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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관, 아나빠나사띠 호흡 명상법

장백산-1 2015. 3. 31. 22:13

 

 

 

 

수식관, 아나빠나사띠 호흡 명상법 |영상법문 녹취록         


향광심  2015.03.31. 13:34 http://cafe.daum.net/truenature/N0Zv/251                             

 


呼吸 觀察은 잘 되고 잘 안되는 게 없습니다. 特別히 이 方法이라고  딱 定해진 方法이 있어서 그

 方法대로 잘 되야지만 잘 되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아마 해보신 분들이 나는 왜 이렇게 안되지?

하는 그런 어떤 生覺들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 아마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

 

예를 들어 雜念이 많이 올라오고 生覺이 많이 올라와서 呼吸을 觀察하다가 자꾸 다른 生覺으로 자꾸

마음이 옮겨간다. 라고 했을 때 그것을 아주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錯覺하기 싶거든요.

나는 冥想에는 소질이 없나보다. 이렇게 生覺을 하고 또는 이게 막 나중에는 막 비참해 지기도 하구요.

난 왜 이모양 이꼴인가? 하고 싶은 生覺이 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막 화가 날 정도로, 제가 經驗해봐서

아는데, 나중에 화까지 날 정도입니다. 도대체 이놈의 生覺이라는 것은 왜 이렇게 끝까지 끝까지

올라와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런 生覺이 들 정도로 生覺이 잦아들지 않고

끝까지 그냥 기를 쓰고 올라오는 것이 生覺, 雜念, 妄想, 煩惱, 分別心, 業識들입니다.

 

冥想의 目的은 이 生覺, 雜念, 妄想, 煩惱, 分別心, 業識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生覺 妄想 煩惱 雜念 分別心 業識 이걸 效果的으로 없앴을 때 成功한 冥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통 冥想을 처음 始作하는 사람은 生覺과 妄想이 안 일어나면 아 오늘은 成功했구나 生覺하고

妄想 生覺들이 많이 일어나면 오늘은 내가 失敗했구나 젔구나 이렇게 生覺하기가 쉬운데,

이런 모습이 冥想  本來의 어떤 모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冥想이 뭐냐 하면?  生覺 妄想이 일어났을 때 그 生覺 妄想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問題 삼지 않는 것이 冥想입니다. 단지 일어난 生覺 妄想들을 그냥 바라보는 것 이것이 冥想의 本來

모습입니다. 하늘이 맑고 화창한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는 날도 있지만 구름이 있는 날도 있어요.

구름이 있는 날은 그 구름 그걸 보고 구름을 향해서 辱을 안하잖습니까? 그냥 아 하늘에 구름이 떠가고

 있구나 하고 보고...또 구름 한 점 없는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한 하늘이구나 하고 볼 뿐이지.

하늘에 구름이 끼고 없고 그걸 가지고 우리가 是非 걸거나 辱하지 않듯이,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거울이라는 어떤 虛空에 떠있는 하늘에 떠있는 生覺이라는 것이 구름과 같다고

生覺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生覺하면 그냥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듯이 그냥 生覺 妄想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 마음이라는 虛空거울에 비춰지는 生覺 妄想 그걸 가지고 잘됐느니, 못됐느니,

修行에 소질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괜한 쓸데없는 是非 分別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冥想에서 가장 重要한 것이 아 生覺 妄想이 일어나는 것은 失敗한 冥想이 아니다.

일어나는 生覺 妄想 그것을 하나의 어떤 客觀的인 事件으로, 어떤 마음의 事件으로 떨어뜨려놓고

生覺 妄想이 일어났구나 라고 客觀的으로 그 妄想 生覺을 바라보는 것, 그 바라보는 觀察이 이제

마음工夫인 것이지, 그 生覺 妄想을 相對해서 是非를 거는 것이 冥想의 目的이 아니라는 事實을

確實히 分明하게 아셔야만 됩니다.

