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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은 무엇이고? 法性은 무엇인가?

장백산-1 2016. 6. 24. 00:45

法은 무엇이고?  法性은 무엇인가?


오늘부터 화엄경의 핵심 사상을 의상스님께서 함축시켜 놓은 法性偈(법성게)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고자

합니다. 의상대사 법성게의 첫 번째 게송이 바로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입니다. 뜻을 풀어보

면, ‘法性’은 圓融해서 두 개의 相이 아니다 라는 말인데, 이 ‘法性’이 뭔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또한 그에 

앞서 ‘法’이 뭔지를 먼저 알아야 됩니다. 오늘은 法이라는 용어와 法性이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에서는 ‘法’이라는 用語를 주로 두 種類의 意味로 씁니다. 첫째로 ‘法’은 ‘存在, 것’이라는 의미로 쓰입

니다. ‘諸法無我’는, ‘이 세상 모든 存在, 것은 固定不變하는 實體가 없다’ 이렇게 해석이 되죠. ‘三法引’은 

‘세 가지 眞理의 도장’, 이렇게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서 ‘法’이라는 용어는 存在, 것이라는 意味로 첫 번째

로 쓰이고, 두 번째는 ‘眞理’라는 意味로 쓰입니다.


法을 첫 번째인 ‘存在, 것’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頭頭萬物 一切萬法이 존재, 것(法)이란 말이죠. 너도 法

이고, 나도 法이고, 生物도 살아있는 것도 法이고, 눈에 보이는 現示되어 드러나 있는 이 世上 모든 存在

가 全部 다 法입니다. 이렇게 모든 存在, 것이라는 의미로, 우리 말로 하면은 ‘어떤 것’,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거죠.


法의 두 번째 의미는 ‘眞理’를 뜻합니다. 事實 存在, 것이라는 용어와 眞理라는 용어 이 둘은 다르지 않습

니다. 왜냐하면 眞理가 現象으로 現示되어 드러나 있는 것, 存在가 바로 이 세상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眞理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一切萬有, 宇宙萬法이라는 이 세상 모든 것들, 存在들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 眞理라는 것입니다. 眞理가 곧 이 세상 모든 것, 存在고, 이 세상 모든 것, 存在가 바로 

眞理입니다. 眞理가 죽비 모습이라는 現象으로 現示되어 드러나 있고, 뜰 앞에 잣나무라는 現象으로 現示

되어 드러나 있고, 나의 모습으로, 여러분의 모습으로, 바람의 모습으로, 구름의 모습으로, 공기의 모습으

로, 태양의 모습으로, 달의 모습으로, 우주삼라만상만물 모든 모습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바로 이 世上, 이 

宇宙입니다, 그래서 이 世上, 이 宇宙를 佛敎에서는 ‘世界’라는 단어 대신에 ‘法界’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理致를 ‘法華經(妙法蓮華經)’에서는 ‘諸法實相’이라고 , ‘모든 法, 모든 存在, 모든 것은 그것 自體가 

實相, 眞實한 모습이다. 이 세상 모든 것, 모든 存在, 모든 法 그 自體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眞理다, 존재

의 참 모습이다’, 이렇게 설했고, 禪에서는 ‘立處皆眞’이다, '우주만물이 있는 그곳이 바로 眞理가 드러나 있

는 곳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이라는 存在 自體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眞理라는 事實을 明確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法性은, 온갖 現象으로 現示되어 나타나는 이 世上 모든 存在, 것의 根本, 本質인 根源的인 性稟

을 뜻합니다. 存在의 根源的인 性稟이 뭘까요? 이 肉身이나 모양이 있는 物體는 겉껍데기일 뿐입니다. 이런 

껍데기들은 단지 宇宙, 法界, 眞理의 世界의 因緣에 따라서 잠시 잠깐 百年도 안되는 세월 잠깐동안 우리가 

빌려 쓰고 버려지는 것입니다. 모든 形像 形態 모습 모양, 精神 分別意識 分別心 認識, 生覺 想像 이미지, 

느낌 감정, 욕망 욕구 욕심 충동 의지 의도라는 色 受 想 行 識이라는 五蘊도 全部가 다 텅~빈 空이라 했습

니다.


나라고 生覺하는 모든 것 존재, 對相 境界 世界라고 生覺하는 모든 존재 것, 卽 我相과 法相이 둘 다 我空 

法空이라 했습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이 세상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렇게 텅~비어 

있는 것들이라면 도대체 텅~비어 있는 그것들의 참 性稟은 뭐냐? 진짜 나의 본 모습, 이 세상 모든 것들의 

본 모습은 뭐냐는 것이죠.


물론 이 法性이라는 말도 어쩔 수 없이 方便으로 이름을 法性이라고 했을 뿐이지, 法性이라는 그 이름에 

해당하는 고정된 어떤 事物이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法性은 모양이 있는 어떤 것도 아니고, 있다

거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쉽게 말해 法性은 人間이 認識할 수 있는 對相 境界가 아니

라는 겁니다.


텅~비어 있는 참 性稟을 方便으로 이름 붙여서 法性이나 뭐 다르게 말하면 佛性이라고 할 수도 있고, 

本來面目이라고도 할 수 있고, 뭐 主人公이라고도 할 수 있고, 참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진짜 나,

라고도 할 수 있고, 뭐 本地風光이라고도 할 수 있고, 自性, 法, 佛, 一心, 自性淸淨心 등 뭐라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텅~비어 있는 참 性稟을 또한 옛 禪師스님들은 ‘뜰 앞의 잣나무’, ‘마른 똥막대기’ 이렇게도 表現을 했

요. 이 말은 뜰 앞의 잣나무나 마른 똥막대기가 텅~비어 있는 성품, 法性이라는 말이 아니라, 法性을 

말로는 表現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나의 事物을 指稱해서 그 事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뜰 

앞의 잣나무가 온 宇宙를 꺼번에 드러내고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말로는 결코 表現할 수 없는 

眞理를 그런 방식으로 리키고 있는 겁니다.


-법상스님-