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칼 살리는 칼> / 월산 대종사
유당 | 2015.11.19.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Ev0h/5683
<사람을 죽이는 칼 살리는 칼>
노사께서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세우고 대중을 굽어 보다가 대갈하셨다.
억! 진여무언(眞如無言)이요 실상부동(實相不動)이라.
참다운 진리는 말이 없고 실상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산승은 이 자리에 오르기 전에 이미 30방을 얻어 맞았도다. 왜 그런가?
팔만대장경과 우주삼라만상이 벌어졌으니 이는 유언(有言)이고 동(動)이 아니던가.
그러나 無言의 모양은 有言이요, 不動의 모양은 動이라, 有言과 動을 떠나 無言과 不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해야 속이지 않고 30방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눈밝은 사람 있으면 이 산승을 불쌍히 여겨 그 방법을 일러주기를 바라노라.
대중이 묵묵부답 하자 다시 일갈하고 주장자를 세 번 내려 치셨다.
咫尺之間(지척지간)이나 不覩師顔(불도사안)이로다. 지척간에 있는 데도 스승의 얼굴을
못보는구나. 일기일경(一機一境)과 일언일구(一言一句)는 다 敎化文이라서 마치 허벅다리를
자주 긁어 부스럼을 스스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즉30방(動卽三十棒)’이라 잘못 이르면 다시 30방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지어다.
초학자는 불야타 조야타(佛也打 祖也打)로 부처도 치고 조사도 때리면 되는 줄 알지만
이는 사구(死句)에 머무는 것이니라. 일단 부처도 치고 조사도 쳤으면 다시 그것을 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부처도 살리고 조사도 살리는가?
와우각(蝸牛角=달팽이 뿔)이니라.
달팽이는 더듬이가 두 개인데 하나를 건드리면 두 개가 다 들어가고,
나올 때도 둘 다 같이 나오느니라. 이는 유(有)가 곧 무(無)요, 無가 곧 有이기 때문이니라.
옛날 高麗 때 나옹(懶翁)화상이 지공(指空)화상 문하에 계시다가 認可를 받고 귀국하는 길에
평산처림(平山處林) 禪師에게 하직인사를 하러 들렸다. 이 때 처림선사가 나옹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고?”
“지공화상이 계신 곳에서 왔습니다.”
“지공화상은 요사이 무얼 하시는고?”
“일용천검(日用千劍)하고 계십니다.”
“지공이 하루에 천개의 칼을 쓰는 것은 내가 익히 알고 있다마는 너는 어떤 검을 쓰는고?”
이 때 나옹화상은 처림선사가 깔고 있던 방석을 빼앗으니 선사가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야야, 이놈이 사람을 죽이는구나!”
나옹화상은 얼른 선사를 안아 일으키며 아뢰었다.
“오차일검(吾此一劍)은 능살능활(能殺能活)이라,
나의 칼은 사람을 능히 죽이기도(殺人劍) 하지만 또한 능히 살리기도(活人劍) 합니다.”
이에 처림선사는 매우 만족하였거니와 이 한 마디가 없었다면 나옹은 나옹이라 할 수 없었으리라.
僧投寺裏宿 賊入不愼家 승투사이숙 적입불신가
중은 절간 속에서 잠을 자고 도둑은 허술한 집에 들어간다.
(월산대종사 법어)
- 청산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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