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眞理/깨달음)을 깨닫겠다고 애쓰지 말라 / 법상스님
본래의 法(진리)와 마음을 통달해 보니 法(진리)도 없고 法(진리) 아닌 것도 없다.
깨닫고 나면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가 같나니 마음도 없고 법(진리)도 없다...
마음은 虛空과 같아 虛空과 같은 法(진리)를 보이니 虛空을 증득하면 法(진리)의 옳고 그름도 없다...
진리(法)은 본래 이름이 없으나 진리(法)이라는 이름으로 因하여 眞理를 나타낸다.
진실된 法(진리)을 깨달아 얻으면 法(진리)는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진실로 참된 法(진리)를 깨달으면 行할 것도 없고 行하지 않을 것도 없다...
지금 이 깨달은 法(진리)를 그대에게 傳하노니 取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이 隱顯法(숨고 드러내는 法/진리)를 깨달으면 어리석지도 않고 智慧롭지도 않을 것이다...
法(숨고 드러내는 法/진리)를 증득하려는 마음을 놓으면 성냄고 기뻐하는 分別이 다 사라질 것이다...
[경덕전등록]
법을 얻겠다는 生覺도 법을 얻지 않겠다는 生覺도 다 허망한 分別 妄想 錯覺일 뿐.
법을 행한다는 생각도 법을 행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다 허망한 分別 妄想 錯覺일 뿐.
법을 取한다는 생각도 법을 버린다는 생각도 다 허망한 分別 妄想 錯覺일 뿐.
법을 얻으면 지혜롭다는 생각도 법을 얻지 못하면 어리석다는 생각도 다 허망한 分別 妄想 錯覺일 뿐.
법을 깨닫고 난 뒤와 법을 깨닫기 전을 차별하고 분별하는 생각도 다 허망한 分別 妄想 錯覺일 뿐.
법이라는 생각과 법이 아니라는 생각도 다 허망한 分別 妄想 錯覺일 뿐.
법이 옳다는 생각도 법이 그르다는 생각도 다 허망한 분별 망상 착각일 뿐. 법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것도 법이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 것도 다 허망한 분별 망상 착각일 뿐이다.
法에 대한 卽, 眞理에 대한 一切의 是非 分別 比較 判斷 解釋 分釋을 텅~빈 마음자리에 내려놓아버렸을
때 그래서 眞理 卽, 法을 깨닫겠다는 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 마저도 다 내려놓아버려서 깨
달음이니 眞理니 法이니 하는 이름이나 말조차 완전히 끊어졌을 때 그 때 비로소 法(진리/깨달음)이
法으로써 피어난다.
眞理(법/깨달음)을 깨닫겠다고 인위적으로 애쓰는 노력이야말로 眞理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진리는 인간의 마음이 무언가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여, 어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무엇이 결코 아니다.
이 세상을 상대로 벌이는 시비 분별하는 그 모든 생각 의식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아버려 모든 노력과
의도와 작의와 바람과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진리는 진리로써 저절로 드러난다.
아니 진리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것은 노력을 통해 얻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진리를 보려고 바깥으로 치닫는 인간 내면의 끊임없는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망상 번뇌 의식 마음 때문에 진리(법/깨달음)을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진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진리는 사라진 적도 없고, 도망친 적도 없고,
나에게서 멀어진 적도 없다. 다만 내가 스스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 목탁소리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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