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세상과 남이 아는 세상
초기불교의 오온 십팔계의 교설에서는 識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내가 세상을 보고 認識해서 알 때,
대상 세계를 보는 주체인 眼耳鼻舌身意를 六根이라고 하고, 보여지는 대상 세계를 色聲香味觸法을
六境이라고 하며, 육근이 육경과 만나서 인식해서 아는 작용 즉,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을 六識
이라고 부른다. 즉 識이란 내 육근이 세상 즉, 육경을 보고 내 육식대로 인식해서 아는 마음인 것이다.
즉 내 눈으로 대상을 보고서 알게 된 마음을 안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동일한 대상을
보고 알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대상을 보고 똑같은 것을 보고 알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즉 내 안식과 상대방의 안식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을 보고 어떤 사람은 좋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언덕 위 나무 한 그루를 똑같이 보았지만 어떤 사람은 거기서 외로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의연함과
강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동일한 대상을 보더라도 우리의 마음인 육식은 그것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여 이해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도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
안계 내지 무의식계’라고 하여 육근, 육경, 육식이 전부 텅~비어 空함을 말하고 있다. 이 識을 유식
불교에서는 말 그대로 唯識, 즉 이 세상은 오직 識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동일한 대상을
보더라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식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다르게 알고 다르게 경험한
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을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해석된
알음알이 즉, 識일 뿐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이해하고 경험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만의 방식대로 그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경험할 것이고, 그것은 나의 이해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동안 세상을 경험하고 살아봐서 안다고 여기는 모든 앎이 이처럼 사실은 오직 識일 뿐, 즉
唯識일 뿐이지, 진짜 있는 그대로의 대상 그 자체를 정말로 아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인식하지 않는다. 100명이 동일한 대상을 본다면 100명이 본 것은 전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錯覺을 한다. 내가 보고 알았으니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보고 알았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100명이 음악회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고 해서 백명이
모두 같은 경험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똑같이 미술 전시회에 가서 미술 작품을 보았더라도 다 나와
비슷하게 보았을 거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결국 내가 대상을 인식할 때 자기방식대로 만들어진 幻想의 意識을 가지고 造作하여 세계를 그려내는
것일 뿐이다. 결국 내가 세상을 보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내 의식안에서 조작된 허망한
의식의 세계일 뿐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남들도 모두 그렇게 세계를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唯識無境이라고 한다. 즉, 오직 識만 있고 對相 境界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가 본 것이라고 해서
상대방도 보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내가 본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식을 모르는 어리석은
무명일 뿐이다.
이와 같은 유식을 모르면 우리는 쉽게 타인을 오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하고, 타인의 방식을 존중
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분명히 보고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
도 분명히 타인의 방식대로 직접 보고 경험했기에 그들은 그들이 경험해서 안 것만을 맞다고 고집할 것
이다. 그 간격 속에서 다툼과 오해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식대로 다르게 알고 경험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존중해 줄 수 있
어야 한다. 그러니 유식을 바르게 알면 타인과 싸울 일도 줄어들고, 내 뜻만 고집하는 일도 줄어들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수많은 갈등과 오해, 고통을 종식시킬 수 있다.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고, 나와 다름
을 받아들임으로써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 수 있는 정견이 열린다.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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