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장백산-1 2015. 1. 24. 02:19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三界는 오직 마음(心)이고 萬法은 오직 식(識)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라고 말하는 것은 外道와 邪見

을 가진 사람들을 제도하려고 한 말일 뿐이다. 만약 모든 存在의 根源 즉, 法身자리에서 본다면 삼계유

심, 만법유식이라는 말은 3현(三賢), 10성(十聖)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므

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두 가지의 어리석음을 끊으셨는데, 하나는 微細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며 또 

하나는 極히 微細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이미 이와 같이 두 가지 어리석음을 

끊으셨거늘, 그러니 다시 무슨 等覺이니 妙覺이니 말하는 次第를 말하겠는가? "


 

********원오당 한소리********


常見外道 斷見外道, 報身 化身, 마음 이 셋을 놓고 次別를 두어 말을 하나 그렇게 차제를 두어 아는 

一切 마음(心, 識)은 全部 다 外道와 邪見을 制壓하고 取하는 마음(心, 識)을 調伏하기 위하여 설하는 

것이고 이 모든 마음이 셋이 아니요 하나이며  하나이면서 셋인 것임으로, 이것이 모두 한 마음임을 

밝히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三界는 오직 마음(心)뿐이고 萬法은 오직 식(識)뿐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라고 하는 

말은 外道와 삿된 견해(邪見)를 가진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三界는 오직 마음(心)뿐이라고 설하지만 이 三界唯心이라는 말 역시 對相 境界인 三界와 마음(心)이 

둘이 아니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니, 次第를 두어 說하는 수밖에는 方法이 없어 

부득이 이렇게 三界唯心이라고  말은 하지만 對相 境界인 三界가 바로 그대로 마음(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말도 또한 三界唯心과 같은 말이다. 萬法이 바로 그대로 마음(識)

이라는 말이니 萬法과 識(마음)이 서로 따로따로가 아닌 萬法 그대로 識(마음)이고 識(마음) 그대로 

萬法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對相 境界니 三界니 萬法이니 이름을 지어서 말은 하지만 對相 境界, 三界, 萬法이 어쩔 수 없

이 바로 그대로 마음(心, 識)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지어 말을 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次第를 

두어 말을 하지만 對相 境界, 三界, 萬法 이 모두가 마음(心, 識) 外에는 그 어느 하나 있는 것이 없음

으로 外道들이나 凡夫들을 위하여 方便의 가르침으로 세워 만든 허망한 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法身자리에서 본다면 그 말은 3현(三賢), 10성(十聖)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말일 

이다.]

 

法身자리에서 본다면이라고 하는 말은 法身佛 報身佛 化身佛, 三身佛도 셋으로 나누어 말은 하지만 

법신 보신 화신 三身佛 이 역시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인 것(三卽一  一卽三)이라고 말을

하지만 三身佛도 그냥 다 마음(心, 識)일 뿐이다.

 

그래서 황벽스님도 왜 나누어 설하느냐하면 聲聞 緣覺 菩薩이 三賢이고 10聖은 十地菩薩을 말하는 

것이니 8지보살인 不動地의 보살부터는 이런 次第에 흔들리지 않지만 마음(心. 識)의 見處에 따라 

알아 듣게 하기 위하여 次第를 두고 見處를 두어 마음(心, 識)의 根機에 멎춰서 對機說法을 하기 위

하여 三身佛로 나누어 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三身佛  이 또한 그냥 마음(心, 識)일 뿐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법신(法身)은 청정무구(無垢淸淨)한 텅~빈 본바탕 자리이니 이 法身에는 그 어떤

報身이나 化身의 그림자도 붙을 곳이 없는 것이다.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法身佛의 다른 이름은 

내게서는 자성(自性)으로, 法에서는 법성(法性)으로, 佛에서는 불성(佛性)으로, 萬物/萬法에서는 

성품(性品)으로, 진제 삼장법사의 見解에서는 암마라識 또는 淸淨無垢識 또는 白淨識으로도 부르며 

一般的 通常的으로는 淸淨法身 毘盧遮那佛(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런 모든 名

과 色을 떠나면 法身을 萬有, 萬法, 萬物의 근본(根本)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法身의 境地에서 볼 때는 法, 對相 境界, 三界 , 萬法 萬有 萬物, 마음( 識, 心), 부처(佛)이라 

