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607∼686)는 그의 나이 45세 때 의상(義湘, 625∼702)과 함께 불법(佛法)을 구하러 당(唐)나라로 간다. 그런데 이는 그의 나이 34세 때 역시 의상과 함께 당의 현장(玄장)에게 유식학(唯識學)을 배우려고 요동까지 갔다가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 날 갇혀 있다가 돌아온 뒤의 두 번째 길로, 이번에는 해로(海路)로 가기 위해 백제땅의 어느 항구로 가던 도중이었다.
이미 밤은 깊어 칠흑같이 어두운데, 갑자기 큰 비마저 내려 원효와 의상은 어떻게든 비를 피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어둠 속에서 오래된 토감(土龕) - 흙으로 지은 사당 안의, 신주(神主)를 모셔두는 장(欌) - 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여 손을 더듬으며 두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오랜 동안의 여행길에 지친 원효는 곧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만다. 새벽녘 잠결에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낀 원효는 본능적으로 어둠 속을 더듬었고, 문득 손에 잡힌 바가지의 물을 단숨에 들이킨다. 아아, 얼마나 시원하던지! 몇 날 며칠 얼마나 힘든 길이었는데, 그 모든 피로와 허기와 갈증을 이렇게 한꺼번에 씻어주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감로수(甘露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원효는 행복감에 젖어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았을 때, 원효는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방금까지 토감(土龕)이라 생각하고 누워있던 자리 여기 저기에 사람의 뼈 같은 것이 굴러다니고, 음습하기가 그지없지 않은가? 순간, 원효는 소름이 쫙 끼치는 공포를 느끼며 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오호라, 여긴 토감이 아니라 너무나 오래 되어 움푹 패인 무덤이 아닌가! 캄캄한 어둠과 피로 속에서 원효는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때 물기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해골바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보는 순간 어젯밤에 자신이 그토록 시원하게 마신 물이 사실은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는 견딜 수 없는 구토와 고통으로 데굴데굴 구르게 되고, 그렇게 데굴데굴 구르던 그 어느 한 순간 문득 원효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외친다.
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龕墳不二
又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我不入唐
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니 감실(龕室)과 무덤이 둘 아니구나!
또한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며,
만법(萬法)이 오직 식(識)이로다!
마음 밖(外)에 법 없으니
어찌 따로이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로 들어가지 않겠노라!
이후 원효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의상과 헤어져 신라로 되돌아온 그는 그야말로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귀족적이며 단아(端雅)하던 그가 갑자기 대중(大衆) 속으로 들어가 무애(無碍)박을 두드리며,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生死)를 벗어났도다!"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음주와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佛法)을 전하는가 하면, 요석 공주와 동침해 설총(薛聰)을 낳기도 하고, 이전에는 제대로 된 글 한 줄 쓰지 못하던 그가 2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종횡무진(縱橫無盡)의 대자유한 삶이 물씬 느껴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해골바가지 사건' 때 있었기에 그의 삶이 그토록이나 달라진 것일까?
우선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두고 보인 원효의 반응을 보자. 그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이는데, 하나는 너무나 시원하게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마치 그것이 하늘에서 내린 감로수인 양 지극히 행복해 하는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그 '동일한 대상'을 두고 이번에는 마치 독약이라도 마신 듯 견딜 수 없는 구토와 고통을 느낀 것이다.
- 김기태의 경전다시읽기(http://www.be1.co.kr/)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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