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

장백산-1 2013. 9. 29. 17:03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

 

01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

 

여기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이야기가 있다.

註) 이 이야기는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비유담이다.

안수정등이란 절벽의 나무(岸樹)와 우물의 등나무 넝쿨(井藤)이라는 뜻이다. 

 

 

 

한 나그네가 아득히 펼쳐진 너른 벌판을 가고 있었다.

나그네는 문득 뒤를 보다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코기리가 자기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음을 알았다.

註) 코끼리는 歲月의 無常함을 상징한다.

 

산더미 같은 그 묵중한 코끼리의 발이 자신을 짓밟아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일자,

나그네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그네가 겁에 질려 도망치는 속력을 낼수록, 코끼리도 대지를 쿵쿵 울리며 무서운 속력으로 쫓아왔다.

나그네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일파만파로 증폭되어 요동치기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더 이상 도망칠 벌판이 없었다.

결국 막다른 절벽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왔을 나무 하나가 절벽엔 위태롭게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나무를 감아 올라간 등나무 넝쿨 한 줄기가 절벽 아래의 우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거대한 코끼리가 뒤에서 발을 들어 나그네를 짓밟으려는 찰라,

후다닥 나그네는 등나무 넝쿨을 붙들고 우물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휴, 이제 안심이군, 저 덩치가 감히 이 우물 안까지 쫓아오겠는가.”

나그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註) 이 場面(scene)은 육도 윤회의 세계(벌판)를 쫓기듯이 달려와,

지금의 삶(우물 안)에 뛰어드는 장면이 상징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 安心도 瞬息間에 사라져 버렸다.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지점의 사방에서 독사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나그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독이 강물처럼 줄줄 흐르고 있었다.

물리면 끝장난다.

註) 이 부분은 물질의 인연화합으로 잠시 생성된 몸이 끊임없이 분해되고 해체되려는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나그네는 아래로 내려가려 마음먹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오, 이런, 저 아래 바닥에는 독룡이 시뻘건 입을 벌린 채 위에서 내려오는 먹이를 받아먹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라가면 저 위에서 지키고 있는 코끼리가 날 밟아 뭉갤 것이다.

내려가면 저 아래에서 기다리는 독룡의 입 속에 삼켜질 것이다.

여기 가만히 있어도 독사들이 이빨을 내 몸에 박아 올 것이다.

 

나그네가 처한 비극적 상황은 여기에 그친 게 아니었다.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잠시 매달려 있지만, 저 위의 나무 위에선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등나무 넝쿨을 쏠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허공에 매달린 채 버티며 팔 힘은 빠져 가는데, 얼마 안 있어 쥐들이 쏠고 있는 이 넝쿨도 끊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註) 밤(검은 쥐)과 낮(흰 쥐)은 교대로 흘러가며, 우리의 生命줄을 갉아먹고 있다.

 

그 때 문득, 나그네는 달콤한 뭔가가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들어서 우물 위를 쳐다보니, 절벽 위 나무에 매달려 있던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그네는 엉겁결에 입을 벌려 꿀물을 받아먹었다.

한 방울,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꿀물이 나그네의 벌린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그네의 극도의 공포는 꿀을 받아먹으며 잠시 위안을 받았다.

그래, 이게 인생이야. 뭐 별거 있나?

지금 나 꿀 먹고 있당!

나그네는 독사도, 독룡도, 코끼리도, 독사도, 넝쿨을 쏘는 쥐들도 잊어버린 채 꿀물이 주는 달콤한 환상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註) 꿀은 欲望과 快樂의 象徵(식욕,성욕,수면욕,재물욕,명예욕)이다.

  

 

 

02 어찌할 것인가

 

암울하던 일제치하에서 용성(龍城) 스님이 주석하시던 곳에 만공, 혜월, 혜공, 고봉, 전강 등 쟁쟁한 선지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용성 방장께서 이 岸樹井藤을 들춰내 물었다.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 방울을 먹던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살아나겠는가?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와 生死解脫을 할 수 있는가? 한 마디씩 일러보라.”

 

만공: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

혜봉: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

혜월: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으나, 잡아 얻음이 분명(염득분명)하니라.

보월: 누가 언제 우물에 들었던가?

고봉: 아야, 아야!

 

질문을 던진 용성 스님은 이렇게 자답(自答)했다.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웠느니라(包瓜花穿籬出 臥佐痲田上).”

 

용성 스님은 그 자리에 없던 전강이라는 제자의 대답이 궁금했다.

당시 전강은 엿판을 등에 짊어지고 엿장수로 떠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스승의 질문을 품고, 엿장수 가위질을 하는 전강을 찾아가 물었다.

“우물 속에 갇힌 나그네가 어떻게 하면 출신활로(出身活路)를 얻겠는가?”

손에 든 엿장수 가위를 번쩍 들며 전강 스님 왈,

 

“달다!”

   

03 매달린 벼랑에서 손을 놓으면 (懸崖撒手)

 

가지 잡고 나무 오르는 건 別 神通한 재주 아니네 (得樹攀枝未足奇)

매달린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대장부라 (懸崖撒手丈夫兒)

물은 차고 밤기운은 싸늘하여 고기 아니 무노매라 (水寒夜冷魚難覓)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留得空船載月歸)

 

- 야부(冶父)

 

04 달다

 

안수정등에 대한 우리나라 선사들의 문답 중,

전강 선사의 한 마디 “달다.”라는 답은 奧妙한 感動을 준다.

"달다"라는 答은  지금 이 瞬間絶對 肯定이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그 절체절명(絶體絶命)의 瞬間!

삶과 죽음마저도 사라졌고(一念不生),

과거도 미래도 없는 절대 현재(前後際滅),

그 속에 밝고 밝은 靈性 자유자재로 작용하고(妙用自在),

순수하고 밝으며 神靈스러운 이 主人公이 本來 모습이러니(本地風光).

 

 

04 두려움은 애초부터 없었다

 

슬픔과 苦痛과 無常은 삶의 오랜 벗.

나 코끼리 등에 타고 더불어 한 세상 건넜어라.

미련없이 해체될 이 몸뚱이 깨달음의 터전으로 삼았어라.

오가는 밤낮으로 生命의 遊戱를 즐겨 온 無我의 춤판.

世上의 벌판 한 구석에서 다시 깨닫노니

코끼리도 벌판도 쥐들도 뱀들도 꿀도

眞情 아무 것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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