하는 모든 이름 말들과, 形色들은 깨끗한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일어났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일

어나는 一切의 影像들은 바로 수많은 Data와 記錄과 動影像이 컴퓨터의 窓에 나타나지만 컴퓨터를

껏을 때 컴의 창, 畵面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김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이것은 宇宙에너지의 빛

이 비추었다 사라지고 또 비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컴퓨터 窓이나 영화 스크린이나 法身의 窓에는 

거기에 비친 一切의 자료 기록 동영상은 자취도 흔적도 없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報身과 化身은 마음(心, 識)이 마음(心, 識)을 攝取(섭취)하여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처럼 

우주의 빛 波長이 출렁거리는 現象일 뿐이다. 그래서 報身 化身 그것을 텅~빈 바탕 마음 즉, 法身

에서 일어나서 출렁거리는 바람과 같고 빛 같다고 해서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는 이름으로도 부

른다. 修行을 통해서 얻고자 함은 오직 法身의 境地로 永生不滅, 常住不滅, 不生不滅하는 永遠한 

生命의 本體가 바로 법신(法身)이다. 法身 이것이 진여(眞如), 여래(如來), 본공(本空), 참나(眞我) 

진짜 나, 本來의 나, 根源의 나, 眞佛, 본래면목, 본성, 불성이며 宇宙萬物의 根本바탕(心地)이며, 

실체(實體)이고, 실존(實存)이요, 생명(生命)이다.  

 

그래서 황벽스님도 이 法身의 境地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마음(心, 識)의 그림자인 報身과 化身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오랜 冥想으로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의 오십위의 마음의 見處를 

모두 뛰어넘어 卽, 三界, 萬法, 對相 境界를 뛰어넘어 깨달음의 境地인 法身이 顯前하는 마음의 

無垢淸淨을 위하여 마지막 단계인 等覺과 妙覺의 段階를 이렇게 表現하신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의 어리석음을 끊으셨는데, 하나는 微細하게 아는 어리

석음이며 또 하나는 極히 微細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와 

같이 두 가지 어리석음을 끊으셨거늘, 다시 무슨 等覺이니 妙覺이니 하는 차례를 말하겠는가?]

 

 

微細(미세)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란 미세한 生覺 妄想 煩惱 想念를 가리키는 말이고 微細한 생각 

망상 煩惱 상념 의식 마음 즉, 알음알아(識), 분별심, 분별의식에서 벗어나면 바로 깨달음의 境地와 

같다고 하여 등각(等覺)이라하며 이 等覺이 마음(心, 識)의 見處이며 三界에서 말하는 28天位다.


그리고 極히 微細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란  極히 微細한 생각 망상 煩惱 상념 의식 마음 즉, 極히

미세한 分別心, 分別意識이며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億萬劫의 알음알이(識), 分別心, 

分別意識과 聞見覺知와 習慣으로 굳어져서 쌓인 번뇌장(煩惱藏)을 모두 끊어 없애는 것이니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계산 이해타산 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생각 망상 煩惱 상념 의식 마음 

즉, 알음알이(識), 분별심, 분별의식이 전부 사라진 그 곳에는 그 어떤 마음(分別心, 分別意識)의 

에너지 波長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 곳은 탁~트인 虛空과 같고, 바람없는 호수의 물처럼 고요하고 

깨끗하여 宇宙萬物이 그 곳에 바로 그대로 投映되며, 虛空에 해가 비추이듯이 般若空의 智慧가 

充滿하여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으며, 永生不滅 상주불멸 불생불멸의 恒存함이 恒一한다.

 

그래서 황벽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等覺과 妙覺의 見處를 뛰어넘어 위와 같은 法身의 境地에 

이르러서 三界를 解脫하였으니 그 해탈의 경지에서 본다면 報身이니 化身이니 等覺이니 妙覺이니 

하는 名色과 次第와 見處는 전부 다 本地風光으로 단지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빛일 뿐이며, 바다에 

출렁이는 물결인 波濤일 뿐이며, 고요한 호수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며, 꿈과 같고 幻想  幻影같은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을 가리켜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환삼매(如幻三昧)라고 말씀하셨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