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識蘊은 아는 마음의 무더기

장백산-1 2013. 10. 27. 00:09

 

 

 

식온은 아는 마음의 무더기다

식온(識蘊)은 아는 마음의 무더기다.


식(識)은 意識을 의미한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五蘊의 식(識)을 말한다. 마음은 기본적으로 심(心), 의(意), 식(識)으로 분류한다. 識은 마음인데 마음의 作用인 受.想.行을 일어나게 하고 受.想.行과 함께 瞬間的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의 作用이 恒常 함께 生滅을 한다.


식(識)은 六根이 六境에 부딪쳤을 때 六識이 일어나는데 바로 이것이 아는 마음이다. 六識은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을 말한다. 識이라고 하는 마음은 對想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경계가 있어야 식이 일어난다. 마음은 매 순간 오직 하나만 일어나서 사라진다. 그리고 마음識은 對相을 받아들이는 役割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마음의 作用인 受 想 行이 한다.


인간의 식(識)이라고 하는 마음은 죽기 前에 일어나는 마지막 마음인 사몰심(死沒心)에 의해 卽時 다음 生인 결생심(結生心)이 일어난다. 結生心은 人間이 태어날 때의 처음 마음이다. 이 마음은 태어날 당시에 일어난 마음으로 一生의 問題를 果報心으로 結晶하고 消滅한 뒤에 바로 다음 마음인 潛在意識이라고 하는 유분심(有分心)이 일어나서 마음이 계속 生滅한다.


이때 일어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의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네 가지 마음은 아라한이나 부처님을 제외하고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는 마음이다. 아라한이나 부처님께서도 태어날 당시는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단순한 마음이 아니고 기능적으로 네 가지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 선심(善心) ② 불선심(不善心. 有害心) ③ 과보심(果報心. 異熟心) ④ 무표심(無表心)


누구나 선하고 선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과보심은 업(業)이라는 행위와는 다른 행위에 따른 과보의 마음을 말한다. 어떤 업이라는 행위가 있어서 그 결과에 따라 과보심이라는 마음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과보심이 한 인간의 일생을 결정하는 결과로써의 작용을 한다. 그리고 무표심은 원인과 결과가 없는 마음이다. 이것은 비 작용적 마음으로 아라한이나 부처님의 경우에 선심과 불선심이 없어지고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만 있는데 이것이 무표심이다.


색은 물질적 현상이지만 마음이란 것은 정신적 현상으로 무엇인가를 알고 경험한다. 이와 같이 마음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단지 대상을 받아들이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마음은 원래 하나이다. 마음이란 식의 기능으로 대상을 받아 들여서 안다는 것으로 하나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는 조건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분류된다. 욕계, 색계, 무색계, 출세간계에 따라 마음이 다르게 분류되는데 이것이 분류에 따라 89가지 내지는 121가지의 마음이 있다.


누구나 마음은 선심과 불선심을 가지고 있고, 원인과 결과에 의해 과보를 받아 일어나는 과보심이 있고 원인과 결과가 없는 마음인 무표심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선한 마음과 선하지 못한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없으면 불선심이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불선심의 마음은 탐진치의 마음이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알아차림으로 불선심의 마음에서 선심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되 죄지은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죄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사람도 항상 죄만 짓는 것이 아니고 선심도 함께 가지고 있다. 다만, 불선의 마음은 알아차리지 못한 결과로 인한 것이므로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불선업의 마음은 과보의 마음으로 생겼을 수도 있고 알아차리지 못한 결과로 생겼을 수도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관용을 보이고 자애를 베풀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필요는 없다. 모두 저 스스로의 업으로 그에 따른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이므로 수행자의 입장에는,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선업의 원인을 만들도록 하여야 한다.


이상의 오온에 대한 분류는 부처님께서 하신 것이다. 특히 마음을 수.상.행.식의 네 가지로 분류한 것은 어느 누구도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인도의 미란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대화에서 보면,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에 의해 네 가지로 구분 된 것은 손에 있는 한줌의 갠지스 강물을 놓고 이 물이 무수히 많은 어떤 골짜기, 어떤 골짜기에서 흘러나와서 합쳐진 물을 알아 맞추는 것보다 더 어렵고 위대한 일이라고 했다.


경전에서 말하는 五蘊은 다음과 같다.

“몸(色)은 한 조각 거품이요,

느낌(受,)은 하나의 물방울이며,

생각(想)은 한편의 아지랑이 같고,

마음의 구성(行)은 파초나무 같으며

의식(識)은 마치 요술의 환상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