 

또 혹시 하시면서 뭐 이거 궁금하신거 꼭 묻고 싶었던 것이 있으시면 지금 한번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이 부분이 좀 잘 안된다거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라는 거 혹시 있으시면... 아이구 뭐 다들~

 (하하하) 워낙 놀랍게(하하하) 잘하고 계시지 않을텐데~ 하하하

 

네 먼저 그러면 잠시 呼吸을 먼저 한번 觀察을 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제가 몸의 자세를 몇번 말씀을 드렸지만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몸이 바르게 앉게 되어

바른 자세가 나오면 精神이 저절로 몸에 따라가져요. 그래서 몸이 이렇게 누워가지고 기우뚱하게

있으면 精神이 흐트져질 수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몸의 자세를 바로 하시되, 엉덩이를 살짝 높이시면 훨씬 더 좋을실거예요. 보통은 그래서

오른 발을 왼 발 허벅지 밑으로 넣고 왼발을 허벅지 위로 올려서 반가부좌를 하거나 혹은 그 반대가

편하면 그 반대로 하거나 아니면 왼발 오른발 전부를 상대편 허벅지 위로 올려서 결가부좌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혹은 한쪽발을 허벅지 위로 올리고 밑에 있는 발을 허벅지 밑으로 내리지 않고

앞으로 요렇게 조금 빼놔서 평좌처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 자세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손은 왼손 밑으로 오른손 위로 해서 배꼽 밑에 편안하게 내려놓으셔도

좋고, 이게 좀 불편하신 분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이 무릎 위로 살짝 가볍게 올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이 자세를 취하신 다음에 허리를 펴고 턱을 살짝 잡아 당기고 눈을 반쯤 감은 다음에 먼저 바로 呼吸을

觀察하기 보다는 바디스캔 冥想을 했던 것처럼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면서

천천히 내 몸을  조금 빠른 速度로 前에 했던 것보다는 좀 빠른 速度로 몸을 한번 觀察하시고 그러고

나서 코앞에 呼吸으로 돌아가서 呼吸을 觀察해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탁, 탁, 탁.

       .

탁, 탁, 탁.

 

어떻습니까? 그 呼吸에 意識이 좀 모아집니까? 아니면 자꾸 딴 生覺을 하게 되서 意識이 分散됩니까?

主로 어떤 生覺 妄想들이 일어납니까? 온갖 生覺 妄想 煩惱들에게 자꾸 마음이 끌려가죠? 그렇죠?

마음의 어느 정도가 여기에 좀 있던가요? 몸은 지금 여기 이 瞬間 이자리에 있는데 마음은 지금 여기

이 時空間을 떠나서 다른 時間이나 다른 空間으로 옮겨다니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의 마음이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에 유지 되기도 하고 아마 이리 저리 자주 자주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또 이리

저리로 떠돌아 다니다가 아 내가 지금 雜生覺 妄想을 하고 있구나 하고 다시 呼吸으로 돌라오는 경우의

그 빈도수를 조금 더 늘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이제 呼吸을 觀察하는데 이렇게 呼吸을 觀察하게 됐을 때 지금 여러분들 하신 것처럼 生覺 妄想

들이 일어나서 呼吸 觀察이 잘 안됩니다. 잘 안되고 또 때로는 내가 雜念을 妄想을 한지 조차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어느 瞬間 精神차려 보니까 生覺 妄想을 피우고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微細한 生覺들

스쳐지나가는 生覺들이 이렇게 오고 가기도 하고 혹은 아예 그 生覺속에 아주 자리 틀고 앉아서 그 生覺

妄想 煩腦 속에서 마음이 뛰어 노는 경우들도 있는데요..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生覺 妄想

雜念 煩惱 分別心 業識들이 일어났을 때 生覺 妄想 雜念이 생겼구나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呼吸으로 돌아

오는 이 마음의 演習을 이제 좀 오래 동안 하셔야 됩니다. 그 마음의 演習을 하기 위해서 數息觀이라고

해서 숫자를 세면서 呼吸에 숫자를 붙이면서 呼吸을 觀察하는 方法을 많이 씁니다.

 

數息觀을 쓰게 되었을 때 呼吸 날숨과 들숨을 한 번 숨 쉬고 나서 숫자를 하나 붙이고 그 다음에 계속

숫자를 붙여 가다 보니까, 呼吸 觀察이 鮮明해지는 것이죠. 아 내가 呼吸을 한번 했을 때 숫자가 세어지고

어떻게 하냐면? 보통 1부터 올라가면서 숫자를 셀수도 있지만 처음에 시작하겠다 해놓고 나서 숨을 들이

쉬고 숨을 내쉰 다음에 숫자를 100하고 붙입니다. 거꾸로 100에서부터 1로 내려오는 거예요.

