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릉록 26. 한 생각 일지 않으면 곧 보리
배상공이 황벽대사께 물었다. "소생(小生)이 알지 못하겠사오니, 큰스님께서는 가르쳐주십시오."
"내게는 한 物件도 없어서, 이제까지 남들에게 한 物件도 전혀 가르쳐 전해 준 바가 없다.
너의 마음은 限量없는 歲月 前부터 지금 까지 그저 남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서만 이해하려고 하니,
이것은 그야말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왕의 난[王難]에 빠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다만 이 事實을 알아야 한다.
한 生覺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받음(受/느낌/감정)이 없는 몸(色)이며,
한 生覺 일으키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生覺(想)이 없는 몸(色)이니라.
한 生覺이 절대로 人爲的인 造作(有爲)에 휩쓸리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行이 없는 몸(色)이며,
生覺으로 요리조리 따지고 分別(思量分別)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識(意識)이 없는 몸(色)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달리 한 生覺 일으키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그대로 12因緣이라는 굴레에 빠져들게
되어서, 無明이 行을 緣하여 서로 인(因)이 되기도 하고 또 과(果)가 되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늙음과
죽음이 서로서로 因이 되기도 하고 서로 果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善재동자가 110곳에서 善知識을
만났지만, 그것은 다만 12因緣이라는 굴레 속에서만 求하다가 最後에 미륵보살을 만났다.
그러자 미륵보살이 문수보살을 찾아뵈라고 다시 가르켜 주었다. 文殊菩薩이란 다름 아닌 바로 너의 根本인
無明 (無明實性卽佛性)이니라. 만약 마음과 마음이 各各 달라서 그저 마음 밖으로만 선지식을 求하는 者는,
한 生覺이 일어났다가는 꺼지고 꺼졌다가는 또 생긴다. 그러므로 너희 비구들도 生, 老, 病, 死 하기도 하여
因果의 값을 치뤄 오면서 마침내는 다섯 갈래(五聚)의 生과 滅을 당한다. 다섯 갈래란 五陰(五蘊/色受想行
識)을 말하는 것이니 한 生覺 일어나지 않으면 곧 18界가 空하여 이 몸(色/肉身) 그대로가 菩提의 꽃 열매
이며, 또한 이 마음이 그대로 神靈스런 智慧이며 神靈스런 菩提座이니라. 그러나 만약 執着하는 바가 있으
면 이 몸(色/肉身)은 곧 송장(죽은 시체)가 되고, 마음은 송장을 지키는 鬼神이 되고 만다."
********원오당 한소리********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소생(小生)이 알지 못하겠사오니, 큰스님께서는 가르쳐주십시오."
"내게는 한 물건도 없어서, 이제까지 남들에게 한 물건도 전혀 가르쳐 전해 준 바가 없다. 너는 한량없는
세월 前부터 그저 남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서만 이해하려고 하니, 이야말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왕의 난
(王難)에 빠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다만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생각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받음(受/느낌/감정)이 없는 몸(色)이며, 한 생각 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생각(想) 없는 몸(色)이니라. 절대로 인위적인 조작에 휩쓸리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行이 없는 몸(色)이
며, 생각으로 요리조리 따지고 分別(思量分別)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識(의식)이 없는 몸이니라.]
앞단에서 見性을 물었다. 그러나 배휴의 疑心은 사라지지않는다. 見性을 하면 하늘에 해가 천개가 뜬것 같고,
내가 보고있는 모든 事物이 虛空으로 보이고, 보이지 않은 모든 것을 확실하게 볼 수있다는 妄想心이 사라지
지 않고 있는 것이다. 卽 見性하면 成佛이라 했으니 成佛이면 부처(佛)인데 어찌 부처(佛)같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부처는 저 높은 곳에 있는 菩提座(깨달은 지혜의 마음)이고 衆生은 저 밑에 있는 어둠에 휩사여 있는
無明이라는 二分法的인 貯藏識의 觀念의 觀點에서 思量분別河여 分離 分別하려는分別心이 사라지지 않은
意識 狀態에서는 그 어떤 眞理의 말을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나가 무엇인가? 내 마음 의식이 五蘊(색수상행식)을 통해서 받아들여 貯藏識(잠재의식/제8식/아뢰
야식)에 쌓아논 情報/記憶을 固定不變하는 實體의 나라고 錯覺하고 있으니 들리면 듣는 대로 보면 보는 대
로 다 貯藏識에 저장해논 記憶/정보을 불러내어 第七識(末那識/自我意識/分別意識)의 思量으로 世上을 二
分法的으로 分離 是非 分別 比較 判斷 解釋해서 보고 들으려 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그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서 내 分別識/分別心을 내려놓고 있는 그
대로 보고 들어 보라. 그렇게 보고 들으면 보아도 들어도 있는 그대로 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남의 말이
들릴리가 있으며 보일리가 있겠는가.
황벽스님도 그래서 한 法(物件)도 남에게 주여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말로는 남에게 깊은 뜻을 傳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言語道斷이라고 表現하는 것이다. 납승도 십여년을 一乘法會라는 이름으로
法會를 했으나 법회에 온 사람들은 법문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 自己 스스로 알고 있는 觀念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법문 중에서 찾으러 온 것이다.
이러면 아무리 법문을 해도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알아들었으면 그런 사람은 永遠히
내 앞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황벽스님도 第子들이 법문을 듣고 알음알이(思量分別)로 貯藏하
여 各地를 다니면서 내가 法을 안다고 하고 그것이 自己 觀念이 되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한량없는 세월 前부터 그저 남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서만 이해하려고 하니, 이야말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왕의 난(王難)에 빠지는 것 아니겠느냐.' 라고 꾸짓고 계신 것이다.
