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서서히 잿빛으로 변해가는 초겨울. 다시 대덕사 삼광전 스님 처소에 들렀다. 스님께서 내어주신 아몬드와 호두을 먹으며 마침 어느 불교 방송에서 하는 모 큰스님의 '서장' 법문을 잠시 시청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이라는 말씀으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불법을 열어[開] 보이고[示] 깨달아[悟] 들어오게[入] 하기 위해서 세상에 출현하셨단 말씀이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 개시오입 하는 것이냐 하면 중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부처님께서 개시오입 한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르셨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빼놓고 불법을 이야기하는 것을 당신께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비록 방편설이라고는 하나 여러 가지 개념으로 불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풍토에 대해서도 개탄하셨다.
그러시며 황벽 선사와 임제 선사의 기연을 말씀해 주셨다. 임제 선사가 황벽 스님에게 불법이 무엇인지 물을 때마다 황벽 선사는 바로 몽둥이로 쳤다. 그러기를 세 번이나 하자 임제 선사가 황벽 스님 곁을 떠나려 하였다. 목주 도명 상좌의 도움으로 하직 인사를 드리러 간 임제 선사에게 황벽 스님은 대우 화상을 찾아가란 명을 내린다. 임제 선사는 대우를 찾아가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허물이 있었기에 불법을 물었는데 때리기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황벽 스님이 너를 위해 그렇게 자비스럽게 가르쳐 주셨는데 무슨 허물 운운하느냐 하는 대우 스님의 말에 임제 선사가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무슨 '중도'를 깨닫느니 하는 어려운 말이 어디 있냐 하신다.
성불은 오직 자기 성불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하신다. 자기가 성불하지 못하면 석가, 미륵도 영험이 없다 하셨다. 대통지승불이 십 겁 동안 도량에 앉아 있어도 성불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 이르셨다. 자기가 견성하여 성불하면 온 우주가 다 성불한 것이지만 자기가 깨닫지 못하면 석가와 미륵의 깨달음도 참된 깨달음이 아니라 하셨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들려 주셨다.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 만약 사람이 잠깐이라도 고요히 앉으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 항하사만큼 많은 칠보탑을 쌓는 일보다 수승하니
보탑필경쇠위진(寶塔畢竟衰爲塵) 보탑은 필경 한 줌이 티끌로 돌아가지만
일념정심성정각(一念淨心成正覺)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
며칠 전 우연히 책에서 본 '묘정명심' 운운하는 위산과 앙산의 문답을 스님께 물었다. 앙산이 위산에게 '그것을 사(事, 현상)라 말해도 됩니까?'란 구절에서 막힌다고 여쭈었더니, 벼락처럼 호통을 치신다.
"위산이 무엇이고, 앙산이 무엇인가!"
스님이 내리치신 한 방망이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여전히 언구와 생각에 걸렸던 것이다. 앞으로 스님 앞에서 뭐 좀 알았다 소리 절대 하지 말라고 야단치셨다. 자기를 빼놓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여태까지 무엇을 들었냐 하셨다.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바탕 몽둥이질이 끝난 뒤 옛스님들이 '염송은 혼자서 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잘 살펴 보라고 공부 길을 일러 주셨다. '옳기는 옳지만 아니다'라는 말. '말후구'는 알 수 없는 것이라 하시면서 들어갈 곳을 지시해 주셨다. 모두가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거늘! 그래서 선지식의 방 깊숙히 들어가 방과 할로 단련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스님이 들려주신 진묵 스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하루는 진묵 스님이 시자와 함께 시냇가를 거닐었다. 스님이 지팡이를 세우고 물가에 서서 손으로 물 속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그림자로구나”
그러자 곁에 있던 시자가 “그것은 스님의 그림자입니다” 하자, 스님은 “너는 다만 나의 허망한 모습만 알 뿐, 석가의 참모습은 모르는구나!”하고 탄식하였다 한다.
대덕사를 내려오는 길에 상수리 나무 이파리들이 우수수 바람결에 떨어진다. 석가의 참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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