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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29.03.12 코카콜라 아서 캔들러 사망

장백산-1 2013. 3. 9. 17:51

1929.03.12  코카콜라 아서 캔들러(Asa Griggs Candler) 사망

 

 

 

 

 

 

 

 

원시생활을 하던 아프리카 오지의 부시맨에게 떨어진 문명의 초청장. 영화 ‘혹성탈출’에서 주인공 우주비행사에게 불시착한 곳은 원숭이의 행성이 아니라 인류가 멸망한 지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물건. 회교혁명에 성공한 호메이니의 최우선 금지 품목. 이게 뭘까. 코카콜라다.

 

세계 200여국에서 하루 10억잔 이상이 팔린다는 코카콜라가 처음 나온 시기는 1886년. 미국 애틀랜타시의 약제상 팸버튼 박사가 만들어냈다. 원료는 코카(coca)의 잎과 콜라(kola)나무의 열매, 그리고 코카인.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됐다. 가격은 한잔에 5센트. 팸버튼의 첫해 매출은 50달러로 광고비용 73달러60센트에도 못 미쳤다.

 

싸구려 ‘만병통치약’이 판치던 시절, 시골잡화상의 음료에 머물던 코카콜라는 1888년 새로운 주인을 맞는다. 남북전쟁 탓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37세의 약제상 아서 캔들러는 코카콜라를 2,300달러에 사들였다.

 

대대적인 광고마케팅을 펼친 캔들러는 1914년까지 5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1916년에는 애틀랜타 시장으로 선출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만족한 캔들러는 1919년 코카콜라를 2,500만달러에 팔았다. 수익률은 1만%. 캔들러는 1929년 3월12일 사망할 때까지 자선사업가로 지냈다.

 

세번째 주인 우드러프는 코카콜라의 무대를 세계로 넓혔다. 2차대전 중 미군이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코카콜라가 따라갔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다. 미군은 코카콜라의 영업사원이었던 셈이다. 코카콜로니즘(코카콜라를 앞세운 제국주의)이라는 말도 생겨날 정도로 전세계로 퍼졌다. 미국을 적대시하는 나라에도 코카콜라는 있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700억달러(2002년 기준). 세계 1위다.

 

/서울경제

 

 

 

 

 

캔들러 [ Asa Griggs Candler ]

1851. 12. 30 미국 조지아 빌라리카 근처~1929. 3. 12 애틀랜타.

미국의 소프트드링크 제조업자.

 

코카콜라를 개발했다. 시골에서 태어난 캔들러는 약학을 공부해 약제사가 되었으며 제약도매업을 하여 상당한 재력을 쌓았다. 1887년 그는 코카콜라 제조법을 매입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코카콜라는 관련업계에는 특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코카콜라의 제조과정을 더욱 개선하여 코카콜라를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사업으로 만들었다. 그의 운영하에서 이 회사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1919년 그는 이 사업체를 2,500만 달러에 매각했다. 또한 그는 자선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재정적인 후원으로 애틀랜타 근처에 있던 에머리대학이 애틀랜타로 옮겨져 에머리대학교로 발전했다. 200만 달러에 달하는 그의 기부금으로 이 대학교 의과대학에 부속병원이 설립되었다.

 

/네이트 백과사전

 

브랜드 컨설팅 전문회사인 인터브랜드는 해마다 전 세계 수백 개 브랜드의 자산 가치를 평가하여 100개의 베스트 브랜드를 발표한다. 인터브랜드의 리스트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20년 가까이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하루에 6억 잔 이상 소비된다는 코카콜라가 이토록 오랜 기간 세계 최고 브랜드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기들이 소유했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아이덴티티 컬러인 붉은색, 그리고 읽히기보다 이미지로 인식되는 로고가 코카콜라의 브랜드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코카콜라는 제약사인 존 펨버턴(John Pemberton)이 두통약으로서 수차례 개발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만든 음료수다. 1886년 펨버턴은 연속되는 실패 뒤 여러 가지 혼합물에 탄산수를 넣어 완성한 음료의 시음회를 자신의 뒷마당에서 연다. 이 시음회에서 특별한 평가를 받았고 약국에 납품을 시작하게 된다. 펨버턴의 경리 사원이었던 프랭크 M. 로빈슨(Frank M. Robinson)은 이 음료수에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C자가 돋보이는 흘림체의 로고까지 디자인해주었다. 로빈슨이 디자인한 로고는 1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쓰이고 있다.

 

펨버턴으로부터 사업권을 사들인 아사 캔들러(Asa Candler)는 유능한 사업가로서 이 독특한 음료수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웠다. 1915년에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콘투어 병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대회부터 올림픽 후원을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뒤에는 유명한 산타클로스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경리 사원이 만든 이름과 디자인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출처 : 추억속으로
글쓴이 : 그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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