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강 한반도대운하의 대재앙

'사대강 죽이기와' '디자인 서울'은 한 뿌리

장백산-1 2011. 6. 23. 00:48

‘4대강 죽이기’와 ‘디자인 서울’은 한 뿌리
조회수 : 1690
등록일 : 2011.06.16 17:29

‘4대강 죽이기’와 ‘디자인 서울’은 한 뿌리 
- 6월 문화탐방 ‘청계천 개념투어’…도심 폭염 속 역사생태 체험



청계천 복원 방법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시민단체 등이 한창 갈등을 빚고 있던 2004년 3월, 故 박경리 선생은 한 신문에 ‘청계천, 복원이 아닌 개발이었나’란 장문의 기고를 통해 당시 이명박 시장에게 복원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곳곳에 절절함이 밴 글이었다.

여든 살 노구의 선생은 유물 유적이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정신적 가치를 강조했지만 당시 이명박 시장은 “박 선생이 쓴 것 같지 않더라, 요즘 신문에 난 그대로 썼던데, 아니 그것보다 더 자세하게 썼더라, 그걸 본인이 썼겠나”라며 당대 최고의 문학가에게 능욕적인 언사를 던져 ‘망언’ 논란을 빚었다.

박경리 선생은 “내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며 “업적에 연연하여 공기를 앞당기는 데만 매달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시장의 정치적 역정에 누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시민들은 청계천을 덮은 묵은 콘크리트를 걷은 것 자체만으로 환영을 보냈고, 언론들도 막상 완공되자 ‘청계천 신화’란 조어로 찬양일색을 보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곧바로 질주해 대선에서 당선됐다.



폭염 속 역사생태 산책

15일 재단에서 주최한 ‘청계천 개념투어’에는 14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리슨투더시티 서울투어’ 기획자 박은선 연구원이 함께 했다. 예술가모임인 리슨투더시티는 협업으로 전시, 예술, 건축, 잡지 등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청계천 개발 이후의 상황, 4대강 개발의 현장 상황 등을 집요하게 지켜보고, 기록하고, 질문하며 공동의 위기에 대처하는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고자 한다.

조계사 강의실에 모인 우리는 박은선 연구원에게 청계천 신화의 문제점과 4대강 죽이기의 실체,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현재 벌이고 있는 ‘디자인서울’의 허구에 대한 강연을 듣고 소라광장에서 출발해 광통교-수표교-오간수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역사 산책에 나섰다.

혼탁한 도시에 몸서리칠 정도의 폭염이 계속 내리쬐었다. 땀에 젖은 채로 걸으며 박 강사의 설명들 듣다 수표교에 이르니 ‘대선용 업적 쌓기’ ‘알고 보니 어항’ ‘연간 수돗물 값만 수백억’ 등 그간 언론의 비판 수사들이 오히려 진부하다고 느낄만큼 심각한 허구들을 만났다.

박경리 선생이 “눈 감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복원한 걸 보고 싶다”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석교인 수표교는 엉뚱한 목교로 복원되었고, 목교였던 광통교는 반대로 석교로 복원되었다. 공사 중에 발견된 석물 등 문화재는 중랑구 하수처리장 터에 방치되고 있다.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빈곤한 문화의 상징 ‘청계천 소라’

반값 등록금 시위 등 서울 도심 촛불시위 장소의 상징이 된 청계천 입구에는 눈에 띄는 조형물이 있다. 일명 ‘소라’로 불리는 이것의 본명이 ‘스프링’(Spring)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여기에 얼마가 들었는지 알게 된다면 웬만큼 숫자에 무딘 사람도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소라의 예산은 34억원으로, 역대 최고 조형물 가격을 갱신했다. 당시 서울문화재단 대표였던 유인촌씨의 발표 내용이다. KT가 전액 기부하여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생김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예술적이라고 보기 힘든 공공조각품이다.

박 연구원은 “공공장소에 놓이는 조각 미술품의 경우,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의 재산이므로 시민의 의견이나 취향, 장소에 대한 분석, 역사적 맥락의 이해는 필수적인 요소”라며 “청계천 소라는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부재한 조형물”이라고 설명한다.



“디자인 서울? 청계천과 비교도 안 돼”

박 연구원은 “청계천 신화의 성공은 곧 4대강 죽이기 사업의 시발점이었다”라고 강조하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개발의 폐해에서 상처입지 않은 지역은 어떻게든 보존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천 년을 흐르고 있는 낙동강의 모태이자 십여 미터 이상 쌓인 모래톱이 잘 보존된 경북 예천 내성천에 대해 관심을 가져 달라“고도 호소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서울에 대해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수사를 반복하며 "청계천과 비교해도 심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왜 ‘디자인’일까? 서울시가 말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박 강사는 디자인 권력에 대해 “디자인을 쥐는 자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디자인으로 대중을 통제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광화문 앞을 지켜 온 아름드리나무를 다 뽑고 광장을 만들면서 수해가 일어난 것(서울시는 다시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애초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플로팅 아일랜드와 한강다리 카페 사업, 용산 참사의 원인이 된 대규모 컨소시엄 개발 사업, 동대문 운동장 철거 과정 중 발견된 대규모 문화재를 검토 없이 덮어버리고 두 달 만에 바닥을 파고 건물을 올린 것은 ‘범죄’로 단정할 정도로 참담하다.

“청계천 신화는 '디자인 서울'의 초안”

마지막으로 동대문 박물관 탐방이 끝날 무렵 박 연구원은 ‘청계천 개념투어’의 의미에 대해 새삼 강조했다.