 

한 呼吸에 100이라는 숫자를 붙이고 두번째 숨 들숨을 쉬고 날숨을 쉰 다음에 99하고 숫자를 붙이는 겁니다.

그 다음에 98 97 요렇게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 예를 들어 97쯤 했는데 갑자기 딴 生覺이 들어왔다.

그러면 그 다음 숨을 쉬었는데 어 이게 95였나 96이였나 햇갈려요. 까먹습니다. 그러면서 生覺이 들어왔구나

하고 生覺 妄想을 바라보는 거죠. 生覺이 들어왔구나를 보면 그러면 대충 95하자 하고 내려가면 안되고 이게

第一 重要한겁니다. 이 數息觀 冥想에서 가장 重要한 것은 生覺이 들어왔다라는 것은 벌써 숫자를 얼추 까먹는

다는 거예요. 숫자를 까먹는다 싶으면 그래서 숫자를 계속 붙이다 보니까. 숫자를 붙이는 그 瞬間에는 意識이

딱 깨어 있어야지만 숫자를 붙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숫자를 까먹거나 이럴 때는 아 分明히 生覺 妄想 雜念이 생겼구나 意識의 集中이 안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숫자가 애매할 때 혹은 生覺 망상이 일어났을 때는 바로 다시 100으로 돌아갑니다.

반드시 100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이 關件으로 第一  重要한 것입니다.

 

제가 이 數息觀 冥想을 젊은 친구들하고 해봤더니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숫자

몇까지 가 지더라? 1까지 가는 사람 손들어라 했더니 아무도 손을 안드는데 지금 1까지 얘기 하지

마시구요. 20까지 간 사람, 30까지 간 사람 했더니, 그런 거 얘기하지 마시고 95를 넘은 사람 손들라고...

 

이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97에서 95를 못넘어 오겠는 친구들도 의외로 처음에 많아요.

95까지 오기가 힘들다라는 것을 보고 너무 좌절했다고 절망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 90을

못내려오는데 80을 좀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80를 못가고 90에서만 계속 왔다 갔다 하는게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열번 反復되는 것을 보고서는 나는 정말 修行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나중에 화가 난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면서.. 여러분이 지금 生覺할 때는 콧방귀를

꾸면서 웃으실 겁니다. 젊은 아이들이라 잘안되는구나. 그렇게 生覺하실텐데, 여러분 自身을 속이면

절대 안됩니다.(하하하) 이거 나도 모르게 나 自身을 속이게 되요. 이거 누구랑 경쟁할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얘기할 것도 아닌데, 내가 뭐 80까지 왔는지, 70까지 왔는지를 누구한테 물어볼 것도 아닌데,

내 自身이 나 自身을 자꾸 속이게 되요.

 

그러니까 요 程度의 微細한 生覺 妄想 觀念쯤은 좀 봐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애매하면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안된다.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無條件 100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이게 이제 우리의 修行

이다. 왜냐하면 呼吸 숫자가 조금 애매할 때 이게 94인가 93인가 애매할 때 에라 모르겠다하고 93을

세는 것은 무엇을 意味하냐면은? 숫자를 더 밑으로 끌어 내려야 된다는 生覺 더 오래동안 이 숫자를

붙잡고 있어야 된다는 生覺 이런 생각하는 것이 數息觀 冥想에서 成功이다라는 錯覺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한 生覺이 數息觀 冥想에서의 成功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 80, 70, 60까지 내려가는 것이 成功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90을 맴도는 것이 成功입니다.

