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있는 事實을 事實대로 보는 힘

장백산-1 2012. 5. 17. 13:09

 

 

 

 

반야지혜의 本質 - 끊임없는 보살행

진불선원 선원장 설우 스님
끊임없는 보살행 實踐이 반야지혜의 本質입니다

부처님 설한 存在性이 緣起法
緣起性을 알면 執着끊고 無心
이것이 곧 凡所有相 皆是虛妄

 

 

▲설우 스님

 

 

부처님께서 남긴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어떤 가르침이 우리 現實에 도움을 줄까요.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도의 실천을 수행덕목으로 삼아서 참된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思想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경)’입니다.


‘금강경’은 선가(禪家)에서는 선경(禪經)이라 합니다. 그만큼 禪적인 意味가 잘 담겨 있는 경전입니다. 조계종에서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를 말합니다. 金剛이 가지고 있는 正體性의 첫째는 ‘불변(不變)’입니다. 천년을 지나도 變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地球上의 어떤 物件도 다 끊어버릴 수 있는 날카로움을 말합니다.

一切의 雜스럽고 不必要한 問題들을 한 瞬間에 벼락 치듯 끊을 수 있는 特性 때문에 金剛은 날카롭고 번득이는 智慧를 나타냅니다.


金剛은 또 항상 빛이 나기 때문에 거울과도 같습니다. 거울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가리지 않고 平等하게 비춥니다.

事實을 事實대로 보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偏愛하고 執着하거나 누구를 우선순위로 두는 중생심이 거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반야바라밀 思想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 사구게(四句偈)는

核心 內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

 

풀이하면 “무릇 形相 있는 것은 모두 虛妄한 것이니, 모든 形相이 있는 것이 形相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 곧 如來를 보게 되리라.” 이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참으로 빈 것은 이 虛空과 같다는 것입니다. 虛空은 비어있지만 千相萬相 모든 生命을 다 살려냅니다. 季節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다 텅 빈 참 眞空의 偉力이자 生命力입니다.


眞空妙有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과 相通합니다.

色이 그대로 空이고, 空이 그대로 色이고, 무슨 말일까요?

바로 부처님 가르침의 根本 中心에 있는 연기(緣起) 思想을 말하고 있습니다.

緣起는 무엇입니까. 關系性입니다.

불교는 存在論을 이야기합니다.

生命이 어떻게 存在해 가고 있느냐에 대해서 思惟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存在性이 緣起法입니다.

어떤 生命이던지 그 生命이 存在한다는 것은 서로간의 關系性을 維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성취한다고 했을 때 먼저 마음의 正體性을 알아야 합니다. 緣起法을 잘 알게 된다면 마음의 本質을 알게 됩니다.


사구게에는 生命力이 들어있습니다. 컵은 因緣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因緣이 다하면 空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色과 空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色이 곧 空이고 空이 다시 곧 色인 것입니다.
物質은 우리에게 便理性을 주고 幸福을 줍니다. 그러나 執着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物質은 컵과 같이 또한 이 다하면 언제든지 空으로 變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緣起性을 알게 되면 執着이 끊어지고 無心하게 됩니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말한 ‘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는 뜻입니다.

形相 있는 것은 그 自體로 永遠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消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虛妄한 것입니다.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라는 말을 사구게에서 더 절실하게 드러낸 것이 ‘금강경’ 마지막 32품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입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이라.

풀이하면 一切 衆生이 가지고 있는 執着과 欲心으로 일어나는

苦惱와 煩惱, 現實世界는  그림자, 꿈, 이슬, 아지랑이, 거품, 번개. 이러한 것들차럼

因緣에 依해서 잠깐 스쳐지나가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약견제상(若見諸相)은 무엇이냐. 一切의 모든 相을 諸相이라 합니다. 꽃도 책상도 모두 諸相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모두 諸相입니다. 이 諸相이 비상(非相)인줄 알면 卽 形相이 恒常 不變의 形相이 아닌 줄 알게 되면 如來를 보게 됩니다. 즉견여래(卽見如來)입니다.

