 발견되며, 반응성이 전혀 없는데서 ‘게으르다’는 의미의 이름이 붙여진다. 이어 1895년 우라늄광물속에서 태양의 원소 헬륨을 발견한 램지와 공동으로 힘을 합쳐 1898년 공기 중에서 네온, 크세논, 라돈을 모두 분리해내는데 성공하며, 현대 주기율표로 발전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 공로로 레일리와 램지가 1904년 각각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하며, 같은 업적으로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유례가 없는 수상이었다.
원(소?)자에 붙인 번호인 원자번호에 의거한 주기율표가 완성 원자량에 근거하여 주기율표를 만들려던 멘델레예프를 꽤 괴롭혔던 문제들은 20세기에 들어 마침내 모즐리가 원자번호의 개념을 확립하면서 해결된다. 각 원소들은 이들 고유의 특성X선을 방출한다. 모즐리는 각 원소들의 특성엑스선을 측정하여 각 원소들이 가진 특성엑스선의 파장이 원소에 따라 고유하며 이 엑스선의 파장이 바로 핵의 전하, 즉 오늘날 우리들이 원자번호라고 부르는 핵의 전하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 결과로부터 모든 원소들은 고유의 번호를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하여 원소들이 주기율표에서 제 위치를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몇 개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발견된 원소에 원자번호 72번 하프늄(Hf)등 네 개의 원소가 있다. 1914년 모즐리는 러더퍼드와 함께 일하던 맨체스터의 일을 그만두고 옥스퍼드로 돌아와 그의 연구를 계속하려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공병대에 입대한다. 그리고 1915년 다르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에 참전하였다가 저격수가 쏜 총탄을 머리에 맞고 사망한다. 멜깁슨을 좋아하는 영화애호가들은 이미 그가 1981년 출연하였던 영화 갈리폴리를 기억하리라 생각되지만, 이 상륙작전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4월 25일 한편으로는 서부전선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동부전선의 러시아를 도울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 당시 영국 내각의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이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시작된 전투였다. 결국 8개월 만에 14만여 명의 연합군, 25만여 명의 오토만 터키에 사상자를 내면서 끝나고 만 갈리폴리 상륙작전의 아까운 희생자의 한 사람에 모즐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노벨상 수상자의 한 사람이 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자연계에 원자번호 92까지의 원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오늘날은 인공적으로 계속 새로운 원소들이 만들어져 얼마 전에는 IUPAC으로부터 원자번호 112번의 코페르니쿠스를 기념한 ‘코페르니슘’이 공인된 상태이다. 이런 90여 가지의 원소들이 어떤 모양으로 우리 우주를 만들어 낸 것일까? 다음 글에서 이를 밝혀간 과학자들의 여정을 살펴보자.
글쓴이는 서울대학교 화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해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구환경과학부 학부장 겸 BK21사업단장으로 있으며, 해양연구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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