왜냐하면 한 10분을 앉아 있었는데 계속 94, 95, 96에서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 말은 그만큼 많은

生覺 妄想 觀念들을 들여다 봤다는 소리예요. 내 마음의 構造를 그만큼 分明하게 認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속에 이렇게 엄청난 煩惱 妄想이 들끓고 있구나라는 것을 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90을 못넘기고 계속 100으로 돌아가게 될 때 계속 100만 하게 될 때 그 때 충격받을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정말 工夫가 되고 있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煩惱 妄想이 많은 줄 몰랐었는데,

分明히 여러분 마음속에 90밑으로 못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좀 충격을 받거나,  왜 이렇게 이 정도뿐이

안되지라는 生覺 妄想 煩惱 分別心이 일어납니다 첫째로는...또 한가지 分別心이 뭐냐하면? 어 스님 말하고

다른데 아 나는 煩惱 妄想 하나도 없이 계속 쭉쭉쭉 내려가서 나는 막 70, 60까지도 쭉쭉 내려가는데

너무 잘 되는데 하고 生覺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生覺이 듬과 同時에 100으로 돌아가야 됩니다.(하하하)

 

나는 좀 되는데 하고 느낄 때 分明히 여러분이 아마 90 밑으로 떨어질 때 쯤 되면 나는 80 갔다라는

한 生覺이 일어난다는 말이예요. 그 生覺이 일어날 때 바로 100으로 아주 냉정하게 그냥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이와같이 이제 자꾸 微細한 生覺 妄想 煩惱들 조차도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生覺  어 80까지 갔구나하는 이 정도의 生覺은 우리가 미쳐 感知못한 生覺이였는데, 이제 숫자를 붙이면서

呼吸을 觀察하다 보면 呼吸이 훨씬 더 잘 觀察이 되고 鮮明하게 지켜봐 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거 뭐 경쟁하듯이 내가 1까지 내려가는 게 目的이 아니다라는 事實을 分明히 아신 다음에

이번에는 숫자를 세면서 100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면서 한 번 이렇게 해볼테니까, 이렇게 숫자를

붙여가면서 呼吸을 觀察하는 것이 어느 程度까지 되는지를 한번 觀察해보도록 하겠습니다.

 

呼吸에 이렇게 集中을 하고 있다보면 평소에는 넘어갈 수 있었던 現象들, 여러분 침 꼴각하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고, 배에서 때로는 예를 들어 이런 저런 소리가 들리거나 혹은 갑자기 소화가 더 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뭐 온갖 다양한 것들이 들리고 할텐데 또는 좀전에처럼 振動소리가 들리 수도

있는데, 그런걸 가지고 神經을 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수행하는 시간에만 수행하기 위해서 아카데미에 오신 게 아니라, 여기서 演習을 해서

實戰에서 써먹을려고 하는 거잖아요? 實戰은 어떤 곳이냐 하면? 여러분 삶이라는 實戰은 끊임없이

전화벨 소리도 울리고 TV소리도 들리고, 자식의 소리, 남편이 화내는 소리, 옆집 사람 소리, 온갖

소리들이 울리는 곳이 우리가 사는 삶의 現場, 實戰입니다.

 

그런데 冥想하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리거나 진동이 울린다고 아이 저 보살님은 전화도 안 꺼놓고

뭐하는 거야 하면서 화나는 마음이 일어난다든가 또는 저것 좀 꺼놓지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 마음

조차 내가 지켜볼 對相이지, 그래서 아 이 전화벨 하나에 내가 화가 이렇게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걸

지켜봐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화벨 소리가 나도 화를 내지는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화를 낼까?

그건 뭘 意味하냐면? 그 작은 것도 내가 許容해 주지 못할 만큼 내 마음이 지금 닫혀 있구나. 이렇게

내 마음속에는 이 작은 것을 許容하지 못할만큼 이렇게 화가 일어나고 있구나하는 그것이 내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工夫가 됩니다. 그래서 카메라 찍히는 소리, 전화벨 울리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옆사람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온갖 소리들이 들리고  防害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우리 工夫를

防害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工夫하게 만드는 도움의 소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같이 呼吸을 觀察하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어요. 그럼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100을 세야됩니다.(하하하) 어김없이 100으로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거기 인제 마음이 잠시 들릴 뿐 하고 알아차려주고 다시 呼吸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어떤 境界들이 들렸을 때 그것이 하나의 工夫 材料구나 라고 生覺하고...

第一 重要한 거 前에 말씀드린 것처럼 왜 이러지? 하고 묻지 말란 말이예요. 왜 이러지 라고 해서

자꾸 分別하고 解釋하게 됩니다. 이거 왜이럴까? 하고  解釋하지 말고 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내 배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呼吸 觀察로 돌아가는 겁니다.