形相이 形相 아닌 줄을 안다는 것은 없어진 다음에 아는 것이 아니고  形相을 보는 卽時에

同時에 그 形相의 本質을 貫通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道 깨침은 虛妄한 生覺
眞理알고 生活에서 實踐하여
福德 具足할 때 깨달음도 可能


만약 있는 그대로 本質 속을 보게 되면 반야바라밀을 잘 實踐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반야지혜가 그대로 如如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구게를 꿰뚫게 되면, 혹은 꿰뚫기 위해서는 보살행을 해야 합니다.


대승불교에서 부처님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가 菩薩行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前에 무수한 보살행을 하신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자타카’ 즉 전생담이란 경전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事物의 本質을 알았고 그 本質은 다시 因緣을 만나서 無限한 生命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을 創出해 내기 위해 보살행을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이 時代에 重要한 것은 菩薩行입니다. 菩薩行은 菩薩의 行인데 菩薩은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存在입니다. 그러니까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바로 보살입니다.


‘금강경’ 첫 구절을 보면 부처님께서 한 때에 공양하실 시간이 되자 25조 가사를 두르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의 저잣거리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일곱 집에서 탁발을 얻어가지고 다시 기원정사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시고 발우를 씻고 또 발을 씻으시고 그리고는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이렇게 始作됩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이 구절이 事實은 대단한 內容입니다. ‘금강경’에서 반야지혜의 핵심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첫 句節은 重要할 것도 없는 시시콜콜한 內容으로 始作됐다는 것이 理解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부처님은 이런 모습 때문에 더욱 위대하고 뛰어난 스승입니다. 여러분들이 子女 敎育을 시킨다고 할 때 아이들에게 주문하는 것이 많습니다. 누워서 보지 마라. 가까이서 보지 마라. 계획적으로 공부해라. 그런데 여러분은 스스로 자녀들에게 했던 이런 말들을 生活 속에서 實踐하고 있습니까. 만약 自身은 實踐하지 않으면서 自息들에게만

强要를 하면 이것은 敎育이 아니라 잔소리가 될 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절대 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聖人의 말을 끌어다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대중들과 함께 있으면서 行動으로 몸으로 가르치십니다. 부처님은 聖人 중에 聖人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저잣거리로 나가 탁발을 하고 스스로 씻고 平等하게 나눠드시고 법문을 합니다. 直接 삶으로 眞理의 當體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般若智慧에 菩薩行이 따르지 않으면 결코 온전한 智慧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학문적인 지식이나 철학적인 견해로 교법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보살행이 함께 해야 합니다. ‘금강경’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가 또한 實踐입니다. 사구게를 수지독송(受持讀誦)한다고 하는 것은 그냥 내용을 읽어 암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受持라는 말은 菩薩行이 내 삶 속에, 生活 속에 스며들어 日常化됨을 意味합니다.


우리는 善行과 奉事로 功德을 쌓아감으로써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인색함과 에고, 집착 등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道를 깨친다는 것은 虛妄한 生覺입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습니다. 眞理를 알고 生活속에서 끊임없이 實踐해, 福과 功德을 함께 갖출 때 깨달음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福덕과 智慧가 平等을 이루며 어느 地点에 到達했을 때 道를 깨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금강경’은 반야지혜를 열어서 보살행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경전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금강경의 가르침에 따라 어떤 事物이나 形相에도 執着을 일으키지 않고, 本質을 꿰뚫어 보살행을 實踐하다보면 깨달음은 곧 여러분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정리=광주·전남지사 조영훈 지사장


이 법문은 10월11일 무등산 증심사에서 ‘무등에서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명사초청법회에서 설우 스님이 한 설법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설우 스님

1951년 태어났으며 1971년 상주 원적사에서 원명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수도암, 도성암 등지에서 정진하며 25안거를 성만했다. ‘조계종 간화선 수행지침서’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조계종 교육원 교육제도개선위원회 위원, 승가고시 위원, 기본선원 교선사를 맡고 있다. 현재 진불선원 선원장으로 후학 양성에 매진 중이다.

 

-결가부좌 명상도량/자비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