“청계천
‘4대강 죽이기’와 ‘디자인 서울’은 한 뿌리
조회수 : 1690
등록일 : 2011.06.16 17:29

‘4대강 죽이기’와 ‘디자인 서울’은 한 뿌리 
- 6월 문화탐방 ‘청계천 개념투어’…도심 폭염 속 역사생태 체험



청계천 복원 방법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시민단체 등이 한창 갈등을 빚고 있던 2004년 3월, 故 박경리 선생은 한 신문에 ‘청계천, 복원이 아닌 개발이었나’란 장문의 기고를 통해 당시 이명박 시장에게 복원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곳곳에 절절함이 밴 글이었다.

여든 살 노구의 선생은 유물 유적이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정신적 가치를 강조했지만 당시 이명박 시장은 “박 선생이 쓴 것 같지 않더라, 요즘 신문에 난 그대로 썼던데, 아니 그것보다 더 자세하게 썼더라, 그걸 본인이 썼겠나”라며 당대 최고의 문학가에게 능욕적인 언사를 던져 ‘망언’ 논란을 빚었다.

박경리 선생은 “내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며 “업적에 연연하여 공기를 앞당기는 데만 매달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시장의 정치적 역정에 누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시민들은 청계천을 덮은 묵은 콘크리트를 걷은 것 자체만으로 환영을 보냈고, 언론들도 막상 완공되자 ‘청계천 신화’란 조어로 찬양일색을 보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곧바로 질주해 대선에서 당선됐다.



폭염 속 역사생태 산책

15일 재단에서 주최한 ‘청계천 개념투어’에는 14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리슨투더시티 서울투어’ 기획자 박은선 연구원이 함께 했다. 예술가모임인 리슨투더시티는 협업으로 전시, 예술, 건축, 잡지 등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청계천 개발 이후의 상황, 4대강 개발의 현장 상황 등을 집요하게 지켜보고, 기록하고, 질문하며 공동의 위기에 대처하는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고자 한다.

조계사 강의실에 모인 우리는 박은선 연구원에게 청계천 신화의 문제점과 4대강 죽이기의 실체,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현재 벌이고 있는 ‘디자인서울’의 허구에 대한 강연을 듣고 소라광장에서 출발해 광통교-수표교-오간수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역사 산책에 나섰다.

혼탁한 도시에 몸서리칠 정도의 폭염이 계속 내리쬐었다. 땀에 젖은 채로 걸으며 박 강사의 설명들 듣다 수표교에 이르니 ‘대선용 업적 쌓기’ ‘알고 보니 어항’ ‘연간 수돗물 값만 수백억’ 등 그간 언론의 비판 수사들이 오히려 진부하다고 느낄만큼 심각한 허구들을 만났다.

박경리 선생이 “눈 감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복원한 걸 보고 싶다”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석교인 수표교는 엉뚱한 목교로 복원되었고, 목교였던 광통교는 반대로 석교로 복원되었다. 공사 중에 발견된 석물 등 문화재는 중랑구 하수처리장 터에 방치되고 있다.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빈곤한 문화의 상징 ‘청계천 소라’

반값 등록금 시위 등 서울 도심 촛불시위 장소의 상징이 된 청계천 입구에는 눈에 띄는 조형물이 있다. 일명 ‘소라’로 불리는 이것의 본명이 ‘스프링’(Spring)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여기에 얼마가 들었는지 알게 된다면 웬만큼 숫자에 무딘 사람도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소라의 예산은 34억원으로, 역대 최고 조형물 가격을 갱신했다. 당시 서울문화재단 대표였던 유인촌씨의 발표 내용이다. KT가 전액 기부하여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생김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예술적이라고 보기 힘든 공공조각품이다.

박 연구원은 “공공장소에 놓이는 조각 미술품의 경우,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의 재산이므로 시민의 의견이나 취향, 장소에 대한 분석, 역사적 맥락의 이해는 필수적인 요소”라며 “청계천 소라는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부재한 조형물”이라고 설명한다.



“디자인 서울? 청계천과 비교도 안 돼”

박 연구원은 “청계천 신화의 성공은 곧 4대강 죽이기 사업의 시발점이었다”라고 강조하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개발의 폐해에서 상처입지 않은 지역은 어떻게든 보존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천 년을 흐르고 있는 낙동강의 모태이자 십여 미터 이상 쌓인 모래톱이 잘 보존된 경북 예천 내성천에 대해 관심을 가져 달라“고도 호소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서울에 대해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수사를 반복하며 "청계천과 비교해도 심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왜 ‘디자인’일까? 서울시가 말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박 강사는 디자인 권력에 대해 “디자인을 쥐는 자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디자인으로 대중을 통제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광화문 앞을 지켜 온 아름드리나무를 다 뽑고 광장을 만들면서 수해가 일어난 것(서울시는 다시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애초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플로팅 아일랜드와 한강다리 카페 사업, 용산 참사의 원인이 된 대규모 컨소시엄 개발 사업, 동대문 운동장 철거 과정 중 발견된 대규모 문화재를 검토 없이 덮어버리고 두 달 만에 바닥을 파고 건물을 올린 것은 ‘범죄’로 단정할 정도로 참담하다.

“청계천 신화는 '디자인 서울'의 초안”

마지막으로 동대문 박물관 탐방이 끝날 무렵 박 연구원은 ‘청계천 개념투어’의 의미에 대해 새삼 강조했다.

“청계천 신화야말로 신개발 독재정권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자, ‘디자인 서울’의 초안을 설계하게 해준 토대다. 때문에 서울시에서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를 이해하려면 청계천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디자인 서울의 신호탄과 같은 청계천 초입의 조형물은 행정을 이끄는 주체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것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신화야말로 신개발 독재정권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자, ‘디자인 서울’의 초안을 설계하게 해준 토대다. 때문에 서울시에서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를 이해하려면 청계천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디자인 서울의 신호탄과 같은 청계천 초입의 조형물은 행정을 이끄는 주체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것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