100으로 돌아갑니다. 언제나 100으로 돌아갑니다.  100으로 돌아가는 건 아주 아름다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100으로 돌아갈 때마다 쾌재를 부르면서 成功했구나 아 내가 生覺이 일어남을 알아차렸구나.

우리가 妄想을 알아차리는 게 가장 큰 工夫예요. 그러니까 100으로 돌아감과 同時에 工夫는 成功입니다.

언제나 이건 失敗가 아니고..그래서 100으로 돌아가는 걸 주저하지 말고 아 또 한번 妄想을 알아차렸구나

하고 기쁜 마음으로 100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죽비소리와 함께 숫자를 100부터 거꾸로 내려오면서

한 번 세 보도록 하겠습니다.

 

탁, 탁, 탁.

       .

탁, 탁, 탁.

 

집에 가서 이제 每日 같이 實踐을 한 번 해보시고, 여기서는 그냥 잠깐만 이렇게 해보았는데 어떻게 좀

숫자가 세집니까? 어떻게 되나요? 숫자를 세면서도 雜念 妄想 生覺이 일어나죠. 그죠? 다시 돌아가집니까?

자주 100으로 돌아가 집니까? 아니면 잘 됩니까? 숫자를 놓치지는 않는데, 雜念 妄想 生覺은 보이잖아요.

그러면 雜念 妄想 生覺 煩惱가 들어온겁니다. 그래서 雜念을 보면 다시 100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雜念

妄想 生覺을 보면... 숫자야 우리 암기력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어느 程度 記憶은 한단 말이죠.

 

그런데 좀 더 많이 흐트러지면 이제 숫자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주로는 그러지를 않고 숫자를 계속

딱 놓치지 않고 있다 보니까, 雜念 妄想 生覺 煩惱가 더 잘 보이죠. 雜念이 오고 있구나라고 보여요.

그런데 雜念이 잠깐 들어왔을 때 그냥 보고나서 다시 100으로 가도 괜찮다.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자꾸

100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는 그게 失敗이기 때문에 100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生覺 妄想 雜念을

봤다라는 信號로 100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아 봤구나라는 信號, 그러니까 成功의 信號로 100으로 가는,

 

그러니까 數息觀 冥想 이것의 目的은 80, 70, 60으로 내려가는 게 目的이 아니라, 자꾸 微細한 生覺 妄想

煩惱라도 아 이번에는 아주 微細한 生覺 妄想 煩惱이지만 봤다 하면 다시 100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럼

으로써 이제 점점 더 예민하게 意識이 깨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아주 작고 微細한 것에 조차 내가 이거

봤구나라고 하게 되고 예를 들어 外部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거나 할 때는 이 소리에 내가 끄달려 가고

있는지 아닌지, 그 소리에다 解釋을 붙이기 시작하면 그건 마음이 그 소리에 끄달려 간거예요.

 

그런데 아 소리가 일어났다라는 것을 그냥 하나의 事件으로 멀리서 일어나는 것으로 잠시 흘러 지나가게

내버려뒀다. 잠시 보고 흘러 지나가게 내버려뒀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냥 내버려둬도 된다. 그런데 거기에

大部分 우리는 解釋을 붙이거든요. 예를 들어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이거 누구야? 하면서 生覺을 하거나,

누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예를 들어 그렇다는 게 아니구요. 좀 일찍 좀 다니지. 예를 들어 이런

生覺이 일어났다. 일어났다라고 生覺하면 벌써 그 生覺은 그 狀況을 解釋하고 있는 겁니다. 그럴 때면

바로 100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와같은 方式으로 우리가 數息觀 冥想을 하게 되면 삶에서 아주 놀라운 어떤 그 뭐랄까 삶의

中心을 잡을 수 있는 그런 修行力을 기르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전화벨 소리가

울릴 때, 習慣的으로 우리는 解釋을 붙이거든요. 야 이런 데서는 좀 꺼놓지 이렇게 解釋을 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그 소리를 解釋하는 것을 딱 멈추고 그 소리를 그냥 바라보기만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뭐 다같이 있는 어떤 곳에서 누가 내가 내 常識으로는 理解 안가는 行動을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안좋은 生覺을 하고 안좋은 批判的인 視覺을 가지게 되요. 그런데 그럴 때 딱

멈추는 겁니다. 이거는 나의 비판적인 시각일 뿐이지 그 사람은 그런 狀況에서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우리도 옛날에 어느 땐가 그럴 수가 있었던 적이 많죠.

