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스크랩] 원효와 해골바가지

장백산-1 2014. 10. 19. 17:59

 

    원효(元曉, 607∼686)는 그의 나이 45세 때 의상(義湘, 625∼702)과 함께 불법(佛法)을 구하러 당(唐)나라로 간다. 그런데 이는 그의 나이 34세 때 역시 의상과 함께 당의 현장(玄장)에게 유식학(唯識學)을 배우려고 요동까지 갔다가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 날 갇혀 있다가 돌아온 뒤의 두 번째 길로, 이번에는 해로(海路)로 가기 위해 백제땅의 어느 항구로 가던 도중이었다.
    이미 밤은 깊어 칠흑같이 어두운데, 갑자기 큰 비마저 내려 원효와 의상은 어떻게든 비를 피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어둠 속에서 오래된 토감(土龕) - 흙으로 지은 사당 안의, 신주(神主)를 모셔두는 장(欌) - 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여 손을 더듬으며 두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오랜 동안의 여행길에 지친 원효는 곧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만다. 새벽녘 잠결에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낀 원효는 본능적으로 어둠 속을 더듬었고, 문득 손에 잡힌 바가지의 물을 단숨에 들이킨다. 아아, 얼마나 시원하던지! 몇 날 며칠 얼마나 힘든 길이었는데, 그 모든 피로와 허기와 갈증을 이렇게 한꺼번에 씻어주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감로수(甘露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원효는 행복감에 젖어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았을 때, 원효는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방금까지 토감(土龕)이라 생각하고 누워있던 자리 여기 저기에 사람의 뼈 같은 것이 굴러다니고, 음습하기가 그지없지 않은가? 순간, 원효는 소름이 쫙 끼치는 공포를 느끼며 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오호라, 여긴 토감이 아니라 너무나 오래 되어 움푹 패인 무덤이 아닌가! 캄캄한 어둠과 피로 속에서 원효는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때 물기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해골바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보는 순간 어젯밤에 자신이 그토록 시원하게 마신 물이 사실은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는 견딜 수 없는 구토와 고통으로 데굴데굴 구르게 되고, 그렇게 데굴데굴 구르던 그 어느 한 순간 문득 원효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외친다.

    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龕墳不二
    又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我不入唐

    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니 감실(龕室)과 무덤이 둘 아니구나!
    또한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며,
    만법(萬法)이 오직 식(識)이로다!
    마음 밖(外)에 법 없으니
    어찌 따로이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로 들어가지 않겠노라!

    이후 원효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의상과 헤어져 신라로 되돌아온 그는 그야말로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귀족적이며 단아(端雅)하던 그가 갑자기 대중(大衆) 속으로 들어가 무애(無碍)박을 두드리며,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生死)를 벗어났도다!"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음주와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佛法)을 전하는가 하면, 요석 공주와 동침해 설총(薛聰)을 낳기도 하고, 이전에는 제대로 된 글 한 줄 쓰지 못하던 그가 2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종횡무진(縱橫無盡)의 대자유한 삶이 물씬 느껴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해골바가지 사건' 때 있었기에 그의 삶이 그토록이나 달라진 것일까?

    우선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두고 보인 원효의 반응을 보자. 그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이는데, 하나는 너무나 시원하게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마치 그것이 하늘에서 내린 감로수인 양 지극히 행복해 하는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그 '동일한 대상'을 두고 이번에는 마치 독약이라도 마신 듯 견딜 수 없는 구토와 고통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원효가 그렇게 마치 하늘에서 내린 감로수를 마신 듯 편안하고 행복해 할 때에도 해골바가지의 물은 여전히 해골바가지의 물이었고, 반대로 못마실 것을 마신 양 하며 견딜 수 없는 구토와 고통으로 데굴데굴 구를 때에도 해골바가지의 물은 여전히 해골바가지의 물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해골바가지의 물'이라는 사물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도, 원효는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 전혀 다른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원효의 그 '상반된 반응'의 원인은 해골바가지의 물 자체에 있었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 이를테면 원효의 마음 ― 이름하여 분별심(分別心) ― 에 있었는가? 그것은 분명 원효 자신의 마음에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원효가 전날 밤 그 물을 마시면서 분명히 그것이 깨끗한 물임을 확인하고 마신 것은 아니지만, 평소의 습관대로 그것은 '깨끗한' 물이라는 무의식적인 분별이 내면 깊이 깔려 있었기에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을 마시면서도 편안할 수가 있었고, 반면에 바로 다음 순간 그것을 보며 '더럽다'고 분별하니 그 동일한 대상이 이번엔 견딜 수 없는 구토와 고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즉, '깨끗하다' 혹은 '더럽다'라는 것은 결코 해골바가지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원효의 마음이 지어낸, 원효의 마음 안에서의 분별(分別)일 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원효는 미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눈에 들어온 해골바가지의 물 그 자체가 실제로 더럽다고 느끼고는 견딜 수 없는 구토를 일으키다가, 그 어느 한 순간 문득, 바로 그 물을 지난 밤에는 그토록 시원하게 마시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에 미쳐서는, 모든 것이 다만 마음이 지어내는 구별이요 분별(分別)일 뿐 ― 心生故種種法生 ― 실재(實在)가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곤 마음이 짓는 그 모든 허구적인 분별과 무게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마침내 자유하게 되었고, 그 자유가 그의 삶을 그토록 근본에서부터 뒤바꿔 놓았던 것이다.

 

 

 

- 김기태의 경전다시읽기(http://www.be1.co.kr/) 중에서

출처 : 몸 마음 영혼의 비밀문
글쓴이 : 등 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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