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깨달음의 노래-지공화상14과송

장백산-1 2015. 1. 23. 16:15

 

 

 

 

모바일 작성글 94|몽지와 릴라

   

 

깨달음의 노래-지공화상14과송

(94)생로병사의 뗏목을 타지 않고, 어떻게 애욕의 강을 건널 수 있으랴?
      不駕生死船筏 如何度得愛河

생사가 있을 때 깨달음이 있습니다.
생사의 번뇌가 있기에 생사없는 세계로의 發心이 서는 것입니다.
세속을 버리고, 다시금 탈세속을 추구하는 死와生을 通해 세속도 탈세속도 없음을 確認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生이 바로 生과死를 벗어나는 뗏목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 역시 生과死의 그물에 있는 것입니다.
아직 미처 愛欲의 江을 건너지 못한 일입니다.

愛欲의 江을 건넘이란 世俗도 아니고 脫世俗도 아닌 일이고, 無明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닌 일입니다.
眞正한 愛欲의 江을 건넘이란 바로 깨달은 적이 없는 本來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本來 떠난 적이 없음을 보고나면 生과死가 그대로 寂滅이어서 生과死였던 적이 없고,

여전히 生과死의 물결이 일렁이지만, 그런 生과死의 물결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어찌 깨달음의 방황과 旅程을 떠나지도 않고 깨달음이 따로 없음을 確認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깨달음이라는 마지막 生과死의 깃발을 따라가지 않고 生과死의 텅~빈 모양을 確認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마음껏 마음껏 방황하십시오.
完全한 상태도 추구하고, 本來 完全하다는 相도 추구하십시오.
不二의 깨달음도 추구하고, 完全한 하나됨의 瞬間的 感想도 느껴보십시오.

부단한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發見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깨달음과 아무 相關없는 일이라는 것을요.
깨달음이라는 말에 크게 속아왔음을요.
깨달음이라면 本來 그랬고, 生과死라면 本來 生과死가 아니었음을요.

스스로가 일으킨 生과死 있다는 마음에 끊임없이 속으며

이리비틀 저리비틀 하다가 문득 精神을 차리게 됩니다.
스스로의 생각 마음 의식에게 속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였음을.
저 밖에서 들어온 물건이 하나 없었고, 저 밖에서 스스로를 흔든 일이 없었고,
오로지 혼자만의 生覺 마음 意識이라는 世上에서 온갖 꿈을 꾸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꿈은 펼쳐집니다.
그저 꿈에 속지 않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