 

그런데 내가 잘못했을 때는 나에게는 寬待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批判하기 쉽거든요.

그래서 그와같이 우리가 모든 事物을 볼 때 우리 生覺이 介入이 되서 그것을 비판합니다.

事物을 볼 때 나쁘다고 批判을 하거나, 좋다고 執着하거나 이 두 가지를 언제나 介入시켜요.

그런데 事物 事件 그 自體는 언제나 아무 問題가 없습니다. 事物 事件 그 自體는 아무 問題가 없다.

 

아이가 성적으로 70점을 받아왔다. 그 성적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예요. 다만 내가 내 마음속에서 90점 100점을 맞아야 된다고 生覺을 했기 때문에 70점을 問題라고

生覺해서 問題라는 反應이 나가는 거죠. 그래서 넌 이것밖에 못했어? 하고 예를 들어 한대 때리게 된다.

事實은 이게 세 段階로 이루어 집니다. 처음 아이가 성적을 70점 받았다라고 딱 보는 段階입니다. 그 때

解釋하지 않는 段階예요. 1段階는 解釋하지 않고 70점이구나 하고 알아차려요. 그 다음에 내 머리속에서

解釋을 합니다. 이 녀석이 맨날 놀고 게임만 하더니, 이것밖에 못 받아 왔구나. 너 한번 혼나봐야 되겠다

라고 解釋하기 始作해요. 이게 2段階고 머리속의 解釋이 2段階면, 3段階에서 이제 주먹이 나가거나, 욕이

나가거나, 혼내는 直接的인 行動이 일어나는 거예요. 3단계로 일어나는데 보통 우리는 1단계와 3단계만

生覺합니다. 2단계를 쏘옥 빼버리고,

 

卽, 現實 그 自體를 놓고 70점 맞아 온 거를 보고 바로 때린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 生覺에는 아 낮은

성적을 받았으니까, 이거는 너가 잘못한거야 하는 實體라고 生覺을 해요. 내가 머리속에서 잘못했다라고

分別을 일으켜서 이건 이러면 안되는 거라고 分別한 것을 生覺하지 않고 성적을 보고 바로 혼낸단 말이죠.

 

그런데 事實 그 성적과 혼내는 사이에 내 머리속의 觀念이 두번째 段階가 介入 됐던 겁니다.

그것을 내가 만들었던 거죠. 나는 그 성적을 보고 어 이거 받아왔구나. 아 그래 그래 고생했어.

이렇게 하고 넘어 갈 수도 있고, 아니면 혼낼 수도 있는 두가지 狀況에서 2段階를 가지고

나쁘다 잘못했다라고 解釋을 함으로써 바로 혼내는 段階  3段階로 넘어가는 거죠.

 

그런데 이와 같은 이 生覺을 明確하게 지켜보게 되면 中間의 2段階를 언제나 지켜보게 되고 그러면

또 다른 反應을 할 수 있다라는 2段階를 바꿈으로써 혹은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으로써 또다른 反應을

할 수 있구나. 3段階의 反應이 새롭게 새로운 反應으로 나갈 수가 있구나라는 것을 분명하게 명쾌하게

보게 됩니다.

 

그러면 온갖 화도 많고 짜증도 많고 자식의 말한마디 남편의 말한마디 이 모든 것들이  짜증이나 화가

많던 사람들이 내가 왜 그 화가 많고 그 짜증나는 反應을 많이 보이고 하는 것들이 왜 그러했는지를

이제 明快하게 보게 됩니다. 내 머리속에서 어떤 造作이 일어나가지고 내가 이렇게 神經質的인 反應을

常習的으로 일으키는지를 알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같은 狀況에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데, 어떤 사람은 화를 안내고 平和로운데, 나만 화를 낸다.

이건 내 問題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生覺하지 않고 이건 네 問題야 너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화를

내는 거야, 너가 핸드폰을 꺼놓고 있지 않으니까, 소리가 울렸고 그러니까 내가 짜증이 나는 거야 이건 

순전히 내가 짜증나는 마음을 일으킨 내 문제거든요. 핸드폰을 꺼놓지 않은 그 사람은 문제가 아니고,

嚴密히 따지면 내 修行의 立場에서 봤을 때 내 問題입니다. 그런 方式으로 우리가 나누어서 보게 돼서

내 머리속에서 지금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보다 명쾌하게 보게 되니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놀라운 어떤 하나의 修行의 材料, 工夫의 材料, 삶을 어떻게 智慧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것을 주게 되는 거예요.

