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 창고 비었는데 행복 바라는 건
잘못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자라 하더라고 자신의 행복을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죄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을 바라지만 모두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뿌린 씨앗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씨앗
말입니다. 큰
씨앗을 뿌린 사람은 큰 행복을 누릴 것이고
작은 씨앗을 뿌린 사람은 작은 행복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因果의 法則은 한 치의 誤差도 없습니다.
밤잠을
안자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과 놀 것 다 놀고 잠잘 것 다 잔 사람이 같은 문제로 시험을 본다면
누가 더 잘
보겠습니까?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노력이라는 씨앗을 더 많이 뿌린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人間의 幸福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을
원하는 生覺만 가득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사람은 허황된
삶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행복의 씨앗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행복의 씨앗인지 알아야 그 행복의 씨를 뿌릴 수
있잖아요?
흘러 간 가요에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구절이 있는데, 나는 功德이 행복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功德은 바로 자신과 이웃, 자연환경, 나아가
우주 전체를 한 묶음으로 사랑하는 힘의 根源입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功德을 쌓을 수 없습니다. 功德은 바로 만중생이 함께 행복해 지는 사랑의
힘 입니다.
功德은 쌓지 않고 幸福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공부는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사람과 같습니다.
평소에는 절에 잘 안 오던 사람이
자식이
수험생이 되니까 열심히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나오는 것
보다야 낫겠지만, 평소에 쌓은 功德의 倉庫는 비었는데 일이 닥치니까 功德의 倉庫를 좀 채워 보겠다는
生覺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 않겠어요?
佛敎는 慈悲와 智慧의 宗敎입니다.
功德을 쌓아
幸福을 나누는 것이 慈悲입니다.
나의 功德이 나의 행복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一切
衆生의 행복으로 昇化될 때 慈悲의
가르침이 實現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운 佛子는 반드시 나와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해
功德을 쌓아야 합니다. 내가 쌓는 功德을 一切 衆生에게 回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慈悲의 實踐이 간절하면 저절로
智慧로운 사람이 됩니다. 경전을 많이 읽는 것도 좋고
참선이나 염불, 사경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慈悲로운 마음을 먼저 길러야 참다운 智慧를
길어 올릴 수 있습니다. 아무 條件 없이 베풀고 나의 노력으로 남이 행복해기를 바라는 자비로운
마음이 커지면 거기에서 밝은 智慧가
솟아납니다.
이제 人間 世上은 物質 次元에서 精神
次元으로 그 價値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功德을 쌓는 그것도
物質에서 精神의 次元으로 擴張되어야 합니다. 施主物의 크기와 價値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되
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功德을 쌓을 때는 따지고 計算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生覺하기' 演習을 해야
합니다. 좋은
生覺을 하는 시간에는 貪欲과 分別하는
마음도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좋은 生覺을 하는 시간을 점점
늘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 수행입니다.
좋은 生覺은 좋은 말을 하게 하고 좋은
行動을 하게 하니 좋은 身口意 三業 그것이 바로 功德의 根源
이고 幸福의 꽃을 피우내는 씨앗이라는 말이니다.
- 예천 용문사 청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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