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 宇宙는 뜨거운 주전자와 같습니다.
이 宇宙 속의 어느 곳으로 가든 우리는 우리들의
經驗에 依해 料理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잘 구워질 때까지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 神의 意志를 받아들이면 즐겁고 평화로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 신이여, 이 무슨 고생입니까?" 하고 말하지만
우리는 "좋습니다. 저를 이렇게 단련하시는군요. 계속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정말 끔찍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세상은 완벽한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생산되는 그 어떤 새차보다 더 훌륭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정련되는 중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 도망하려고 할
까닭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일단 이 세계에서의 經驗으로 잘 구워지고 나면
우리는 執着이 없어져 "이제 난 幸福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또 타인에게 조언도 해줄 수 있습니다.
"걱정마. 자네도 머지 않아 잘 구워져서 나처럼 행복해질 거야."
만일 우리가 苦痛의 意圖를 안다면, 에고를 태워 없애 버리는 것이
고통의 목적임을 안다면,
그때는 고통을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은 淨化의 한 방법으로서 그 고통을 變形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의 熱을 내어
所望스럽지 못한 不純物을 태워 버려야 합니다.
그러니 고통이 찾아올 때에 그 고통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통을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고통을 야기시키는 일은 피해야 하며 영적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몸에 폭력을 가해서도 안됩니다.
실제로 몸에 바늘을 꽂아 통과시킨다든지, 불 속을 걷는다든지,
일부러 어려움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眞理를 알기 위해서는 逆境이 요구됩니다.
역경이 오거든 그것은 여러분을 冥想 修行者가 되도록
고무하는 매질이라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선(善)을 알려면 무엇이 악(惡)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人生의 敎訓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타인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오거든 기쁨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고,
신과 그 고통을 보낸 이에게 감사해하고 절하도록 하십시오.
그 발에 이마를 대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그 사람처럼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되지 마십시오.
苦痛에서 敎訓을 얻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警告입니다.
苦痛이 있거든 原因을 찾아보십시오.
결국 고통이란 게 뭐겠습니까?
고통은 幸福을 상실하는 것일 뿐입니다.
고통은 왜 幸福을 잃어버렸는지 發見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物件들을 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물건들은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달리면 그들은 더욱 앞서 달려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그림자를 좇아 더 빨리빨리 달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것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事物들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부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 앞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平安하게 되면 모든 것이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 빛을 향해 걸으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그림자들은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 바바 하리다스 -
-생활속의 명상도량 광주자비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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