 

네 이런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아주 많구요. 특히나 아주 저 피곤하신 분들은 더욱 더 그럴텐데 어떨 때는

잠이 오는데 이거 잔건지 안 잔건지 애매 모호한 상태에서 숫자를 세요. 자면서 숫자를 세고 자는 경우도

있고 또 이게 내가 어떨 때는 딱 끝나고 나서 되돌아 봤을 때 내가 이거 잔건가? 명상한건가?

境界가 모호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숫자를 세는 게 아주 重要한거예요. 물론 숫자를 세면서 자기도 하지만 숫자를

세지 않고 呼吸을 觀察하게 되면 요런 일들이 많이 생겨요. 내가 呼吸을 보고 있었던건가?

아님 멍하니 있었던건가? 아님 자고 있었던건가?

 

뭐 예를 들어 방황한 거라고 해서 그러한 애매모호한 상태 내가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잠잔 것도 아닌

쉽게 말해서 멍때리고 있는 상태 이건 깨어 있는 건 아니예요. 분명히 보고 있는 것은 아닌거예요. 그런데

얇게 잠 비슷하게 오다 보니까 잠시 그게 그 時間이 그냥 떨어져 나가 버린거예요. 그러니까 멍하고 있는

意識 狀態 그런 意識 狀態를 놓고 아 生覺 妄想 煩惱 分別心이 안 일어났구나. 이렇게 좋아하는 錯覺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呼吸에 숫자를 매겨서 세다 보면 얇은 잠이 든것 같은 경우에는 애매모호 할 때 있지만

그것도 딱 보게 되면 100으로 다시 돌아오면 되겠다. 잠에 빠졌다 할 때에는...

그런데 잠에 조금 깊히 빠질려고 할 때 어김없이 숫자가 햇갈리기 시작해요.

숫자를 놓치기 시작하고 그러면 다시 100,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잠에 계속 빠진다 이러면 계속 100, 100, 100하고 계속 세면서 내가 잠을 이렇게 자고 있다라는

걸 意識하면 되는데 그러다가 보면 習慣的으로 잠자면서 100 100 하면서 잠을 자게 되기도 하는데

너무 과도하게 졸릴 때는 어지간할 때는 잠깐 精神을 차리고 눈을 딱 뜨고 그럴 때 졸리고 그럴 때는

눈을 딱 감고 하면 졸기가 아주 쉽습니다. 그래서 눈을 반만 뜨고 하라고 하는데 너무 졸리다 싶을 때는

눈을 이제 좀 뜨는 게 좋아요. 눈을 뜨고도 分明히 呼吸을 觀察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事實은 나중에는 눈을 뜨고도 呼吸을 觀察할 수 있고 마음을 觀察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감고만 하면 안됩니다. 처음에 앉아서 할 때는 어느 정도 감고 해야 처음에 집중이

잘되니까 그렇게 시작은 하지만 어느 정도 되면 반쯤 뜨고 있고 그러다가 너무 졸리거나 그럴 때는

탁 뜨고 있으면 잠이 조금 덜 오게 되게 되구요. 너무 심각하게 졸리면 잠깐 일어나서 왔다갔다 하던가

아니면 누워서 자든가 해야되고 그래서 잠잘 때 그런 분들은 잠잘 때 잠시 앉아서 이렇게 呼吸을 觀察

하면 아주 잘 졸립니다. 뭐 그렇게 하다가 누워서 딱 주무시면 冥想을 하다가 잠 드는 것 아주 이상적이예요.

그래서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아주 졸리게 되요. 좀전에도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인사를 계속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것들도 그것이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아니다. 잠자고 딱 개운 할 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뭐 잠 하나까지 이렇게 치열하게 없애가면서 精進하고 뭐 그런 그 정도까지는 아직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잠에 너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마시고 내가 이렇게 졸리면 잠깐 또 한번

精神차려서 잠자고 있구나 졸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차려 보기도 하고 또 잠깐 冥想中에 잠깐 조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안조는 게 좋지만 뭐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가 있다.

