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귀감 36. 生覺의 바탕이 텅~빈 것임을 아는 것이 중생구제이다
정수 |2015.11.21. 10:06 http://cafe.daum.net/truenature/NfI2/745
36.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에 들게 했다 할지라도 사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다.
보살은 오로지 중생에 대한 生覺뿐이다. 生覺의 바탕이 이미 텅~빈 것임을 알아내는 것이
곧 중생을 건지는 것이다. 生覺이 이미 텅~비어버리고 마음이 고요하다면 事實 건질 중생이
따로 없다. 이것은 믿음과 깨침을 말한 것이다.
증도가 : 원명님의 “깨달음의 노래"
모양 없고(無相), 머뭄 없고(無住), 생각 없는(無念) 것이 바로 이 定해진 바 없는 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定해진 바 없는 法은 알 수 없고, 잡을 수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알 수 없음, 얻을 수 없음에 사무쳐
스스로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야 비로소 아는 바 없이 아는 것이고, 잡은 바 없이 잡은 것이고, 얻은 바 없이
얻은 것입니다. 우리의 生覺과는 전혀 어긋나 있기에 生覺이라는 手段을 通해서는 이것을 밝히기가 어렵습
니다. 이 텅~빈 바탕이 바로 생각이 일어나는 본바탕임을 밝히고 나서야 비로소 生覺이라는 幻想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꿈과 같은 生覺 속에 전도(顚倒)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있고 없다는 두 生覺을 모두 버리니, 한 生覺이 일어나기 전에 있던 텅~바탕을 알아차리십시오.
한 生覺이 사라진 뒤 다른 生覺이 일어나기 전 그 사이 그 순간에도 있는 이미 텅~빈 虛空 같은 이 바탕을
문득 확인하십시오. 어젯밤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쏟아졌는데, 오늘 아침엔 하늘이 맑게 개어 있습니다.
虛空 속에서 어둠과 밝음, 비바람 부는 일과 맑게 개는 일이 오고 갔지만 虛空 그 自體에는 아무 變化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실제의 실체와 하나가 되기 위해 맹렬히 정신 수행을 해야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자성청정 자성청정 자성청정
자성聽音 자성聽音 자성聽音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길을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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