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
01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
여기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이야기가 있다. 註) 이 이야기는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비유담이다. 안수정등이란 절벽의 나무(岸樹)와 우물의 등나무 넝쿨(井藤)이라는 뜻이다.
한 나그네가 아득히 펼쳐진 너른 벌판을 가고 있었다. 나그네는 문득 뒤를 보다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코기리가 자기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음을 알았다. 註) 코끼리는 歲月의 無常함을 상징한다.
산더미 같은 그 묵중한 코끼리의 발이 자신을 짓밟아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일자, 나그네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그네가 겁에 질려 도망치는 속력을 낼수록, 코끼리도 대지를 쿵쿵 울리며 무서운 속 나그네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일파만파로 증폭되어 요동치기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더 이상 도망칠 벌판이 없었다. 결국 막다른 절벽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왔을 나무 하나가 절벽엔 위태롭게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나무를 감아 올라간 등나무 넝쿨 한 줄기가 절벽 아래의 우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거대한 코끼리가 뒤에서 발을 들어 나그네를 짓밟으려는 찰라, 후다닥 나그네는 등나무 넝쿨을 붙들고 우물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휴, 이제 안심이군, 저 덩치가 감히 이 우물 안까지 쫓아오겠는가.” 나그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註) 이 場面(scene)은 육도 윤회의 세계(벌판)를 쫓기듯이 달려와, 지금의 삶(우물 안)에 뛰어드는 장면이 상징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 安心도 瞬息間에 사라져 버렸다.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지점의 사방에서 독사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나그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독이 강물처럼 줄줄 흐르고 있었다. 물리면 끝장난다. 註) 이 부분은 물질의 인연화합으로 잠시 생성된 몸이 끊임없이 분해되고 해체되려는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나그네는 아래로 내려가려 마음먹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오, 이런, 저 아래 바닥에는 독룡이 시뻘건 입을 벌린 채 위에서 내려오는 먹이를 받아먹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라가면 저 위에서 지키고 있는 코끼리가 날 밟아 뭉갤 것이다. 내려가면 저 아래에서 기다리는 독룡의 입 속에 삼켜질 것이다. 여기 가만히 있어도 독사들이 이빨을 내 몸에 박아 올 것이다.
나그네가 처한 비극적 상황은 여기에 그친 게 아니었다.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잠시 매달려 있지만, 저 위의 나무 위에선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등나무 넝쿨을 쏠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허공에 매달린 채 버티며 팔 힘은 빠져 가는데, 얼마 안 있어 쥐들이 쏠고 있는 이 넝쿨도 끊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註) 밤(검은 쥐)과 낮(흰 쥐)은 교대로 흘러가며, 우리의 生命줄을 갉아먹고 있다.
그 때 문득, 나그네는 달콤한 뭔가가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들어서 우물 위를 쳐다보니, 절벽 위 나무에 매달려 있던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그네는 엉겁결에 입을 벌려 꿀물을 받아먹었다. 한 방울,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꿀물이 나그네의 벌린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그네의 극도의 공포는 꿀을 받아먹으며 잠시 위안을 받았다. 그래, 이게 인생이야. 뭐 별거 있나? 지금 나 꿀 먹고 있당! 나그네는 독사도, 독룡도, 코끼리도, 독사도, 넝쿨을 쏘는 쥐들도 잊어버린 채 꿀물이 주는 달콤한 환상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註) 꿀은 欲望과 快樂의 象徵(식욕,성욕,수면욕,재물욕,명예욕)이다.
02 어찌할 것인가
암울하던 일제치하에서 용성(龍城) 스님이 주석하시던 곳에 만공, 혜월, 혜공, 고봉, 전강 등 쟁쟁한 선지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용성 방장께서 이 岸樹井藤을 들춰내 물었다.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 방울을 먹던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살아나겠는가?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와 生死解脫을 할 수 있는가? 한 마디씩 일러보라.”
만공: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 혜봉: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 혜월: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으나, 잡아 얻음이 분명(염득분명)하니라. 보월: 누가 언제 우물에 들었던가? 고봉: 아야, 아야!
질문을 던진 용성 스님은 이렇게 자답(自答)했다.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웠느니라(包瓜花穿籬出 臥佐痲田上).”
용성 스님은 그 자리에 없던 전강이라는 제자의 대답이 궁금했다. 당시 전강은 엿판을 등에 짊어지고 엿장수로 떠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스승의 질문을 품고, 엿장수 가위질을 하는 전강을 찾아가 물었다. “우물 속에 갇힌 나그네가 어떻게 하면 출신활로(出身活路)를 얻겠는가?” 손에 든 엿장수 가위를 번쩍 들며 전강 스님 왈,
“달다!”
03 매달린 벼랑에서 손을 놓으면 (懸崖撒手)
가지 잡고 나무 오르는 건 別 神通한 재주 아니네 (得樹攀枝未足奇) 매달린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대장부라 (懸崖撒手丈夫兒) 물은 차고 밤기운은 싸늘하여 고기 아니 무노매라 (水寒夜冷魚難覓)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留得空船載月歸)
- 야부(冶父)
04 달다
안수정등에 대한 우리나라 선사들의 문답 중, 전강 선사의 한 마디 “달다.”라는 답은 奧妙한 感動을 준다. "달다"라는 答은 지금 이 瞬間의 絶對 肯定이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그 절체절명(絶體絶命)의 瞬間! 삶과 죽음마저도 사라졌고(一念不生), 과거도 미래도 없는 절대 현재(前後際滅), 그 속에 밝고 밝은 靈性 자유자재로 작용하고(妙用自在), 순수하고 밝으며 神靈스러운 이 主人公이 本來 모습이러니(本地風光).
04 두려움은 애초부터 없었다
슬픔과 苦痛과 無常은 삶의 오랜 벗. 나 코끼리 등에 타고 더불어 한 세상 건넜어라. 미련없이 해체될 이 몸뚱이 깨달음의 터전으로 삼았어라. 오가는 밤낮으로 生命의 遊戱를 즐겨 온 無我의 춤판. 世上의 벌판 한 구석에서 다시 깨닫노니 코끼리도 벌판도 쥐들도 뱀들도 꿀도 眞情 아무 것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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