 

반만 뜰 때 정확히 지적하셨는데, 반만 뜨라고 하면 사람들이 반만 떠도 보일 건 다 보이거든요.

이게 집중이 안되는 겁니다. 반만 뜨니까, 집중이 잘안되니까 집중을 하려면 약간 뭔가 희미하고

희뽀얗야지만 우리는 집중이 잘된다고 느껴요. 그리고 실제가 어느정도 좀 그래요. 그러다 보니까,

반만 뜨면 희뽀얗게 보여야 되는데 반만 떠도 잘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사팔뜨기 비슷하게

하면 앞에 흐릿해져요.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눈이 사팔뜨기 비슷하게 되는 경우가 실제 있어요.

 

그럴 때 이걸 눈을 막 사팔뜨기로 이렇게 막 할 필요는 뭐 고개를 끄덕이시네요.(하하하)

다 이상한 표정을 지셨나 보네요. 사팔뜨기를 애써 할 필요는 없고 살짝 눈을 너무 크게 뜨게 되면

보이는 게 많으니까, 선명하게 많은 것이 보일 때 집중이 分散이 되거든요. 認識이...

그래서 약간 반을 뜨라는 것이고 눈앞에 보이는 부분을 어느 정도 보여도 괜찮구요.

그래서 만약에 정 안되면 눈을 3~4m 앞을 보는 게 가장 좋고 앞사람 등이 보일 때는 등 어떤 이런 게

좋습니다. 그 지점의 어느 한 부분을 내가 意識으로 찍어서 그 部分을 딱 注視하는 거예요.

약간 너무 높은 높이가 아니라 약간 밑부분에 있는 그 부분을 딱 집중을 하고

 

그래서 때로는 촛불을 켜놓고 하기도 하고 그래요.촛불을 이렇게 보면서 집중을 하면서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그 어떤 한 특정 부분을 시선을 고정한 채로 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조금

觀察을 하시다 보면 눈을 뜨고 있어도 보여요.몸을 觀察할 때도 바디스캔 할 때도 눈을 감아야지만

다리가 어떤 느낌인지 손이 어떤 느낌인지 이렇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눈을 뜨고 있어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볼이 어떤 느낌인지를 가만히 觀察해 보세요. 눈을 뜨고....

 

여러분 입꼬리가 지금 어떻게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 가만히 觀察해 보세요. 보이죠? 보입니다.

마음거울에 나타나 보여요. 그래서 꼭 눈을 감아야지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살짝 뜬 상태에서

약간 意識이 分散되면 分散된다는 것을 또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래서 눈을 반쯤 뜬다는 게 약간 보일 듯

말 듯인데 많이 감으면 빛이 살짝 들어오지만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그런 정도로 살짝 뜰 수가 있어요.

 

그런 정도가 처음에는 아주 좋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좀 반만 떠도 많이 보이니까 반만 떠도 集中이

덜 되거든요. 눈을 살짝 감은 상태에서 살짝 떠서 작은 빛이 들어오는 정도 그 상태에서 앞의 어떤 特定

部分을 觀察하면서 呼吸을 觀察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거 뭐 事實 이게 答이다 저게 答이다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工夫를 하는 데 있어서는 소리가

들어온다는 自體가 問題인 거는 아니잖아요. 소리 들어온 것을 내가 하늘의 떠가는 구름처럼 그냥 어떤

精神的 事件으로 나와 동떨어진 別個의 어떤 事件으로 볼 수는 있잖습니까?  그렇게 보고 지나 간다면

소리 精神的인 事件 거기에 介入되지 않는다면 거기에 내가 解釋을 붙이지 않는다면 그냥 呼吸을 그냥

숫자 계속 넘어가도 괜찮다는 말이죠. 그것은 내 意識 마음이 어떤 境界 對相에 끌려가지 않은 거니까,

 

다만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에 내 마음 意識이 조금이라도 反應을 했다면, 生覺으로 判斷으로 反應을 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 다시 100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조금 더 많은 마음의 演習을 집에서 하셔서

숫자를 세는 것을 집에서 演習을 해가지고 다음 번에 이렇게 오시기를 바라고  잠시 쉬었다가 11시에

또 金剛經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