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地風光
법정: 선(禪)의 요체(要諦)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시겠습니까
종정: 요즘 추우니까 핫옷 입었제? <주(註)...추우면 핫옷(누비솜옷) 입듯이, 있는 그대로의
現實과 現象의 正體를 自覺할 수 있는 개안(開眼)이 곧 선(禪)이라는 뜻이라고 법정스님은 풀이했다>
법정: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합장)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신문사 측의 주문이기도한데 요즘
신문을 비롯하여 TV등 언론에 대해서 스님께서 느끼고 계신 바를 말씀해 달라는군요. 그리고 스님의
언론관(言論觀), 특히 신문에 대해서 듣고 싶데요.
종정: 요즘 신문을 비롯하여 TV도 안보고 라디오도 안 듣습니다. 그러니 言論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요.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봅니다. 그러니 불편부당, 어느 쪽에도 치우치거나 편파 됨이
없어야합니다. 어떤 언론이든지 그 根本精神이 不偏不當하여 어느 기관이나 어떤 단체의 利用物이
되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환경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그대로 세워나가야만 사회에 대해서 공헌을 하고 공기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정: 어떤 時代, 어떤 社會에서나 人間은 理想과 現實의 간격에 부닥쳤을 때 회의와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특히 꿈과 미래상을 설정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추구하려는 젊은 大學生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종정: 大學生은 學門하는 사람 아닙니까? 학문의 목적은 人格養成에 있지 技術習得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실태를 보면 인격양성보다도 기술습득에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物質文明이
發達된 나머지 大學이 앞으로의 職業 準備를 위해 있는 것같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학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통해 원만한 인격을 도야하는 眞理 探究의 전당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는데 完成된 人格이야말로 永遠한 藝術이 아니겠습니까
법정: 요즘 대학생들의 사고(思考)와 행동양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靑年期의 人格形成과
자아(自我) 確立을 위해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종정: 방금도 이야기했듯이 眞理를 탐구하는 학생이 되어야지 職業을 위한 학생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법정: 물론 밥부터 먹고 봐야하는 것 아닙니까?
종정 :그렇지만 밥을 먹는 사람이 되어야지 밥에 먹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요즘 보면 밥에 먹히는 사람이 허다한데 이것도 人間 自身의 尊嚴性을 喪失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人間의 尊嚴性부터 復舊시키는 學門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서로가 돕고 依持하는 人間다운
社會를 이룰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는 이 기회에 오늘의 한국 불교교단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종정: 내가 항상 걱정하는 것은 우리 불교 교단이 일반사회보다 여러 가지로 낙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만큼 무엇보다도 승려들의 資質 向上을 위한 도제교육(徒弟敎育)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 종단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총력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수행자들에게 수행이 없으면 늘 시비(是非)가 끊이지 않게
됩니다. 종단구성원 전체가 대오각성해서 수도인의 본래 사명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법정: 스님의 일상적인 생활신조라고 할까 좌우명(座右銘)같은 걸 이번 기회에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종정: 그건 비밀인데
법정: 비밀이시더라도 조금 봉지를 터 보시지요 기왕 내친 걸음이시니 (웃음)
종정: 내가 장 (항상) 生覺하는 새말뚝이 있지. 그것이 아직도 박혀있거든.
『永遠한 眞理를 위해 一切를 犧牲한다』이것이 내 生活의 根本姿勢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더러 책도 읽어보고 했는데 그래도 佛敎가 가장 수승(殊勝)<특히 뛰어남>합니다.
불교보다 나은 眞理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불교를 버릴 용의가 있습니다. 나는 眞理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眞理를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법정: 스님의 形成에 影響을 끼친 서책(書冊)과 尊敬하는 人物을 말씀해 주실까요?
종정: 내가 주로 선(禪)을 하기 때문에 第一 影響을 받았다고 生覺되는 것이 『조주록(趙州錄)』과
『운문록(雲門錄)』입니다. 그리고 歷史上에 위대하고 훌륭한 人物도 많은데 내가 볼 땐 참으로
자기회복의 길을 개발하여 우리에게 소개해 준 인물은 석가모니부처님과 중국의 대조혜능(大祖慧能)
스님입니다. 이 두 분을 존경하는 인물로 들겠습니다.
법정: 그리고 스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아주 좋아하시지요?
그전에 스님 방에는 천진하고 귀여운 어린애의 달력 그림이 붙어 있던데요.
종정: 어린이는 내 친구지. 그 애들은 거짓을 모르니까. 그래 어떤 때는 어린애들이 오면 춤도 추게하고
노래도 부르게하지요. 이게 바로 천진불(天眞佛)의 유희삼매(遊戱三昧) 아니겠어요.
법정: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많은 生物 가운데서도 유달리 人間만이 自己는 언젠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어떻게 對處할 것인가는 모든 宗敎의 重要한 課題로 되어
있습니다. 큰스님의 生死觀을 듣고싶은데요.
종정: 모를 때는 생사(生死)지만 알고 보면 生死란 本來 없습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캄캄하다가도
눈을 뜨면 온天地가 光明인 것과 같이. 生死 이대로가 열반(涅槃), 卽 自由요 解脫입니다. 一切 萬法이
解脫 아닌 것이 없습니다. 方便으로 볼 때는 輪廻를 말하지만 輪廻도 눈감고 하는 소리지요. 눈을 뜨고 보면
自由가 있을 뿐 輪廻는 없습니다. 生死 밖에서 解脫을 求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눈을 감은 사람이지요.
그러니 幸福을 딴 데서 求하지 말고 이 現實을 바로만 보면 지상(地上)이 곧 極樂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肉身은 옷에 비유할 수 있어요. 옷이 낡아 그 옷을 벗었다고 해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잖아요.
법정: 스님, 또 한해가 동텃습니다. 새해에 우리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하셔야겠지요.
이 世上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될 시원한 법음(法音)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종정: 내가 볼때는 前生도 없고 來生도 없고 今生 뿐입니다. 새해라는 것도 달력이 바뀐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새해, 지난해 區別할 것 없이 衆生이 本來 부처(佛)임을 自覺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들 全切가 그대로 光明입니다. 우리 불교용어로는 이것을 本地風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對相을 부처님으로, 부모로, 스승으로 섬기자는 것입니다.
법정: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더욱더 귀가 밝고 눈이 맑아져 찬란한 光明속에서 本地風光을 활짝 드러내어
날마다 좋은 날 이루기를 빌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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