[절대로 인위적인 조작(有爲)에 휩쓸리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行함이 없는 몸이며,
요리조리 따지고 分別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식(識)이 없는 몸이니라]
법문을 듣고 造作하지 않는다는 것은 觀念(貯藏識)에 비추어 思量分別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分別識/分別心을 稼動하지 않으면 識이 없는 몸이라고 무심(無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네가 달리 한 生覺 일으키기만 하면 그대로 12因緣에 빠져들어서, 無明이 行을 緣하여
서로 인(因)이 되기도 하고 또 과(果)가 되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늙음과 죽음이 서로서로 因이
되기도 하고 果가 되기도 한다.]
한 生覺 일으킨다는 것은 分別識/分別心으로 思量分別한다는 뜻이니 思量하고 分別함은 이것과 저것,
이것이라 하면 저것이 서고 저것이라 하면 이것이 서는 것이다. 즉, 緣起的인 思考의 그물(網)에 빠져
드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한 生覺 일으키면 이 한 生覺이 둘이 되고 넷이 되고 ....八萬四千 가지로
分別되어 나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釋尊께서 八萬四千이나 되는 方便의 法門(팔만사천가지의
方便인 經)을 설하셨던 것이며 涅槃經에서는 단 한 法도 說한 바가 없다고 하시면서 諸法無我의 實相
을 밝혀 주셨던 것이다. (諸法無我 ; 정신적 물질적인 이 세상 모든 것/存在/現象은 고정불변하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선재동자가 110곳에서 선지식을 만났지만, 다만 12因緣 속에서만 선지식을 구하다 최후에
미륵보살을 만났었다. 그러자 미륵보살이 文殊菩薩을 찾아뵈라고 다시 가르켜 주었다. 文殊보살이란
다름 아닌 바로 너의 根本인 無明이니라.]
지금 하신 말씀이 바로 分別識/分別心인 意識으로만 묻고 답하면 그 답을 찾을 수가 없다. 分別識이 바로
12인연법이 되어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行行本處 至至發處). 無心이 바로 텅~빈
바탕이며 깨달음의 자리인데 分別識인 意識으로 12인연으로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니 原位置
하니, 이것은 0시가 24시고, 無明이 깨달음(보리좌)이고 깨달음의 자리가 바로 無明이며 이 無明이 바로
根本識/ 근본마음/본마음/ 참나/ 주인공/ 一乘/ 一佛/ 本性/ 自性/ 法性/眞性/본래면목/하느님/ 하나/ 이며
淸淨한 白淨識 즉, 淸淨한 法身인 琵盧遮那佛(비로차나불)이라는 것이다.
다시 풀어서 말씀 하신다. [마음과 마음이 各各 달라서 그저 마음 밖으로만 선지식을 구하는 자는,
한 생각이 갓 일어났다가는 꺼지고 꺼졌다가는 또 생긴다. 그러므로 너희 비구들도 생, 노, 병, 사
하기도 하여 因果의 값을 치뤄 오면서 마침내는 다섯 갈래[五聚)의 生과 滅을 당한다.]
이 세상 모든 것/존재/현상은 因緣에 의해서 생겨나는 法이지 菩提는 아니며 因緣으로 말미암아서
생겨나는 이 세상 무엇이든지 生滅法 즉,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法인 有爲法인 것이다. 分別識, 分別하
는 마음이 없는 無心에서는 보면 보이는 대로 들으면 들리는 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일 뿐인 것이다.
有爲라고 부르는 造作하는 마음 生覺 意識 속에서는 이 世上/ 삶/ 現實은 全部 다 佛(부처), 菩薩, 緣覺,
聲聞, 天上, 人間,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인간의 열 가지 의식세계)등 수없는 의식 마음 생각의 갈래
이지만 分別意識/ 分別心이 없는 根本識/근본마음/ 본마음/주인공/본래면목/ 무위진인/입처개진/ 진성/
법성/자성/참나/眞我/진리의 몸(法身)이라고 우리가 이름을 지어붙여서 부르는 이것, 이 사실, 이 일은
오직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그대로 일 뿐이다(目前現存).
[다섯 갈래란 5음(五陰)이니 한 生覺 일어나지 않으면 곧 18界가 空하여 이 몸 그대로가 보리의 꽃
열매이며, 또한 이 마음이 그대로 신령스런 지혜이며 신령스런 보리좌이니라.]라고 하시어
平常心是道이며 心卽佛, 人卽佛, 一乘, 一佛, 하나(一者), 一氣, oneness(全一)를 말씀하신다.
[그러나 만약 執着하는 바가 있으면 이 몸은 곧 송장이 되고, 마음은 송장 지키는 귀신이 되고 만다.]
無心이 아닌 意識으로 因緣法인 分別識과 思量分別心으로 산다면 이 몸은 송장이 되고,
마음은 송장을 지키는 귀신이 된다고 하신다. 그러니 한 生覺 일어나지 않는 無心이 되면
이 無心이 바로 보리(菩提/ 깨달음/智慧)라고 말하신다.
무심지도(無心之道)!!! 한 생각 일어나지 않는 마음이 되면 이 無心, 無念, 無想이 곧바로 道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이 세상 모든 것이 本來成佛로써 本來의 常樂我淨을 누리소서!!!
()()().... 화엄동산 원오선원에서 원오스님 합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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